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거제도 큰아주머님배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한산도 오가는데 큰 불편을 몰랐는데
외지인들은 관광시간과 교통편 맞추려며 참 불편할 것 같네요...
거제도도 몽돌 해수욕장 몽돌을 많이들 가져가시는데
한산도도 만만치 않은가 봐요~
하지 말라는건 좀 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ㅠ.ㅠ
덕분에 한산도에서의 추억 되새기며 일주 잘 하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여~^^
외진 곳이라 이동이 수월하지 않나 봅니다 그와중에 몽돌 이름도 이쁘고 돌 그림도 너무 앙증맞네요^^ 자갈해변도 아름답구요!!! 임진왜란때부터 6.25전쟁까지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군요. 덕분에 잘 보고 배우고 갑니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길요^^
삼도수군통제영의 예전 시설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곳으로 이번 통영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곳을 꼽으라면
단연 이건물 국보 제 305호 세병관이다.
▶ 세병관 ; 국보 제 305호 2002년 10월 14일 지정
을사년(서기 1605년) 1월에 짓기 시작하여 그해 가을 7월14일에 상량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통제영의 중심건물이다. 이 건물은 창건 후 약 290년 동안 3도(경상·전라·충청도) 수군을 총 지휘했던 곳으로 그 후 몇 차례의 보수를 거치긴 했지만 아직도 멀리 남해를 바라보며 당시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앞면 9칸·옆면 5칸 규모의 웅장한 건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건물 내부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중앙 뒷면에 약 45㎝ 정도 높은 단을 설치하여 궐패(闕牌)를 모시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그 위로 홍살을 세웠고, 후면 내진주열 중방 하부에는 머름을 설치하여 분합문을 달고 중방 위로는 판벽으로 마감하여 무인도(武人圖)를 그렸으며 천장은 소란반자를 설치하였다.
세병관은 17세기초에 건립된 목조단층 건물로 경복궁경회루(국보 제224호), 여수 진남관(국보 제304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에 속하고,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그 역사성과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크다.
(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인용 )
세병관의 이 글씨는 제137대 통제사인 소유 대가 쓴 글씨이다
건물의 기단은 장대석 2벌대로 쌓아 비교적 낮은 편이며 기단 윗면에는 전돌을 깔았고 큼직큼직한 자연석 초석 위에는 민흘림 기둥을 세웠다. 건물의 평면은 정면 9칸, 측면 5칸으로 앞뒤에는 간살을 작게 잡은 퇴칸을 설치하였고 앞뒤에는 간살을 작에 잡은 퇴칸을 설치하였고 현재는 사방으로 개방되어 있지만 원래는 평면의 기능에 따라 벽체가 설치되었던 것으로 한때 통영초등학교로 사용되면서 건물내부에서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건물내부에는 모두 우물마루가 깔려 있는데 후면 내진주열 중앙에 주변 우물마루 보다 약 45cm 정도 높은 단을 설치하여 궐패를 모시는 공간을 마련하였고 그 위로 홍살을 세워 공간의 위계를 분리하였다. 그리고 후면 내진주열 중방 하부에는 머름을 설치하여 분합문을 달고 중방위로는 판벽으로 마감하여 무인도(武人圖)를 그렸으며 천장은 소란반자를 설치하였다.
건물의 지붕은팔작지붕으로 용마루와 귀마루는 양성되어 있고 취두가 올려져 있다. 건물의 뼈대를 구성하고 있는 가구(架構)는 2평주(平株), 3고주(高株), 9랑가(樑架)로 전·후 처마기둥과 내진고주 사이에 퇴량이 걸쳐지고 대량은 전·후면 내진고주 위에 놓였다. 그리고 후면 내진고주 앞쪽으로는 또 한 줄의 내진주열을 배치하였는데 이 내진고주는 전·후면 내진고주 보다 포작의 높이만큼 높아져 기둥머리 위에서 간단한 보아지 형태로 대들보를 받치고 있다. 대들보 위로는 양쪽으로 간단한 형대의 포대공을 짜고 중종보를 올렸는데 이러한 수법은 중종보 위에서 종보를 받치는 수법과 동일하다. 종보 위로는 화려한 파련대공을 짜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기둥위에 짜여진 공포는 익공계에 가까운 1,2제공으로 포작을 구성하고 있는데 외부에서만 행공첨차를 사용하였고 2제공의 뒷몸은 퇴량을 받게 하였다. 첨차하부는 선각되어 있으며 세부적인 수법은 익공계 포작수법을 많이 따르고 있으며 각주칸에는 화려한 화반이 놓여 있다. 내부천장은 모두 연등천장으로 부재에는 모로단청 수법이 잘 남아있다.
눈앞에 닿을 듯 말 듯 보이는 생이섬은 여위 해송 몇 그루가 운치를 더해주고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옛날 이야기에 따르면 이 마을에 가난했지만 효심이 지극한 한 청년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몹쓸 병에걸리어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자 가난한 아들은 제대로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마냥 바닷가에 나와 울고만 있었다고 한다.
이때 예쁜 꽃으로 치장한 이 섬이 꽃상여인 듯 여기까지 떠내려온 데서 "생이(상여의 사투리)섬"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학창시절 유치환님의 시를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지나고 보니...
이래서 시는 외워야 하나보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ㅎㅎ
그렇게 숙제로 외운 싯구절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나다니요.~~
앞으로도 시는 읽을 때에외워야겠습니다~^^
청마선생 지금 이시대에 유란을(유부녀)매일 찾아 다녔다면 아마도 치한이나 성희롱죄로 쇠고랑을 찼을지도 모른다 유부남(유치환)이 유부녀(유란)사랑한다며 따라 다녔으나 유란은 끝내 만나주지 않았다 그시대에는 사내들의 바람(?)을 이해하던 시절이었기에 망정이지 변태라 욕 먹지 않은것만도 아주 다행이다
통영향교를 먼저 찾은 아유는 그 지역의 향교를 보는 나의 여행 스타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번 여행은 차를
가지고 갔기 때문에 북통영 IC에서 가장 가까운곳이었기 때문이다.
오전 9시가 안 되어 대구를 출발했는데 통영 향교에 도착한 시간이 12시를 조금 지났으니 통영으로 오는데
3시간 남짓 걸렸다,. ( 물론 도중 휴게소에서 2번을 쉬었다. )
통영향교는 조선 고종 광무 4년(1900)에 진남군이 고성현에서 분리됨에 따라 1901년에 고성향교에서 떨어져 나와
지금의 위치에 세워졌다.
▶ 통영향교 : 경남 유형문화재 제218호
1901년에 건립하였고, 과거에는 군내에서 수재를 뽑아서 경학을 연수하도록 하여 중앙제
도와 같이 유교의식 절차를 익히게 하고 미풍양속에 앞장서게 하는 유일한 전당이었다.
통영향교는 불과 80여년의 전통과 역사에 불과하지만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의 수난기
에 유림들의 모임이 없어지고 몇몇의 유림에 의하여 유지 관리되어 온 결과 많이 훼손, 퇴락되었다. 그러나 뜻있는 유림들의 끈질긴 보수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연도별 보수내역을
간단히 살펴보면 1974년에는 건물 8동을 보수하였으며, 같은 해에 건물 5동을 단청하고 건물 3
동을 번와 보수하였다. 1976년에는 담장개수를 완공하였다. 또한 1977년에는 명륜당을 보수한
바 있으며, 1978년에는 풍화루를 보수하였다. 1980년에도 동재를 보수하였으며 1982년에는 대
성전을 보수하였고 1983년에는 동무를 보수하였다.2) 1984년에도 서재의 번와 보수가 있었다.
통영향교는 1983년 8월 6일 경상남도 유형문
화재 제218호로 지정되었다.
풍화루
통영 향교는 평지에 위치한 전학후묘의 직렬형 배치이다
명륜당
동재
서재
내삼문
대성전
서무.이밖에 동무와 제기고가 있다
전형적인 향교의 모습으로 갑오개혁이후 제사만 지내 오고 있었으니 최근은 청소년 인성교육등 교육의 장소로
이순신(李舜臣)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순국하고 전란이 끝난 뒤 1599년(선조 32)에 수군들과 지방민들이 공의 충절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착량언덕에 세운 사당으로 이순신사당의 효시이다.
처음에는 초당을 지어 이순신의 초상을 모시고 춘추로 제사를 지냈는데 이 곳을 지나는 상선들도 빠짐 없이 제사를 모셨다 한다. 1877년(고종 14)이순신의 10세손인 통제사 이규석(李奎奭)이 기와집으로 중수하여 착량묘라 이름하고, 지방 자제들의 교육을 위하여 경내에 호상재(湖上齋)라는 서재를 지었다.
1951년 재단법인 충렬사에서 관리하게 되었으며, 매년 음력 11월 19일 공이 순국한 날에 기신제(忌辰祭)를 모신다.
착량(鑿梁)이란 ‘파서 다리를 만들다.’라는 뜻으로 당포해전에서 참패한 왜군들이 쫓겨 달아나다 미륵도와 통영반도
오~ 이순신 장군님을 알 수 있는 곳이군요?
장군중에서는 이순신 장군님이 정말 대활약과 멋지신 일을 행하신 것 같아요 ^^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멋진 장군님들이 계시지만 이순신 장군은 정말 Top 1의 장군님이시죠 ㅎㅎ
덕분에 잊고있었던 우리나라의 역사를 다시 배우고 갑니다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
옛부터 충렬사를 찾은 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 누대에 올라 이 충무공의 큰 덕을 되세기며 동백 고목과 더불어 후원의 푸른
죽림을 자주 시제에 올렸던 영남 유수의 수영(水營) 누각(樓閣)이다.
전형적 조선의 팔작지붕 양식으로 정면 세칸, 측면 세칸의 익공식 이층 구조에 아래 층 뒤편에는 통용문인 「영모문」현판이
걸려있으며 이층 누마루는 우물마루에 계자난간을 두르고 연등천장을 하고 있다.
* 강한루의 이름 유래 강한(江漢)은 중국(中國) 호북성(湖北省)의 성도(省都)무한(武漢)에 있는 地名이다.
무한(武漢)을 가로질러 흐르는 장강(長江)과 지류(支流)인 한수(漢水)가 합류하는 지역으로 장강(長江)에서 「강(江)」,한수(漢水)
「한(漢)」,이두자(李)를 취하여 강한(江漢)이라 부르며 예로부터 열국이 각축하던 삼국지의 무대이며 이름난 경승지(景勝地)이다.
이 강한(江漢)의 대안(對岸)에는 이백(李白)의 시(詩)에 등장하는 황학루(黃鶴樓)와 항주(抗州)의 서호(西湖)와 비견(比肩)되는
동호(東湖)가 있다.
또 고대(古代) 주(周)나라 때 이곳 강한변(江漢邊)에서 소호(召虎)가 적의 항복을 받아 나라의 우환(憂患)을 씻었다는
고사(古事)가 있다.
1840년 제172대 통제사 이승권(李升權)이 여기에 누대(樓臺)를 지을 때 시인 강위(姜偉)가 경승지 통제영과 이충무공의
위업을 이 강한의 고사에 연관지어 강한루(江漢樓)라 이름하였다고 전해진다.
충렬사의 나무들은 전부 기품이 있어 보인다.
숭무당
통제영에서 파견한 장교 3명이 상주하면서 사우(祠宇)와 위토전답을 관리하던 곳. 지금은 회의실과 강의실로 사용하고 있다.
제1호 비각 충렬묘비명
묘(廟)는 사당을 뜻하고 비명(碑銘)은 비에 새긴 글이다. 충렬묘비명은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공적을 기리고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이 왕명을 받아 글을 짓고 뒤에 (1861) 민섬(閔暹) 통제사가 비와 비각을 세웠다. 글은 우암 송시렬(尤巖 宋時烈 : 효종의 스승)쓰고, 문곡 김수항(文谷 金壽恒 : 숙종조의 영의정)이 전서체로 썼다.
6호 비각까지 있다
경충재
제70대통제사 최 숙이 재유사(齋有司 : 관리자)를 두고 지방 청소년들에게 학문과 충의를 교육시키기 위하여 1695년에 건립한
강당으로 충렬서원이라 불렀다.
1865년. 1867년 두 번에 걸친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이순신 사당 가운데 유일하게 존속된 유서 깊은 서원이다.
지금은 공신과 집사들의 회의실로 사용하고 있다.
중문
외삼문과 내삼문의 사이에 있는 가운데 문으로 안으로 들어서면 동제와 서제가 있다. 입구 양쪽에 있는 고목은 목련과의 태산목이다.
동재
동재
향사를 앞두고 헌관(獻官 : 제관)과 집사(執事)들이 미리 여기에서 몸과 마음심을 깨끗이 하고 제복을 차려입는 곳으로 향사를
끝낸후 여기에서 음복(飮福)을 한다.
김 경 제51대통제사가 맞은 편의 서제와 동시(1670)에 건립하였다. 동·서제의 마당을 중정(中庭:가운데 뜰)이라 하는데 매년
4월 28일 탄신제 때에는 여기에서 승전무(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가 헌무(獻舞)된다.
서재
향사에 쓰이는 제물을 장만하고 제기(祭器)와 제구(祭具)를 보관하는 곳. 김 경 제51대통제사가 맞은 편의 동제와 동시(1670)년에 건립하였다.
전시된 거북선은 전라좌수영의 거북선 모형으로 제작년대는 1950년대로 추정된다.
서재
정당
정당은 민족의 수호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령에 제사올리고 공의 정신과 위훈을 만대(萬代)에 기리기 위하여 제7대
통제사 이운룡(李雲龍)이 선조(宣祖: 제14대)의 명을 받아 세웠다. 이충무공 한분의 위패를 모시고 역대 통제사가 약 300년간
제사를 받들어 온 가장 신성한 장소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맞배지붕으로 1606년에 창건하였는데 정당의 후원은
충절을 상징하는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기와지붕의 용마루에 새긴 주역(周易) 팔괘(八卦)는 음양의 조화(造化)와
만물이 화생(化生)하는 역(易)의 원리를 담고 있으며 제의(祭儀)는 정통 유교의 법식을 고수한다.
1895년 통제영이 폐영되어 관급(官給)이 끊어지고, 경술국치(庚戌國恥:1910년 한일병탄)를 당하여 제사를 받드는 주체가
없어지자, 이 곳 지방민들이 기미년 독립만세운동(1919)을 계기로 충렬사영구보존회(현 (재)통영충렬사의 전신)를 결성하여
제향의 맥을 이어왔으나 일제강점기에는 왜경이 장군의 위패를 칼로 부수고, 삼문의 태극문양에 덧칠하여 일장기(日章旗)로
바꾸고 또 제사를 올리지 못하도록 정당에 못질하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1945년 광복을 맞아 이승만 대통령,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 선생을 필두로 송진우, 여운형, 신익희 등 많은 광복지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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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아름다움이 전해옵니다.
강구안 바다가 잘 내려다 보이는곳이었습니다.
저도 최근에 통영 다녀왔을 땐 동피랑 말고 서피랑으로 둘러보았어요.
동피랑보다 한적하지만 천천히 자세히 둘러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러셨군요.
일단 복잡하지 않아 좋았던것 같습니다.
날 좋은 날 천천히 둘러보면서 걸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 번은 들러보고 싶을
그런 여행지가 된 것 같네요. ^^
올라가는데 그리 시간도 걸리지 않고 힘도 안들기 때문에
누구나 천천히 올라 가볼수 있습니다.
앞으로 많이 찾지 않나 생각됩니다.
서피랑에도 가보고 싶네요.99계단을 오르는 것만으로도 멋진경험이 되겠어요.
시원한 바다를 봐서 눈이 상쾌해집니다^^
저는 아쉽게 계단을 못 보고 왔습니다.ㅎ
서파랑이야기map을보니 둘러볼만한곳이
참 많은곳이네요.서파랑길 구경잘하고 갑니다.
포인트들이 많죠,
사진 찍을곳도 여러곳 되는것 같습니다.
서피랑이 과거에 집장촌이 있던 곳이었군요.
사진으로 보면 참 멋지고 분위기 있는 곳으로만 보여지는데
마을을 다듬고 꾸미고 색과 옷을 입혀져서 이런 모습이 나오는거였군요 ㅎㅎ
개발을 한지 얼마 안 되고 아직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곳이 많았습니다.
조금 더 정비되면 더 많은 분들이 찾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동피랑 서피랑~^^
아기자기한 마을 풍경 덤으로 바다가 보이는 전망~~
통영...진짜 한번 가보고 싶네요.~
여행은 용기라 했습니다.
한번 떠나 보시죠^^
와! 정말 멋진 곳에 다녀오셨네요! 꼭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시간 나실때 가족 여행 한번 하시기 바랍니다^^
덕분에 잘 구경하고 갑니다.
통영에 가면 한 번 가보고 싶네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통영 가시면 한번 들러 보실만한곳입니다.^^
통영에 이렇게나 볼 곳이 많았다니 놀라울 뿐이네요.
시원한 바다도 보고 이런 단아한 건축물들도 감상할 수 있다니
통영가면 꼼꼼하게 둘러봐야겠어요. ㅎㅎ
1박2일로는 반도 못 보겠더라구요.
한번 더 다녀 와야 할것 같습니다.ㅋ
요즘은 공원을 참 잘 꾸며놓는군요.
삶의 질이 올라가는 느낌이에요.
마을 군데군데 이런 공원이 많았으면 합니다.
집 주위에 이런곳이 많이 생기면 좋죠..
쉴수 있는 공간이 많아져야 합니다.
전 오래전 친구랑 함께 들렸다가
동피랑은 올라갔지만, 서피랑은 친구들이 가지 않으려해서
못 갔습니다. 단체로 행동해야하기에 혼자의 뜻대로 할 수 없기에...
그때 못가본 서운함을 이곳에서 풀고갑니다.
편안한 저녁 되셔요.^^
다음 통영 가시면 서피랑에 한번 올라 가 보시기바랍니다.
동포루 보다 서포루에서 보는 풍경이 훨씬 좋습니다,
오늘 날씨 너무 좋네요. ㅎ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원래는 돌아와요 충무항에 였군요.. 화재사건이 안타깝네요 동피랑 서피랑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못 가봐서 궁금하지만 이렇게 사진으로 볼 수 있어서 좋네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원곡자가 있다는걸 여기 와서
알았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통영 서피랑 십여년전 다녀온적이 있습니다.
많이 바뀐듯합니다^^
잘 보고 공감하고 갑니다^^
좋은 주말보내세요~
십여년전이면 많이 바뀌었을듯 합니다.ㅎ
주말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곳인데, 가봐야지 생각만 하고 실행을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경상남도에 ktx가 빨리 생기길, 바라는 1인입니다.ㅎㅎ
횡단 KTX 열차가 곧 생길지도..ㅎ
그전에 그냥 한번 다녀 오세요^^
통영은 정말 아름다운거 같습니다... 힐링 받고 갑니다 ^^
아름다운 통영입니다.^^
서피랑 공원에서 보는 경치 너무 이쁘네요.
잘 보고 갑니다.
서피랑에서 보이는 경치가 참 좋았습니다.^^
이렇게 멋진곳이 있다는걸 몰랐어요
동피랑이 알려져서 동피랑만 가봤거든요
다음에 통영가서 서피랑 가게되면
공수거님 꿀빵사건이 기억날것 같아요~ㅎㅎㅎ
이젠 하나의 추억이 되었습니다.ㅎㅎ
다음주 거제도 가는 길에 꼭 가봐야겠어요 ㅎ
네 거제 가는길에 들려 보시면 되겠네요^^
문학은 삶의 진실을 추구한다. 제 바탕화면 사진이군요.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오 그러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