카카오톡 채널 추가 버튼
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고택,고건축물

안동 의성 김씨 학봉종택,학봉기념관

空空(공공) 2023. 5. 29. 01:13
반응형

 

 

경북 안동만큼 종택,종가가 많은 곳은 없을 것이다

안동 지역을 다니다 보면 심심찮게 -종택, -종가 이정표를 많이 만나게 된다

퇴계종택을 비롯 조선 시대 유명 인사의 종택이 많이 있다

그래서 안동을 예로부터 양반의 고장이라 불러 왔다


봉정사를 보고 돌아 오는 길에  조선 중기의 문신 김성일 선생의 "학봉종택"을

잠시 둘러 보고 왔다

의성김씨 학봉 종택은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 되어 있다


▶경상북도 기념물  의성김씨학봉종택 (義城金氏鶴峰宗宅)

 조선 중기 문신 학봉 김성일(1538∼1593) 선생의 종가이다.

 김성일은 선조 1년(1568) 과거에 급제하여 정언과 수찬 나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경상도 초유사로 관군과 의병을 화합시켜 의병의 전투력 향상에 큰 공을 세웠다. 

 퇴계의 제자로 뛰어난 성리학자이기도 한 그의 학문은 이후 영남학파의 학문 전통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가옥은 一자형 안채와 사당, 문간채, 풍뢰헌, 운장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운장각은 유물의 보관과 전시를 위하여 세운 것으로 선생의 유품과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책과 

 옛 문서를 보관하고 있다.


 원래 종택이 이 곳에 있었으나 1762년 자주 침수가 되는 원인으로 지금의 소계서당 자리에

 종택을 신축 옮겨 살다가 1964년 다시 현 위치로 다시 이건을 하였다 한다



 학봉 김성일은 퇴계 이황의 제자로 류성룡과 함께 임진왜란기 남인을 대표하는 인물로써

 1590년 통신사로 일본에 들어가 정사 황윤길이 '왜군의 침입이 있을 것"으로 보고하자

 민심의 동요를 우려 '그러한 정황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해 미처 대비하지 못하는 과를

 한 그 인물이다

 파직되었다가 1592년 임진왜란 일어 나기전 경상 우병사로 임명되었다가 진주성 전투 기간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아직 후손들이 거주 하고 계셔 조심 조심 발걸음을 딛었으며 마침 밖에 계신 후손이 계셔

 인사를 드리고 관람을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 학봉기념관

  상설전시관으로 2009년에 지었다

학봉 선생의 안경.거의 초기다

봉정사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 4월 30일 아내, 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