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짐은 많을수록 불편할뿐 (空手來空手去) :: '인상 깊은곳/고택,고건축물' 카테고리의 글 목록

'인상 깊은곳/고택,고건축물'에 해당되는 글 20건

  1. 2018.10.03 의성 관덕리 3층 석탑 -보물 제188호 (81)
  2. 2018.09.03 오래된 조선시대 목조건물 의성 사촌리 만취당-보물1825호 (98)
  3. 2018.08.03 3년여만에 다시 찾은 대구 근대역사관 (100)
  4. 2018.07.25 ( 대구 근대로의 여행 ) 이상화 고택, 서상돈 고택 (104)
  5. 2018.04.06 ( 고령여행 ) 죽유종택,매림서원,고령 지산리 당간지주 (86)
  6. 2018.03.29 ( 고령 여행 ) 개실마을,점필재 김종직 종택,도연재 (88)
  7. 2018.02.01 ( 대구 달성 ) 남평문씨본리세거지 ( 인흥마을 )-인흥사지,석탑 (85)
  8. 2018.01.07 영천댐 수몰 이전 문화재-강호정,오회공종택,하천재,사의당,삼휴정,오회당 (46)
  9. 2017.12.14 ( 영천 여행 ) 자양서당,동린각,정용준씨 가옥,환구서원,선정사,환구 세덕사 (77)
  10. 2017.11.22 ( 대구 가볼만한곳 ) 동구 둔산동 경주최씨종가 옻골마을,옛 담장 (82)
  11. 2017.11.10 ( 거창 여행 ) 동계 종택,반구헌 (78)
  12. 2017.11.04 도심속 문화재 휴식 공간- 대구 경상감영공원 (36)
  13. 2017.10.13 ( 거창 여행 ) 요수정, 함양재,원각사 (56)
  14. 2017.09.13 ( 경주 여행 ) 경주 교촌 마을 그리고 최부자집 (61)
  15. 2017.08.18 ( 성주 여행 ) 성주 한개마을 (52)
  16. 2017.08.11 ( 성주 여행 ) 동방사지칠층석탑,삼봉서당 (52)
  17. 2017.05.18 ( 군위 여행 ) 불로리 전통 마을 (66)
  18. 2017.03.15 ( 안동 여행 ) 항일 투쟁의 가일 마을 (병곡종택,수곡고택)..가곡지 (68)
  19. 2017.02.15 ( 청도 여행 ) 신지고택마을-운강고택,운남,섬암,도일 고택 그리고 만화정 (52)
  20. 2017.02.09 (청도 여행 ) 임당리 김씨 고택 ( 내시 가계 ) (72)

 

 

 

 

 

 

 

 

 

 

 

의성에서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집으로 돌아가는길

시간의 여유가 약간 있어 문화재 하나를 더 보고 가기로 했다

다행히 아무도 반대하거나 싫어하는 눈치가 안보여 저으기 안심이 되었다

사실 관심이 없으면 지겨울수도 있는데 말이다

 

찾아가고자 한곳은 보물 제 188호인 관덕리 3층 석탑..찾아 가는길이 쉽지는 않다

아마 혼자였다면 찾아가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 의성 관덕리 3층석탑 ( 보물 제 188호 )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석탑으로, 각 부분의 장식이 풍부하다.

아래층 기단의 4면에는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하나씩 새기고, 조각에 의해 나누어진 8곳에 비천상(飛天像)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윗층 기단에도 각 4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긴 후, 기둥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4천왕상(四天王像)을, 오른쪽에는 천부상(天部像)을 배치하였다. 사천왕과 천부상은 모두 부처의 법을 보호하고 지키는 신으로 이들을 이렇게 복합적으로 표현한 것은 보기 드문 모습인데, 이는 통일신라 후기에 가져온 변화인 듯 하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1층 몸돌의 4면에보살상(菩薩像)을 돌아가며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층과 2층은 4단, 3층은 3단으로 줄어 있으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네 귀퉁이에서 살짝 위로 젖혀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없어지고 이를 받쳐주던 네모난 받침돌만 거꾸로 놓여져 있는데, 이는 후대에 와서 흐트러진 것으로 보인다. 그 위로 얹혀있는 돌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원래 위층 기단 윗면의 네 귀퉁이 마다 암수 2마리씩 돌사자 네 마리가 있었으나 이 중 2마리(보물 제 202호, 의성 관덕동 석사자)만 남아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렇듯 동물을 등장시키는 경우는 경주분황사 모전석탑이 가장 앞서고 이후 통일신라 후기까지 그 양식이 줄곧 이어져 내려왔다.

탑에 장식적인 화려함을 더하게 되는 본격적인 시기인 9세기 정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웅장한 기상은 덜하나, 많은 조각을 새겨 놓아 화려하고 아름답다.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에서 옮겨옴 )

 

의성 관덕리 3층석탑은 외진곳에 있었다

머리 장식이 없어지고 받침돌이 거꾸로 놓여져 있다

원래 4귀퉁이마다 암수 2마리씩 돌사자가 있었으나 2마리는 없어지고 2마리는 ( 보물 제 202호 ) 경주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가 대구국립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지금 있는것은 그것을 본떠 만든 것이다

뒤에 있는 사당은 관리가 좀 필요해 보인다

경북 유형문화재 제136호 석불좌상

그런데 누가 소주병을.... ㅠㅠ

 

아기 사자가 보이는것이 암놈 사자

여기는 아기 사자를 2마리 품고 잇다

3층 석탑 조금 떨어진곳에 있는 제실 조금 방치되어 있어 보였다

 

이 아름다운 석탑에 아픈 수난사가 있었다

 

조문국 박물관 김호년씨가 쓴 글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일인(日人)들의 석조예술품에 대한 탐욕이 이곳에까지 미치게

되었고, 이곳에 있는 3층석탑을 대구에 살고 있던 일인(日人)이 1931년에 탑을 매각하여 해체해 가져가려 하였으나

주민들의 반발로 실패하고 원위치에 복원하였다.

이홍식 박사의 회고에 의하면, 이일인(日人)이 바로 대구에 살고 있었던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를 지목하고

있다. 오구라(小倉)가 당시 이 탑을 자신의 집으로 가져가려다 총독부 당국으로 부터 제지를 당한 일이 일인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오구라는 우리나라 문화재를 1000여점이상 일본으로 반출시킨 자이다

.
1층 사리공에서 꺼낸 사리함은 그의 수중으로 들어간 걸로 짐작된다

출처 : 경북중앙뉴스(http://www.gbjanews.kr)

 

외진곳에 있지만 잘 보존하여야 할 우리의 역사다

 

 

Posted by 삶.. 공수래공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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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스티마 2018.10.03 12: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진국이라고, 으스대고 있는 일본이나 프랑스나 영국이나 이 들은 남의 문화재를 약탈해 놓고도
    자기들의 것 인양 진열해두고 관광상품으로 활용하죠.
    그들의 세상에 들어가야, 그들로 부터 우리의 옛 것을 되찾아 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의성 관덕리3층 석탑은 관리가 필요해 보입니다.
    CCTV라도 말이죠.

    • BlogIcon 삶.. 공수래공수거 2018.10.03 17: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금에 와서 모든걸 바로 잡고 돌리기에는 어렵겠지만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 결과 하나둘 나타나는것도 있고요..
      말씀대로 있는것도 잘 관리해야 그런것에 대한 명분도 생깁니다.

  3. BlogIcon Bliss :) 2018.10.03 14: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진짜 소주병...누구인가요ㅠㅠ 문화재 수탈도 맘 아픈데..귀하게 보존한 문화재를 너무 쉽게...대하고 방치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ㅠㅠ 전 몰랐던 곳인데 덕분에 역사와 문화 또 배워가네요. 공유감사합니다!

  4. BlogIcon 유하v 2018.10.03 15: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것하나 귀중하지 않은것이 없는데 관리에 힘써야겠습니다!!

  5. BlogIcon 둘리토비 2018.10.03 16: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석상들이 뭉특해져 보여서 그게 마음에 걸립니다.
    그리고 이리저리 널려진 부분들도 그렇구요.

    이래저래 이런 부분을 보면 마음이 아파오는군요~

  6. BlogIcon 버블프라이스 2018.10.03 16: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수래님 덕분에 또다른 보물을 알고 감상하고 갑니다^^
    편안한 공휴일 보내시길 바래요

  7. BlogIcon TheK2017 2018.10.03 16: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물을 찾아 같이 갈 사람이 있다는 것.
    너무 부럽습니다. 공선생님! ^ㅇ^*

  8. BlogIcon winnie.yun 2018.10.03 18: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여기저기 고건축 답사를 다녀보곤 했지만,
    정말 좋은 곳인데도 관리가 안되는 곳이 많더라고요.
    왜 그럴까 생각도 해봤죠.
    일단 기본적으로 대중적인 관심도가 좀 떨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ㅜ
    그렇다고 무작정 지원을 하기도 좀 애매한거 같기도 하고요.

    • BlogIcon 삶.. 공수래공수거 2018.10.04 08: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긴 접근성이 많이 떨어져서 그런면이
      있지 얺나 생각합니다.
      일부러 찾지 않고는 보기가 어렵습니다,
      전체적인 예산을 잘 효율적으로 배분해
      사용했으면 합니다.

  9. BlogIcon luvholic 2018.10.03 22: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 말이 슬프면서도, 깊이 생각해 볼 말을 해주셨네요..^^
    아픈 역사를 겪고 지켜온 문화재에 관심을 갖고
    찾아가야겠습니다.

  10. BlogIcon T. Juli 2018.10.03 2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석불이 인상적이네요
    불교 사찰의 고즈넉함도 좋고요

  11. BlogIcon veneto 2018.10.03 23: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외진곳에 있고 관리가 잘 안되어있네요 저 소주병은 정말..ㅠ

  12. BlogIcon *저녁노을* 2018.10.04 00: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고...안타깝네요.ㅠ.ㅠ

    잘 보고가요

  13. 핑구야 날자 2018.10.04 01: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좋은 구경 잘 하고 갑니다 가을이라서 바람 쐬러 잠깐 나갔다 왔는데 소개해 주신 곳도가 보면 좋겠네요

  14. BlogIcon 라디오키즈 2018.10.04 08: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체된 거라곤 해도 왠지 돌사자가 어색해 보이네요.@_@
    원래 있어야 할 곳이 아닌데 얹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15. BlogIcon 코리아배낭여행 2018.10.04 11: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석탑을 복 있으니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네요.
    행복한 시간되세요.

  16. BlogIcon 까칠양파 2018.10.04 16: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헐~ 소주병을 저곳에...
    인기가 없다고 관리도 소홀하면 안될텐데, 소중한 우리문화가 망가져 가고 있네요.

  17. BlogIcon 원당컴 2018.10.04 18: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소주병은 문화재하고는 너무 안 어울리네요..ㅠ.ㅠ.
    어느분이 기도 하면서 소주 한잔을 올리려고 하신 모양이시네요...^^

  18. BlogIcon 로안씨 2018.10.04 23: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보아도 글쓰시는 서식이 엄청나세요 ^^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나의 기사같아요

  19. BlogIcon peterjun 2018.10.05 02: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제시대엔 정말 너무나도 많은 약탈이 있었군요.
    우리 문화재들.
    우리가 잘 지켜야하지요.
    외진곳에 있다고 가볍게 여기면 안 될 것 같아요.

  20. BlogIcon 슬_ 2018.10.05 15: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니 웬 소주병;; 으음... 간이제사를 올리려고 한걸까요?
    사자상만 색상이 새것이라 안타깝기도 하고 그래요.
    우리나라 문화재들이 너무나 아름답다보니 수탈당한 피해가 엄청나서 오랜 사찰이나 관광지를 갈 때마다 꼭 하나씩 아픈 역사들이 있네요.

  21. BlogIcon mooncake 2018.10.06 12: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유적은 서울 사는 저로써는 정말 공수래공수거님 아니면 구경할 수 없는 것들이네요. 잘 보았습니다!

 

 

 

 

 

 

 

 

 

 

 

 

사촌리 마을 안으로 들어서니 낡은 목조 건물이 보인다

부분 부분 보수한 흔적이 보이기는 하나 오래된 건물임은 한눈에 봐도 알수 있었다

보물 1825호인 만취당이다

밖에서 설명문을 읽고 있자니 주민분께서 들어가서 보라 하신다

 

종손이 살고 있는 집을 돌아 들어가니 의연한 자태가 눈에 들어 온다

이리 저리 보고 있는데 좀 전의 주민분께서 다시; 들어 오셔 설명을 자청하시면서 건물의 내력을 상세히 알려 주신다

 

* 의성 만취당-보물 1825호

 만취당은 퇴계 이황의 제자 김사원(金士元, 1539~1601)이 학문을 닦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건물로 이곳을 찾은 온계 이해, 서애 류성룡 등 많은 인사들의 시문이 남아 있으며, 현판은 석봉 한호의 친필이다. 건립연대는 만취당 중수기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1582년(선조15)에 짓기 시작하여 1584년에 완공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후 1711년(숙종 37) 연목을 일부 교체하였고, 1727년(영조 3) 동쪽으로 2칸을 증축하였으며(復齋), 1764년(영조 40) 서쪽으로 1칸 온돌방을 증축(西小翼室)하여 현재와 같은 T자형 평면이 완성되었다.

만취당은 누각형 건물로 기둥은 배면을 제외한 3면은 루하주와 루상주로 구분되며 약한 흘림을 두어 원형으로 치목하였다. 창방의 치목은 모서리를 궁굴린 고식의 치목기법을 지니고 있으며 귀솟음이 완연하다. 기둥상부에는 주두를 얹고, 외부는 짧으면서 힘 있는 살미를 두었으며, 내부는 선각된 익공형(翼工刑) 보아지를 대량(대들보)방향으로 얹었다. 초창 이후 증축된 온돌방 부분은 창호 결구법이 맞댄이음으로 대청 부분과는 완연히 구별되며, 상부구조는 기존의 구조를 손상시키지 않고 증축하여 당초의 가구법을 확인할 수 있다. 겹처마의 선자연은 치목수법이 정연하다.

만취당은 도리와 대량의 구조결구법 등 초창 당시의 건축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16세기 사대부가의 주거 및 선비문화 그리고 사회적 요구에 따른 건축적 변화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탈에서 가져 옴)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사가의 목조 건물로 꼽히며 경북 유형문화재에서 2014년 보물로

승격되었다

3년에 걸쳐 이 집을 지은 김사원은 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지만 임진 왜란때는 의병을 일으켜 왜적들과 싸웠다

그리고 흉년이 들면 동네 주민들을 규휼했고 차용문서도 불태우는등 의로운 창고라 불리웠다

그래서 임진 왜란을 비롯한 전쟁..그리고 근대화 의병 전투및 ,6.25를 거쳐 오면서도 이 집만은 동네 사람들이

지켰다 한다

 

만취당 옆에는 김사원의 증조할아버지이며 류성룡의 외할아버지인 송은 김광수 선생이 심었다는 수령 500년된

향나무가 있다

종손이 살고 있는 집안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가면 된다

복제

이 건물과 T자형을 이루고 있다

만취당

한석봉의 글씨다

단청이 있어 물어 봤더니 옛날 집을 지을때 주위의 사찰에서 버려진것을 이용했다고 한다

남자들이 타던 가마도 건물을 짓는데 이용되었다

오래된 흔적을 말해 주는듯 하다

백일홍

구름과 오래된 집이 잘 조화를 이뤄 한폭의 멋진 그림을 만들어준다

 

 

Posted by 삶.. 공수래공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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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행복사냥이 2018.09.03 15: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옥은 역시 아름다워요. 잘 보고 갑니다.^^

  3. BlogIcon 참교육 2018.09.03 15: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건물의 크기가 가문의 영욕을 과시했던 시절입니다
    양반들이 만든 세상 이 건물 하나로 짐작이 됩니다,

  4. BlogIcon 기역산 2018.09.03 15: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 한옥의 아름다움과
    고택이 웅장함을 더하여 보물로 지정 되었군요
    이 또한 역사가 말해주는 현장으로 우리모두 잘 관리 하였으면 합니다.

  5. BlogIcon 로안씨 2018.09.03 16: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옥 나중에 돈 많이 벌면 한옥으로 집을 지어 살고 싶네요 ㅎㅎ

  6. BlogIcon 유하v 2018.09.03 17: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옥은 오래될수록 시간의 흐름을 담아 더욱 멋있어지는거 같아요ㅎ

  7. BlogIcon 까칠양파 2018.09.03 17: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에도 피해가 없었던 이유가 다 있었네요.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하나 봅니다.ㅎㅎ

  8. BlogIcon 작은흐름 2018.09.03 18: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옛시간이 살아숨쉬는 공간 같아요. 한석봉 글씨라니! 어쩐지 유명인 싸인을 본 기분입니다! 아하하^^; 고풍스런 곳 한번 가보고 싶어요. 고택 중 한곳 진짜로 아이들과 가보려고 벼르는 중인데.. 언제 갈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BlogIcon 삶.. 공수래공수거 2018.09.04 08: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 한석봉 글씨를 몇번 보았습니다
      도산서원에 가도 있고
      그리고 그의 글씨를 집자한곳도 여러곳에
      있습니다
      서울에 현대식 전통마을을 조성한곳이 잇더군요
      거기라도 먼저 다녀 오심이..

  9. BlogIcon 버블프라이스 2018.09.03 18: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날씨가 화창하니 구름들도 잘보이고 좋네요^^
    우리나라 한옥은 언제 보아도 멋집니다

  10. BlogIcon T. Juli 2018.09.03 19: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나 아름다운 고옥입니다.

  11. BlogIcon mooncake 2018.09.03 20: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건물 곳곳 보여주셔서, 제가 직접 다녀온 기분이 들어요.
    늘 좋은 곳 구경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12. BlogIcon 모피우스 2018.09.03 21: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잘 보고 갑니다.

  13. BlogIcon 애플- 2018.09.03 22: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아.... 라스트 사진 3컷은 거의 예술 수준이네요....

  14. BlogIcon veneto 2018.09.03 23: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잘 보존되어있네요
    보물로 지정되어있을만합니다!

  15. BlogIcon 둘리토비 2018.09.03 23: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택의 아름다움은 보면 볼 수록 그 매력에 깊이 빠지게 되네요.
    잘 보았습니다~

  16. BlogIcon 하루트래블 2018.09.03 23: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목조건물이 아름답네요..

  17. BlogIcon 잉여토기 2018.09.03 23: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맑은 하늘과 기와 지붕의 고택이 조화되어 더욱 운치로운 풍경을 이뤄내네요.
    덕분에 한석봉 글씨 현판도 잘 구경해요.

  18. BlogIcon _Chemie_ 2018.09.04 03: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푸른 하늘이 정말 멋지네요.
    전통적인 집들이랑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19. BlogIcon 프레종티 2018.09.04 17: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옛날의 가마와
    절을 짓고 남은 나무들을
    활용해서 만들었다니
    신기하네요.
    정말 역사를 품고있는
    목조건물이네요. 멋집니다!!

  20. BlogIcon 슬_ 2018.09.04 20: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지붕의 단청과 가마를 활용해서 지었다니 신기하네요.
    기와 지붕과 파란 하늘은 정말 환상적이게 잘 어울려요ㅎㅎ

  21. BlogIcon peterjun 2018.09.05 01: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네요.
    집을 만든 재료들도 흥미롭고요.
    무엇보다 '덕'이 크게 쌓이니, 어려운 와중에도 지켜내졌군요.

 

 

 

 

 

 

 

 

 

 

다녀온지 얼마 안 되는것 같은데도 글쓴걸 찾아보니 2015년 6월이니 벌써 3년여가 다 되어간다

대구근대역사관

 

이번에 기획전시한 "근대건축 선을 논하다"를 보러 온김에 다시 한번 둘러 보았다

3년이 지나 변한게 있는듯..없는듯 생소함도 느껴 진다

 

* 대구 근대 역사관 소개 ( 누리집에서)

대구근대로의 시간여행 대구 근현대사를 한눈에 조명할 수 있는 공간으로 초대합니다.

대구근대역사관은 1932년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건립되었으며
1954년부터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으로 이용된 근대문화유산 입니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조형미가 뛰어난 역사관 건물은 원형이 잘 보존돼
2003년 대구시유형문화재 제 49호로 지정됐습니다.
2008년 대구도시공사가 이 건물을 사들여 대구시에 기증했으며
이후 대구근대역사관으로 새롭게 단장돼 2011년 1월 문을 열었습니다.

지상 2층, 지하 1층의 박물관에는 근대기 대구의 모습과 선조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상설전시장과 기획전시실, 체험실, 문화강좌실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대구근대역사관이 대구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전통, 문화를 사랑하는
시민들의 요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눈에 봐도 오래된 건물임을 느낄수 있다

대구 근대로여행 지도

조선식산은행당시의 금고

헬렌켈러가 대구에 왔다 갔다는건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한번 다녀온곳이라도 다시 가면 새로 보는것,아는것이 생긴다

 

Posted by 삶.. 공수래공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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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디프_ 2018.08.03 15: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갑자기 공수래님은 이런 장소가면 글을 다 읽어보시는지 궁금해졌어요!
    저는 그냥 보기만하거든요.. 그중 관심있는것만 읽어보고..ㅋㅋㅋ

  3. BlogIcon SoulSky 2018.08.03 16: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곳이네요. 저도 함 가보고 싶네요

  4. BlogIcon 고요함속 2018.08.03 16: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구 근대 역사관 너무 좋네요
    덕분에 너무 잘보고 갑니다 ~~

  5. BlogIcon 달달함1 2018.08.03 17: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보고 싶은곳 이네요
    잘보고 갑니다 ~~

  6. BlogIcon luvholic 2018.08.03 17: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구 근대 역사관 찬찬히 둘러보고 싶은 곳이네요~~^^
    여러 사진들 잘 보고 가요~

  7. BlogIcon peterjun 2018.08.03 18: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곳엔 여러번 가야 좀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들러보고 싶은 곳이네요.
    오래된 이야기들이 있어 볼 것도, 배울 것도 많네요. ㅎㅎ

  8. BlogIcon 기역산 2018.08.03 2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구 근대역사관에 대하여
    공부하고 갑니다.

  9. BlogIcon 당근짱조아 2018.08.03 21: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헬렌켈러님도 다녀가셨군요!>ㅅ<♡
    대구는 더위가 누그러들면 꼭 다녀오려구요!

  10. BlogIcon veneto 2018.08.03 22: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에 대구갔을때 지나가면서 봤었어요 ㅎㅎ
    친구가 별로 가고싶은생각이 없어보여서...
    다음에 혼자왔을때 둘러봐야겠네요
    무엇보다 날씨가 너무 뜨거워서 ㅠㅠ

  11. BlogIcon 유하v 2018.08.03 23: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구의 근대사를 알 수 있는 좋은 곳이네요 ㅎ

  12. BlogIcon 애플- 2018.08.04 01: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줄이 명언이네요 ^^ 멋지십니다.

  13. BlogIcon 최 율 2018.08.04 01: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자친구랑 여름 끝날 무렵 대구여행갈려고 하는데~
    여기 한번 방문해봐야겠어요^^

  14. BlogIcon 하루트래블 2018.08.04 10: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보가 좋네요!!!!!

    한국, 일본등 해외여행 팁과 할인코드등 싸게 여행 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블로그입니다. 놀러오세유~

  15. BlogIcon 문moon 2018.08.04 10: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구근대역사관이 건물도 잘 보존되어 대구의 근대역사를 알려주고 있네요.
    작은거 하나라도 잘 보존해야겠습니다. ^^
    공감 꾹~~ 좋은 주말 되세요~

  16. BlogIcon 은이c 2018.08.04 14: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유명한 분들이 오셨었네요~ ㅎ
    보통학교 말은 들어보긴 했는데 이케 보니 신기해요~
    대구 사시는분들은 대부분 다녀오셨을것같아요
    좋은 주말 시원하게 보내세요~~^^

  17. BlogIcon 소피스트 지니 2018.08.04 2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건축물들을 오래오래 보존했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지나면 이런 역사와 작품들은 텍스트로만 존재하게 되어 버릴까봐 걱정이에요.

  18. BlogIcon 맛난고구마 2018.08.05 13: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옛성길따라 전부 걸어봤는데
    근대역사관건물은 지나가기만했지
    들어가볼 생각은 못했네요
    덕분에 가봐야겠네요

  19. BlogIcon 새 날 2018.08.05 21: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젠가 인천 차이나타운에 갔더니 근대에 지어진 양식 건물에 당시 은행의 모습을 갖춰놓은 걸 본 기억이 있습니다. 비슷한 시대에 만들어진 건물이라 그럴까요?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20. BlogIcon 글쓰는 여자 희 2018.08.08 16: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천, 군산과 같이 대구에도 은행건물이 근대양식의 건축물로 남아있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당연하게 느껴지네요. 아픈 역사이지만 잘 남겨둬서 오래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 BlogIcon 삶.. 공수래공수거 2018.08.09 09: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전에도 몇군데 남아 있던데 사유로 된건물이 많아 좀 아쉬웠습니다
      잘 유지할수 있도록 지도하고 나중에라도
      정부가 매입 관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21. BlogIcon 슬_ 2018.08.10 19: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수래공수거님 덕에 저도 헬렌켈러가 대구에 왔다갔다는 사실을 지금 처음 알았네요.
    대구 근대여행시 꼭 방문해야할 필수코스로 보입니다^^

 

 

 

 

 

 

 

 

 

 

 

 

이상화 고택은 서너번은 온곳인데 포스팅하는건 처음인것 같다.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이상화 시인은 잘 몰라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란 시 제목은 누구라도 한번은

들어 보았을것이다

 

대구 근대 골목길 중 가장 인기 있는 곳 중 하나인 이상화고택은. 이상화 선생이 1936년부터

1943년 사망할 때까지 살았던 집으로,교남학교(현재 대륜고등학교) 교가 가사의 문제로

가택 수색을 당하여 자신의 시 원고를 모두 압수당했던 곳이기도 하다

 

1999년부터 고택을 보존하자는 이상화기념사업회의 시민운동을 시작으로 군인공제회에서 인근 주상복합아파트를

건립하면서 고택을 매입해 지난 2005년 10월 27일 대구시에 기부하여, 대구시는 그동안 고택을 보수하고

고택보존시민운동본부에서 모금한 재원으로 고택 내 전시물 설치를 하였.

 

이상화(李相和, 1901~1943) 호는 상화(尙火), 대구 출생. 경성중학교 3년을 수료하고(1917) 그 해 강원도 일대를 방랑했다. 이상화의 작품 활동은 그가 향리 친구인 현진건의 소개로 참여한 <백조> 창간호에 "말세의 희탄"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그의 작품 활동은 대략 초기에는 <백조> 그룹 등과 함께 하면서 "나의 침실로"와 같은 탐미적 경향의 시를 썼으나, 1926년경을 고비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같은 식민치하의 민족 현실을 바탕으로 한 저항 정신과 향토적 세계를 노래했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역사를 바로 꿰뚫어보는 가운데 치열한 시대 정신과 따뜻한 휴머니즘 정신을 아름다운 예술혼으로 승화시킨 암흑가의 민족 시인이자 민중 시인,저항 시인의 한 사람으로 불린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 운동과 관련된 혐의로 여러 차례 감금되는 생활을 하였다. 백기만이 펴낸 <상화(尙火)>와 고월(古月)에 16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대표작으로는 1926년 6월, <개벽> 70호에 발표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들 수 있다.             ( 이상화 기념 사업회에서 인용 )

 

대구에는 고택뿐 아니라 곳곳에서 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상화 선생이 젊은 시절 걸어 다녔다고 하는, 달서구 유천교에서 상인동 임휴사까지 이르는 약 2.5Km의

길을 ‘상화로’라고 부른다. 수성못과 달성공원에 이상화 시비가 건립되어있고, 두류공원에는 그의 동상이 있다.

 또한 그가 교사로 근무하였던 교남학교에는 그가 작사한 교가비가 건립되어있다

 

느린 우체통은 1년뒤에 배달된다

 

고택 안쪽의 게산예가에서는 터치스크린 화면을 통하여 근대문학, 음악, 미술문제를 풀어 볼 수 있고

전자방명록도남길 수 있다.

영상관에서는 계산동에서 활동했던 예술가들의 삶을 상영하고 전시실에는 사진과 엽서를 통하여

 대구의 근대문화를 만나볼 수 있다

 

 

이상화고택 바로 앞에는 국채보상운동을 통하여 국권회복을 꿈꿨던 대구 출신의 민족 자산가 서상돈 선생의

고택이 있다. 서상돈 선생은 나라를 위해 자신의 많은 재산을 내놓았고, 일본에게 1,300만원이라는 빚을 진

우리나라가 이를 갚지 못하면 망한다고 생각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하였다.

국채보상운동은 신분을 초월하여 전국민 운동으로 확산되었으나 안타깝게도 결실을 맺지 못하였다.

서상돈 선생의 고택은 인접한 고층 아파트로 인하여 대문은 굳게 닫혀있고, 현재는 사랑채와 별채 사이의

통로를 통하여 출입이 가능하다. 

 

서상돈은 조선 고종 때의 민족운동가 이다.

 1898년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간부로 활동하면서 러시아의 내정간섭을 규탄하고 민권보장 및 참정권획득

운동을 전개하였고 1907년 대구의 광문사의 부사장으로 재직 중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할 것을 제의하고

국채보상취지서를 작성 발표하는 등 국권회복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그의 고택은 2008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복원되어, 이상화고택과 함께 중요한 거점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 대구 중구청 소개글에서 인용 )

 

시민운동으로 상화 고택이 도심의 개발에도 이렇게 보존이 되고  운영되어 정말 다행인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공간으로 거듭 났으면 한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대구 중구 계산동2가 84
도움말 Daum 지도
Posted by 삶.. 공수래공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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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작은흐름 2018.07.25 14: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이런 고택이 잘 보존되어 감동했다가 그게 시민운동 덕분이란 말씀에 좀 씁쓸해집니다. 그런 건 정부가 좀 해줬으면 싶네요..

  3. BlogIcon 잉여토기 2018.07.25 15: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저도 사진으로나마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시인과 국채보상운동 서상돈 운동가의
    고택을 잘 봤네요.
    고택 특유의 나무 냄새가 향긋하게 풍겨올 거 같아요.

  4. BlogIcon 『방쌤』 2018.07.25 15: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존이 정말 잘 되어있더라구요.
    들어가는 골목길들도 너무 좋구요.
    저는 비가 굉장히 많이 오는 날 갔었는데 그래서인지 느낌이나 분위기가 더 강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것 같아요.^^

  5. BlogIcon 운동하는직장인 에이티포 2018.07.25 16: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런 옛것들이 잘 보존이 되어야 후손들이 역사를 공부하는데 큰 도움이 될텐데....ㅠㅠ

  6. BlogIcon 프레종티 2018.07.25 18: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에서나 보던 인물들의 고택이군요!
    웅장하진 않더라도 뭔가 모르게 포근하네요..

    뒤에 아파트와 잘 보존되있는 고택이 대비되어
    더 멋스럽습니다.

    어린아이들 현장학습 장소로도 좋겠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


    • BlogIcon 삶.. 공수래공수거 2018.07.26 07: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기도 예의 없이 떠 드는 관광객들땜에
      주민들과 조금 마찰이 있가도 합니다
      주차문제도 있고...

      평일 낮에는 견학오는 학생들도 많다 하더군요
      오늘도 무덥습니다
      사원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7. BlogIcon 고요함속 2018.07.25 18: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정말 너무 좋아보입니다
    덕분에 너무 잘보고 갑니다 ~~

  8. BlogIcon 열매맺는나무 2018.07.25 18: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구에 잠깐 들린적이 있었는데, 이런 고택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저는 스탬프 찍기를 좋아하는데 반갑네요. ^^

  9. BlogIcon 슬_ 2018.07.25 19: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다녀온 곳 중에서는 시인이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영랑생가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그렇지만 여기가 훨씬 시민 참여도도 높을 것 같고 구성이 잘 되어 있어요.
    우리나라에 위인들이 참 많은데, 그분들이 계셨던 공간이 잘 보존되었으면 좋겠어요 :)
    대구가면 구경해보고 싶네요.

    • BlogIcon 삶.. 공수래공수거 2018.07.26 07: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시내 중심가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접근성은 참 좋습니다
      대구 근대로 여행을 하시면 들러 보실수 있으십니다
      다음주 월요일 간단하게 관광코스 정보를 올려 보겠습니다 ㅎ

  10. BlogIcon 달달함1 2018.07.25 19: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당히 좋아보입니다
    잘보고 갑니다 ~~

  11. BlogIcon @산들바람 2018.07.25 22: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고택 구경 잘하고갑니다.
    무더운날씨 편안한 밤 되세요

  12. BlogIcon avada 2018.07.25 23: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 의의가 있는 저택을 잘 보존하고 있어 다행이네요.
    요즘 정말 덥네요. 무더운 날씨에 건강 주의하세요.

  13. BlogIcon veneto 2018.07.25 23: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시가 잘 되어있네요 ㅎㅎ
    잘 모르는 분이지만 한번 둘러보면 좋을것 같아요~!

  14. BlogIcon peterjun 2018.07.25 23: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미있는 분들의 흔적이 보존되어 있음에 감사의 마음을 가져봅니다.
    많은 분들이 찾아가 배움을 함께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드네요. ^^

  15. BlogIcon 애플- 2018.07.25 23: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수래공수거님 덕분에 제 교양이 깊어지는 느낌입니다. ㅎㅎ 감사

  16. BlogIcon 유유로그 2018.07.26 00: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너무 잘 구경하고 갑니다.
    사진이 많아서 갔다온 느낌이 드네요 ^^

  17. BlogIcon 시크릿리치 2018.07.26 05: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미 있는 이런 공간은
    다음세대를 위해서라도 잘 보존 되었으면 좋겠네요 ㅎ

  18. BlogIcon Bliss :) 2018.07.26 06: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구 출신의 역사적인 인물과 문인이 많은 듯해요 국어책 역사책 인물들의 고택이 신기하고 고맙네요. 고층아파트로 출입문이 변경되다뇨ㅠ 그점은 아쉽네요. 더운데 건강 유의하시길요

    • BlogIcon 삶.. 공수래공수거 2018.07.26 07: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나마도 개발이 되지 않고 이렇게 남아 있는것도 시민 단체의 힘입니다
      주위와는 갈등을 최소화했으면 합니다

      대구가 나름 문학,예술도시입니다 ㅎ
      편안한 저녁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19. BlogIcon 욜로리아 2018.07.26 14: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가가 궁금해지네요
    왜 교가가 무슨 문제길래 원고를 다 압수했을까요

    • BlogIcon 삶.. 공수래공수거 2018.07.27 09: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교가를 찾아 보니 아래와 같습니다
      "태백산이 높솟고 낙동강이 내 다른곳에
      오는 세기 앞잡이들 손에 손을 잡았다
      내 이상 굳은 나의 의지로 나가자
      나가 나아가자
      예서 얻은 빛으로 삼천리 곧곳에 샛별이 되어라"
      해석하기에 따라 문제가 될수도 있겠습니다

    • BlogIcon 욜로리아 2018.07.27 10: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앞잡이들이 문제였나보네요ㅜㅜ

  20. BlogIcon mooncake 2018.07.26 20: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구에 간다면 잊지 않고 꼭 들려보겠습니다^^

  21. BlogIcon 스티마 2018.07.27 09: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상화 고택, 서상돈 고택등
    집 주위에 이런 곳이 있다는건 우리의 삶이 그들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껴지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고령은 2015년 8월에 고령 향교,산림 녹화 기념숲

대가야박물관을 한번 다녀왔었다

개실마을 본 김에 그때 보지 못했던 고령 여기저기를

둘러 보고 가기로 했다

 

지도에서 개실마을에서 가까운곳을 찾아 보니 죽유종택이

눈에 띈다

* 죽유 종택 (경북 기념물 제139호 )

 조선 중기의 학자·문신이자 의병장이었던 죽유 오운(吳澐)(1540∼1617)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이 지은 살림집이다. 오운은 임진왜란(1592)이 일어나자 곽재우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으며, 개인 문집인 『죽유문집』과 조선 중기 남인의 역사인식이 반영된 대표적인 역사서인 『동사찬요』를 쓰기도 하였다. 

죽유종택은 오운의 후손이 1700년대 말에 지어 죽유 오운을 기리고자 집의 이름을 죽유구택이라 하였다. 그 후 1906년에 고쳐 지었으나 1920년 대홍수로 이곳에 옮겨 왔다. 이때 사랑채만이 그대로 옮겨 왔고 안채를 비롯한 나머지 건물들은 새로 지은 것인데 특히 오운의 위패를 모신 사당은 1953년 경에 새로 지었다. 특히 이 죽유종택은 고령지역 3.1운동의 본거지였으며 한국전쟁 때에는 노동당 사무실로 쓰이는 등의 역사적 애환을 가진 곳이다.

송림리 마을 안쪽의 야트막한 야산 어귀에 남향하고 있는 종택 건물의 배치는 크게 안채를 비롯한 정침공간과 사당이 있는 제사공간으로 나뉜다. 정침공간에는 사랑채와 중사랑채, 유물관, 안태가 각각의 건물로 튼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안채 동쪽 경사진 곳에 목판을 보관하는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다. 1906년에 지어진 사랑채는 이 종택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보이며, 앞면 4칸 가운데 오른쪽 2칸은 반칸 정도를 물려 툇마루를 형성한 후 온돌방으로 하였고, 나머지 2칸은 대청으로 하였다. 뒤쪽에 1m 정도를 더 내어 온돌방 뒤편은 벽장으로 사용하였는데, 특이한 것은 대청 뒤쪽도 골방으로 꾸민 것이다. 별도의 장식을 하지 않아 소박하지만 건실한 부재를 사용하여 중후한 느낌을 준다. 유물관에는 고문서류 7종 110매와 전적류 7종 12책(보물 제1203호)이 보관되어 있다. 

죽유종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오운의 학문적 자취와 임진왜란 당시 그의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는 곳이며 한말 계몽기와 일제시대에 민족의식을 깨우치기 위한 교육의 산실로서 활용되는 한편 고령지방 3.1운동의 발원지로서 그 의의가 있다

                                                         ( 문화재청 누리집에서 인용 )

 

죽유 종택에도 후손이거주하고 계신다.그래서 안은 보지 못했다

옆에는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었다

바로 근처에 매림 서원이 있었으나 역시 문이 잠겨 있어 밖에서만 보았다

* 매림서원

 서원은 곽수강(郭壽岡)과 오선기(吳善基)를 추모하여 유림에서 1707년(숙종33)에 건립하였다. 1868(고종 5)에 서원훼철령에 의해 훼철되고 매림재(梅林齋)로 존속하였다. 1985년 현풍곽씨와 고창오씨 양 문중의 후손들이 중수하면서 서원이 복원되었다. 매년 3월 중정(中丁)에 두 배향인의 향사를 지내고 있다. 최근 입구확장 및 담장설치 공사를 하였다.

                                                                 (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인용)

 

찾아 오는 사람이 별로 없는지 눈만 멀뚱거리는 녀석..삽살개 같기도 하고 사자견 같기도 하다

가까이 가기가 겁이 나긴 났다

지난번 고령 방문시 놓친 당간 지주는 꼭 보고 가야 했다

당간지주 포스팅은 이번이 3번째인데 보물은 처음이다

고령 지산리 당간지주 ( 보물 제 54호 )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세워두는 것으로,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이곳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 두게 되는데 이 깃발을 걸어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드물게 당간이 남아 있으나, 대부분은 당간을 받쳐주던 두 기둥만 남아 있다. 

마을로 변해버린 절터에 세워져 있는 이 당간지주는 동서쪽으로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안쪽 면에는 아무런 조각을 두지 않고, 바깥쪽 면에 양 모서리를 줄인 후 가장자리와 가운데에 세로띠를 도드라지게 새겨두었는데 그 모습이 장식적이고 화려하다. 앞뒤 두 면은 윗부분에 안상(眼象)모양으로 움푹 들어가게 새겨 놓았다. 꼭대기는 바깥으로 내려오면서 둥글게 깎여져 있으며, 3단으로 굴곡을 두었다. 안쪽 면의 아래위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2개의 홈을 파놓았는데, 직사각형의 모습이다. 현재 아래부분은 묻혀 있어 받침의 모습을 알 수 없다.

단아한 조각솜씨와 그 수법에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통일신라 중기인 8세기쯤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지난번 못간 우륵박물관을 관람하기 위해 발길을 돌린다

Posted by 삶.. 공수래공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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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휴식같은 친구 2018.04.06 16: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령엔 한번도 가보지 못한곳인데 잘 보고 갑니다. 고택이 정말 멋지네요.

  3. BlogIcon 드래곤포토 2018.04.06 17: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의 흔적을 둘러보고 오셨네요
    옛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어 좋은 것 같습니다.

  4. BlogIcon Deborah 2018.04.06 17: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령도 제가 가본곳이 아니군요.
    한국에 안가본 곳이 너무 많아요 ㅠㅠ
    이렇게 소개를 통해서 알아가는 재미도 있군요

  5. BlogIcon 요니피그 2018.04.06 19: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령은 40년넘게살면서도가본적이없는곳인데 시간되면함 가보싶네요 솔지히 요런곳이 있다는것도 몰랐거든요

  6. BlogIcon 욜로리아 2018.04.06 19: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삽살개? 귀여워요~~
    공수님 빤히 보고있나봐요~~

  7. BlogIcon 비키니짐(VKNY GYM) 2018.04.06 20: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손분이 관리하시면서 자부심도 있으시겠습니다.

  8. BlogIcon T. Juli 2018.04.06 20: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름다운 곳이네요

  9. BlogIcon 애플- 2018.04.06 21: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까이 가기가 겁이났다는 말씀에 빵 터졌습니다. 정작 사진의 개는 귀여워서 ㅋㄷ.... 좋은 곳 잘 봤습니다. ^^

  10. BlogIcon 죽풍 2018.04.06 21: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도로 대구 오가면서 한 번 들러봐야겠습니다. ^^

  11. BlogIcon 『방쌤』 2018.04.06 23: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고 보면 또 다르게 보이는 장소들이지만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바라만 봐도,,,
    편안함? 또는 익숙함을 전해주는 곳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게는 이런 곳들이 그런 느낌을 전해주는 것 같아요.

  12. BlogIcon veneto 2018.04.07 00: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키는 개는 약간 사나운면이 있어서 가까이가면 물릴수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ㅎㅎ
    깔끔하고 잘 관리되어있네요!

  13. BlogIcon 슬_ 2018.04.07 00: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수래공수거님 사진을 보면 대한민국 방방곡곡 돌아다니면서 이런 문화재를 보고 싶어집니다.
    특히 대구에 볼 게 정말 많은 거 같아요. 대구 홍보대사세요 ^^
    푸른 하늘과 서원의 대문은 언제봐도 멋지네요.
    강아지 표정이 진짜 뭔가 득도한 느낌이 들어ㅇ요ㅋㅋㅋㅋㅋㅋㅋㅋ 은근 무섭기도 하고요ㅋㅋㅋ

  14. BlogIcon 라오니스 2018.04.07 01: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간지주가 보물로 지정 된 경우는 많이 없던데 ..
    지정번호가 빠른것을 보니, 가치를 일찍 알았나봅니다 ..
    고령도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
    요즘 경북 내륙지방에 대한 호기심이 많습니다 .. ^^

  15. BlogIcon 영포티 2018.04.07 10: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간지주. 처음 들어본 단어인데 몰랐던 것을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도 문화유산들에 좀더 관심을 가져야겠어요~~

  16. BlogIcon 예스투데이 2018.04.07 10: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문화 유산들도 정말 잘 알고 보면 즐거움이 있는데, 잘 찾아가지 못하고 있네요. 아이가 좀 더 크면 같이 공부도 하면서 이런 곳들 찾아서 여행 다녀야겠어요.

  17. BlogIcon Bliss :) 2018.04.07 12: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권율, 권징도 그렇고 문신 의병대장이 많았던 것 같아요. 오운도 그 중의 한 분이셨군요. 내부는 볼 수 없어 아쉽지만, 후손이 거주하고 있어 더욱 좋네요! 덕분에 또 새로운 사적지 구경하게 되네요 미세먼지 유의하시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18. BlogIcon ppalli5 2018.04.07 12: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보고갑니다 ^.^
    좋은하루 되세요

  19. BlogIcon 스티마 2018.04.07 15: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간이 멈춘듯 고요하게 느껴집니다.
    요즘 미세먼지로 회색빛 하늘만 보다가
    파란 하늘을 보니 기분이좋아 집니다.

  20. BlogIcon peterjun 2018.04.08 01: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간지주에 대해서 처음 배워보네요.
    고령 지산리 당간지주 보물 54호...
    덕분에 머릿속에 오래 남을지 모르겠지만... 배울 수 있어 좋습니다. ^^

  21. BlogIcon 버블프라이스 2018.04.08 20: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나 국내에 문화유산 (보물들)을 찾아 소개해주셔서 몰랐던 보물들을 알게되고 감사히 잘 보고 있습니다^^

10여년전쯤 친구와 고령 일대를 다니다가

우연히 들렀던곳인데. 그 후로 가 보질 못하고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생각이 나서 미세먼지가

심한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찾아 나선곳이다

 

경북 고령군 쌍림면의 "개실 마을"이다

10여년전에 본 기억과는 많이 달라 있었다

아마 그때는 분명 건성으로 보았을것이다

 

이곳 개실 마을은 영남학파 종조인 문충공 점필재 김종직의

후손들이 350여년간 동성마을을 이루고 있는곳이다

무오사화때 화를 입은 점필재 김종직의 5대손이 1650년경에 이 마을로 피신와서 은거하며 살 때, 꽃이 피고 골이 아름다워

아름다울 가(佳) 골 곡(谷)을 써서 가곡이라 했는데 그후 음이 변하여 개애실,개실이 되었다 한다

개실 마을에는 김종직의 종택, 사당 등 고택과 점필재 김종직과 관련한 유적이 많이 남아 있어 한국 전통마을의 미를

느낄 수 있다

농협 지정 팜스테이 마을로 2003년 지정되었고 2015년에는 농촌체험휴양마을로 지정되었다

 

* 점필재 김종직

김종직(金宗直, 1431년 6월 ~ 1492년 8월 19일)은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이자 사상가이며, 성리학자, 정치가, 교육자, 시인이다. 자(字)는 계온(季溫)·효관(孝盥), 호는 점필재(佔畢齋), 시호는 문충(文忠), 본관은 선산(善山, 일명 일선)이다. 세조때에 동료들과 함께 관직에 진출하여 세조~성종 연간에 동료, 후배 사림파들을 적극 발탁하여 사림파의 정계 진출 기반을 다져놓았다.

1459년(세조 5년) 문과에 급제하여 출사하여 성종 초에 경연관·함양군수(咸陽郡守)·참교(參校)·선산부사(善山府使)를 거쳐 응교(應敎)가 되어 다시 경연에 나갔으며, 승정원도승지·이조 참판·동지경연사·한성부 판윤·공조 참판·형조 판서·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재지사림(在地士林)의 주도로 성리학적 정치질서를 확립하려 했던 사림파의 사조(師祖)의 한사람이자 중시조격이다. 그러나 세조의 즉위를 비판하여 지은 〈조의제문〉이 무오사화를 불러일으켰다. 조선왕조 수립 이후 성리학을 전승한 것은 길재, 권우였고, 사림파 출신으로 처음 조선정계에 진출한 이는 정몽주, 권근이었으나, 세조 이후 조선 조정에 본격적으로 출사한 것이 김종직과 그의 동료, 제자들이었으므로 김종직을 사림파의 실질적인 중시조로 간주한다.

김종직은 자신을 전별(餞別)하는 문인들을 '우리당'(吾黨)이라고 불렀는데 김종직을 종주로 삼았던 정치세력이 사림(士林)이

다. 이를 통상 붕당 정치의 시원으로 간주한다.

정여창, 김굉필, 이목, 권경유, 김안국, 김정국, 김일손 등이 모두 그의 제자였고, 조광조 김굉필의 제자로서 그의 손제자였

으며, 남효온 남곤, 송석충, 김전, 이심원 역시 그의 문하생이었다.

그는 세조의 찬탈을 비판하고 이를 항우 초 회왕 살해에 비유한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지어 기록에 남겼으나 그자신은 1459년(세조 5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가 벼슬이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김종직 종택 전경

국제워크 행사가 2007년,2008년에 잇었던 모양이다

근심푸는곳..웬지 와 닿는다

* 점필재 김종직 종택 ( 경북 민속문화재 제62호)

안채는 1800년경에 건립하여 1878년에 중수하였고, 사랑채는 1812년에 건립한 것으로 추측되는 선산 김씨 문충공파(善山金氏 文忠公派)의 종가이다.  마을 뒷산을 등지고 완만한 경사를 이룬 대지에 남동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가 있고, 사랑채 뒤에는 안마당을 마주한 정침 의 좌우에 고방채와 중사랑채를 두어 전체적으로 튼·자형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는 안쪽에 툇마루를 둔 2칸방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전면이 개방된 대청을, 좌측에는 앞뒤로 방과 작은 부엌을 두었다. 막돌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방주를 세웠는데, 대청의 앞쪽 가운데 기둥은 원주이다.부가구는 3량가로 대량 위에 원형판대공을 놓아 종량을 받게 하였다.

종손이 기거하고 있어 출입은 안 되었다

* 도연재 ( 경북 문화재 자료 제111호)

이 건물은 필재(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선생의 과업(過業)을 기리기위해 지방유림들이 건립한 강학지 소(講學之所)이다.종택(宗宅)에서 남서쪽으로 약 100m 거리를 두고 있다. 점필재의 15세 주손(?孫)인 김창현(金昌鉉)대에 건립되었다 하며, 상량문(上樑文)에는 1886년(?幀紀元後四丙寅三月···)으로 기록되어 있다.

솟을대문을 지나 방형(方形)으로 토석담당을 두른 일 곽 안으로 들어서면 마당을 마주하여 동남향으로 좌정하고 있다. 평면은 정면 5칸,측면 2칸 규모의 일(一)자형으로 전면에 툇마루를 둔 2통 칸 온돌방의 우측에는 전면이 개방된 대청을 두었는데 우측면과 배면의 각 칸에는 쌍여닫이 판문, 대청과 방 사이에는 2분합틀 문을 달아 개방할 수 있게 하였다.좌측에는 전면에 툇마루와 같은 폭으로 하부에는 광, 상부에는 누마루를 설치하였으며, 그 뒤쪽의 하부는 아궁이 부엌을, 상부는 방에서 드나들 수 있는 다락을 설치하였는데 전면에 높은 누마루를 놓은 수법이 주목된다.

이 비석은 합천에서 고령을 거쳐 서울로 향하는 진상품을 서로 인수인게한곳에 세운것으로

합천군수와 고령현감이 진상품의 인수인게장소를 확정하고 서로 잊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체험 숙소로 활용되고 잇는곳 같다

여길 다녀 옴으로 한구석에 남겨둔 묵은 숙제를 한 느낌이 드는건 왜일지 모르겠다

 

도시 생활에 친 사람들이 한적하고 조용한 농촌 체험 하기에는 좋은 장소가 아닌가 싶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북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 242 | 개실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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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삶.. 공수래공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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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보심 2018.03.29 17: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아담한 전통 마을 너무 좋아요!
    전국에 이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 정말 많을 텐데,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대중적으로 상품화 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네요. 포스팅 보며, 훗날
    많은 사람들이 찾고 싶은 관광지로
    거듭날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

    • BlogIcon 삶.. 공수래공수거 2018.03.30 08: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이블로그에 다녀 온 고택,고택마을만해도 10여곳이 넘을듯 합니다
      나름대로 역사와 전통이 있더군요
      담장,벽돌담이 예쁜곳도 있고 여기나 인흥마을처럼 종손들이 기거하는곳도 있고 다양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것 같습니다^^

  3. BlogIcon 작은흐름 2018.03.29 18: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이런 마을 어떻게 이렇게 많이 아세요? 예전에 친구들과 농암종택 다녀온 기억이 정말 두고두고 남아있는데.. 여기도 다녀오면 예쁜 추억이 될 것 같아요^^

    • BlogIcon 삶.. 공수래공수거 2018.03.30 08: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구를 중심으로 컴파스로 원을 그리듯 인근을 하나하나
      세세히 다니고 있는중입니다
      지역 관광 지도를 보면 대부분은 표기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는 않지만..ㅎ

  4. BlogIcon 북두협객 2018.03.29 18: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실마을 이쁘네요^^

  5. BlogIcon 은이c 2018.03.29 19: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던데 ㅎ
    묵은숙제 잘 해결하셨나요? ㅋ
    체험해보는것도 좋을것같아요.겨울에는 좀 춥겠죠~ ㅋ
    좋은 저녁되세요~~ ^^

  6. BlogIcon 애플- 2018.03.29 20: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분위기 좋은 곳이네요. 워낙에 사진과 구성을 잘 표현해주셔서 안다녀와도 되겠습니다... ㅎㅎ.. 게으른 소리했네요 ^^

  7. BlogIcon 하스텐 2018.03.29 20: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처음보는 좋은 곳들을 공수레님 덕분에 알게 되네요.
    저기 가면 마음이 참 평온해질 것 같습니다. ^^

  8. BlogIcon 버블프라이스 2018.03.29 21: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쁘고 시끄러운 도시에서 벗어나 농촌체험을 하기에 좋은 곳 인것 같습니다^^ 덕분에
    잘보고 갑니다

  9. BlogIcon 죽풍 2018.03.29 21: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창에서 대구 다닐 때 도로비 아낀다고 국도로 가면서 고령에 들렀습니다.
    한 번 가볼까 합니다. ^^

  10. BlogIcon 영포티 2018.03.29 21: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적하니 생각이 필요한, 생각이 많은 사람들에게 가볼만한 곳이네요^^

  11. BlogIcon T. Juli 2018.03.29 21: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가 깊은 고택들이 고즈넉하고 아름다워요

  12. BlogIcon 무예인 2018.03.29 22: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속 한옥이 너무 이뻐요

  13. BlogIcon 새 날 2018.03.29 22: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이 쨍하니 아주 좋습니다. 색감도 훌륭하고요. 고즈넉해 보이는 곳이 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됐군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14. BlogIcon 둘리토비 2018.03.29 23: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택의 따스함과 그 위엄을 봅니다.
    김종직 선생의 역사의 부분에서는 이래저래 안타까움만 남습니다.
    하필 그 시대였는지....(세조~ 연산)

  15. BlogIcon veneto 2018.03.30 00: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체험도 할수있고
    시설유지가 꽤나 잘되고 있네요!

  16. BlogIcon peterjun 2018.03.30 01: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령이라는 지명은 저에게 무척이나 생소하네요.
    후손들이 잘 지켜나가고 있는 곳이로군요.
    이곳을 다녀오시고 묵은 숙제를 한 느낌이 드셨다니...
    어쩐지 기분이 더 좋으셨을 것 같아요.
    고풍에서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것 같네요. ^^

    • BlogIcon 삶.. 공수래공수거 2018.03.30 09: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시군요
      전국적으로 크게 알려진것이 없어 그럴듯도 합니다
      예전 대가야 시절 융성했었습니다 ㅎ
      몇번을 개실마을 가려고 했다가 이번에 다녀 오게 되었습니다^^

  17. BlogIcon Deborah 2018.03.30 04: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먼곳을 다녀 오셨군요. 개실마을이라..유명한 문신이자 사상가였던 분이 있었던 곳이군요.

  18. BlogIcon 방송/인터넷/전화 가입! 2018.03.30 09: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같은날 이런곳 딱이네요 ㅎ

  19. BlogIcon Bliss :) 2018.03.30 11: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숙제 즐겁게 하고 오신 것 같은데요?^^ 국사 공부할 때 들어봄직한 명칭들이 많네요! 종택 규모도 크고 저는 팔각형 창문이 너무 이뻐보입니당^^ 다양한 언어의 환영 문구 역시 마을과 잘 어울리구요^^ 사진에는 느껴지지 않지만, 미세먼지 유의하시길요!

  20. BlogIcon 우브로 2018.03.30 23: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실마을~에 봄이오고있나봐요~
    봄 나들이 가기에 딱 좋을것 같아요.
    저희 아이들은 공부시킨다고 싫어할지 몰라도...ㅋㅋㅋ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대구수목원 바로 뒤,인흥마을이라

불리우는 남평문씨본리세거지

수목원 들렀다가 생각이 나면 한번씩

찾는곳이다

 

작년 봄에 들러 목화가 핀것을 보았었고

들어가는 진입로 공사를 햇었는데

일년이 훌쩍 지난 싯점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 9월의 풍경도 담을겸해서 지난 9월

중순 다녀 왔었다

☞ 봄의 남평문씨 본리세거지

 

확실히 갈때 마다 새로 보이는게 있다

이번에는 여태 못 보았던 인흥사지 터와 석탑 1기가 있다는것을 알고 왔

 

( 남평문씨본리세거지 ) 대구광역시 민속문화재 제 3호
문익점의 18대손 문경호가 터를 닦아 남평 문씨 일족이 모여 살던 곳이다. 원래 절이 있던 명당터를 구획하여 집터와 도로를 반듯하게 정리하고 집을 지었다. 지금은 조선 후기의 전통가옥 9채와 정자 2채가 남아 있으며, 도로에 접한 부분에는 나지막한 담을 쌓았다.

이곳의 대표적인 건물로는 수봉정사와 광지당·인수문고를 들 수 있다. 수봉정사는 세거지의 입구에 있는 정자로 정원을 매우 아름답게 꾸민 곳이다. 주로 손님을 맞고 일족의 모임을 열 때 사용하던 큰 규모의 건물이다. 광지당은 문중의 자제들이 학문과 교양을 쌓던 수양장소이다. 또 인수문고는 문중의 서고로, 규장각 도서를 포함한 책 1만여 권을 소장하고 있다. 처음에는 작은 규모였으나 후에 크게 늘려지었고, 도서열람을 위한 건물도 따로 지어놓았다.

주변경관이 아름답고 도로망도 편리하게 정리되어 있는 옛 마을이다. ( 문화재청 누리집에서 )

목화밭

주차장및 입구가 잘 정비 되어 있다

수백당..정숙

모임과 공부를 하는 장소

수백당은 결백을 지키는 집’이란 의미로 수봉 문영박 선생을 추앙하기 위해 그의 아들들이

1936년에 세웠다

T

수백당 안에 있는 우물..옛 인흥사 시절부터 있었다 한다 

 

이 마을은 돌담이 특히 아름답다

전 대구시장 문희갑씨의 집

아직 여기서 살고 게신다 한다

광거당

광거당이 선 자리는 인산재 문경호가 처음 이 땅에 정착할 때 지은 용호재(龍湖齋)가 있던 자리다. 1910년 용호재를 확장 개축하여 지은 재실이 광거당으로 세거지의 상징적인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이후 광거당 안에 만권의 책을 비치한 ‘만권당(萬卷堂)’이 설치됨으로써 전국의 수많은 문인, 학자들이 학문과 예술을 토론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누마루에는 추사가 적은 ‘수석노태지관(壽石老苔池館)’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수석과 묵은 이끼와 연못으로 이루어진 집’이라는 뜻이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아시는분은 대단하신분이다

[각주:1]

(인흥사지 석탑 )

수봉정사앞의 대추밭에 유존하고 있는 인흥사지탑이다.

인흥사는 임진왜란때 전소되어 그후 복원하지 못했다. 
현재 이 절터에는 탑재들과 주춧돌, 돌유구들이 여기저기 산재하고 있는데 원래 이곳에는 3층 석탑이 2기 있었으나 1기는 경북대학교 이종항 교수에 의해 1959년 인흥사 옛터에서 경북대학교 노천박물관으로 옮겨가고 2기는 허물어진 채 문시갑 소유의 과수원 중앙에 방치되어 있다.


높이 1.5m 정도인 이 탑은 허물어져 다시 세운 것으로 땅속에 묻힌 받침대 위에 1층만 얹혀져 겨우 탑모양만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절에서 사용했던 우물과 1492년 간행된 심경부주 2매 (16.8 * 24.2cm)가 인수문고에 보관되어 있다.

몇번이고 왔어도 돌담이 참 정겨운곳이고 경치가 좋아 자주 찾아도 좋을곳이다

  1. 산에 비석을 옮기는 도구 [본문으로]
Posted by 삶.. 공수래공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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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욜로리아 2018.02.01 14: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집 잘보았습니다~나무결이 오랜 시간의 겸손함을 보여주는거 같아 편안합니다~~^^

  3. BlogIcon 새 날 2018.02.01 15: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돌담이 마을의 핵심인 것 같네요. 수목원 뒤에 이런 곳이 있었군요. 조용하니 책 읽거나 공부하기에 딱 좋은 곳 같습니다

  4. BlogIcon 로빈M 2018.02.01 16: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치가 정말 좋네요. 복잡한 도시보단 푸른 나무와 상쾌한 공기가 있는 이런 곳에서 살고 싶습니다.

  5. BlogIcon 『방쌤』 2018.02.01 17: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건물도 그렇지만 길이 참 좋네요.
    조용히 걷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은 그런 곳입니다.^^

  6. 2018.02.01 1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BlogIcon 작은흐름 2018.02.01 19: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집보다 정말 돌담길이 인상적이에요! 저 길을 걸어다니면 푸근한 마음이 될 것 같아요^^

  8. BlogIcon 드래곤포토 2018.02.01 21: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녀온 곳이라 반갑네요
    즐거운 시간보내세요

  9. BlogIcon 비키니짐(VKNY GYM) 2018.02.01 22: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한번 가보고 싶어지는 군요. 잘 보고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10. BlogIcon 둘리토비 2018.02.01 22: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고택의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힐링이 되는군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를 정독해야 할 것 같습니다~^^

  11. BlogIcon veneto 2018.02.01 22: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멋진곳에서 살고계신분이 있군요 ㅎㅎ
    한편으로는 부럽네요

  12. BlogIcon 스티마 2018.02.01 23: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업청넓은집 입니다. 궁궐 못지 않게 넓어 보입니다!

  13. BlogIcon 늙은도령 2018.02.01 23: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사진기가 다르나요?
    사진을 볼 때마다 참 깨끗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14. BlogIcon peterjun 2018.02.02 02: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돌담, 우물, 인흥사지 석탑...
    걷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풍경들인 것 같아요. ^^

  15. BlogIcon 라오니스 2018.02.02 03: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도구로 어떻게 비석을 옮겼을지 ..
    상상이 잘 안갑니다 .. 궁금합니다 ... ㅎㅎ
    마을 분위기가 참 좋습니다 ..
    포근해보입니다 ..

  16. BlogIcon 버블프라이스 2018.02.02 03: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돌담이 정말 아름답네요^^ 덕분에 멋진곳을 알고 갑니다-
    금요일 멋지게 보내시길 바래요

  17. BlogIcon 코리아배낭여행 2018.02.02 05: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담장이 넘 정겨워 보이네요.
    이런곳에 살고 싶어집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18. BlogIcon 필이. 2018.02.02 11: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이렇게 보니 반갑네요:)
    가족과 함께 방문했던 적이 있는데요.
    주변도 조용하니 산으로 둘러쌓여있고
    특히 밖에 작은 연못호수? 같은 곳에서 산책하며 앉아서
    이야기 하니 그렇게 평화롭고 좋더라고요^^
    사진 잘 보고 가요:)

  19. BlogIcon Bliss :) 2018.02.02 11: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입구의 연못도 운치있어 보이고 정말 돌담이 예쁘네요 비규칙적인 듯하면서 정갈함 느낌을 들어요 여유롭게 산책하기에 정말 좋은 곳 같네요. 따스한 하루 되시길요^^

영천댐 공사에 의해 댐안에 있는

오천정씨 문중의 문화재를 이곳

자양면 성곡리 산 78번지에

한꺼번에 옮긴 모양이

 

기존에 있던 곳은 모두 조금씩 떨어져

있었을것이나 영천댐 공사로 인해

문중의 문화재가 그대로 옮겨온것은

어찌 보면 나쁘지 않은듯도 하다

 

6개가 각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으며 100M 내로 모여 있어 한꺼번에 둘러

볼수 있어 좋았다

 

제일 처음 만나곳은 강호정이다

( 강호정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

 임진왜란 때의 의병대장 정세아가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기 위해 세운 누각이다. 선조 32년(1599)에 지은 후 여러 차례의 보수공사가 있었는데, 지금의 건물은 영천댐 건설공사로 인해 1977년에 현 위치로 옮겨 다시 지은 것이다. 

정세아는 임진왜란 당시 영천·경주지방을 되찾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전쟁이 끝난 뒤 국가에서 수여하는 모든 영예를 사양하고, 고향인 용산동에 이 정자를 지어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가르치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양쪽에는 각 2칸의 방이 있고, 가운데 1칸이 마루로 꾸며져 있으며 화려한 난간을 설치하였다. 뒤에는 2채의 작은 부속건물이 있는데, 그 마당을 통해 정자로 오르게 되어있다.

                                                              ( 문화재청 누리집에서 )

 

강호정을 보고 우측으로 가니 하천재가 있다

하천재는 한창 공사중이었다

( 하천재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73

 오천 정씨 집안의 묘와 강의공 정세아의 무덤가에 세운 비를 보호하기 위하여 지은 집과 비각이다. 

조선 인조 15년(1637)에 진주목사 정호인이 처음 지었다고 한다. 지금의 건물은 후에 다시 지은 것으로 보이며, 영천댐 건설로 인하여 1976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어졌다.

강의공 정세아는 임진왜란(1592) 때 의병대장에 추천되어 많은 공을 세웠다. 그러나 그 공으로서 상을 바라지 않고 관직을 떠나 시골에서 제자를 기르며 학문을 닦은 덕망이 높은 선비였다. 

경내에는 하천재, 신도비각 등이 있는데 모두 단순하고 소박하게 지은 건물이다.

( 오회공종택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2호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하여 영천·경주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정수번의 셋째아들인 호신이 결혼하여 살던 집이다. 

조선 광해군 12년(1620)경에 지었으며, 효종 6년(1655)에는 사당을 세웠다. 1977년 영천댐 건설공사로 인해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앞면 5칸·옆면 1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이며,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 오회당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6호
오회당 정석현을 추모하기 위하여 조선 영조 3년(1727)에 관찰사 권대규가 지었다. 1977년 영천댐 건설로 인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소박하게 지어진 건물로, 앞면 4칸·옆면 1칸 규모이다.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단순한 맞배지붕인데, 양쪽 옆면에 눈썹지붕을 이어 달아서 마치 팔작지붕처럼 보이게 하였다. 이런 예는 영천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것이다. 한쪽에 마루 2칸, 다른 한쪽에는 방 2칸을 나란히 들였다.

요렇게 잠겨 있어 열고 들어갈수 있었다

( 사의당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4호

 사의당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강학당으로, 조선 영조 8년(1732)에 정중호의 형제인 중기·중범·중락 등이 우의를 더욱 돈독히 하고 학문연구와 제자교육을 위해 지은 것이다. 원래는 자양면 용산동에 지은 것을 영천댐 건설로 인하여 1977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앞면 5칸·옆면 1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 건물이다. 왼쪽 2칸은 마루이고 오른쪽 3칸은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루에는 둥근 기둥, 방에는 네모 기둥을 사용하였다. 사의당 이외에 앞면 6칸·옆면 1칸의 규모로 행랑채인 수의당이 있다.

( 삼휴정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5호
삼휴 정호신(1605∼1649)이 자연을 벗삼아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지은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인조 13년(1635)에 지었다고 전하며, 지금은 영천댐 건설로 인하여 옛 자리를 굽어보는 산비탈에 옮겨지었다. 

할아버지인 의병장 정세아가 살았던 곳에 지었는데, 그 풍경을 바라보면서 ‘삼휴’란 시를 지어 삼휴당이라는 정자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

앞면 4칸·옆면 1칸 반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가운데 2칸은 대청마루이고 양쪽에는 각 1칸짜리 방을 들였다.

하절

하절은 묘터로서는 영천에서 가장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다

정효자가 얻은 명당자리라 알려진 하절은 울창한 노송들이 둘레 2Km에 걸쳐 늘어서 있고

99기의 큰 무덤과 비석들이 있다

이곳의 기운이 정말 명당의 효험이 있는듯 하다

그래서 충신들이 많이 났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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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스티마 2018.01.07 11: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게 의미있는 건축물들이 한국사람 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와서 봐야 하는 곳을 만들려면 무언가 스토리가 필요할 것 같아요. 추리소설의 배경이 된다거나 한류드라마의 배경이 된다거나 말이죠.
    이렇게 보고 있으면, 점점 관심이 멀어지게 되는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3. BlogIcon 핑구야 날자 2018.01.07 1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늦었지만 한해를 시작하는 장소로 추천할 만한 겠는데요 구경 잘 하고 갑니다

  4. BlogIcon SoulSky 2018.01.07 13: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옴길수 있는거 자체가 신기합니다. 그 만큼 기술이 많이 발전했나보네요

  5. BlogIcon 애리놀다~♡ 2018.01.07 14: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게 멋진 고택들이 영천댐에 수몰되지 않고 또 이렇게 잘 이전해 보전되게 해서 넘 좋아요.
    고택들이 하나같이 다 멋있어요. 조선시대 미는 궁궐에서도 볼 수 있지만 저는 고택의 저 색감이 더 좋아요.
    고택 자체가 꼭 서책을 읽고 있는 학자나 선비의 흰색에 진한 색이 있는 의복을 보는 그런 모습이거든요.
    명당이라서 묘도 많이 있네요. 그래서 충신도 많이 나오고.
    자리가 진짜 좋은가 봐요. 대나무숲도 달라 보여요. ^^*

  6. BlogIcon 팍이 2018.01.07 15: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좋네요 ㅎㅎ 잘 구경하고갑니다 ㅎㅎ

  7. BlogIcon 은이c 2018.01.07 16: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77년 영천댐 건설로 문화재를 많이 옮겼네요
    다른곳보단 문화재가 깨끗하게 잘 보존이 되어있어서 좋네요.
    한옥에서 살고싶단 생각이 드네요 ~~ ^^

  8. BlogIcon 새 날 2018.01.07 19: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댐으로 인해 수몰된 지역에 있던 문화재들을 통째로 옮겨온 사례가 꽤 있더군요. 어쩔 수 없는 측면이니 이렇게라도 문화재를 보존하는 일이 중요하겠지요. 그나저나 정말 명당이란 곳이 있긴 한가 봐요 ㅎ

  9. BlogIcon 개발자와코더사이 2018.01.07 20: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꼭 이번 여름에는 가봐야 겠었요 ㅎㅎ
    좋은 곳을 소개 시켜주셔 감사합니다.
    즐거운 한주 시작하세요^^

  10. BlogIcon 보약남 2018.01.07 21: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곳은 어찌 알고 다녀오신건지 ^^
    차분한 느낌이 너무 좋네요 ~ 문고리에 나뭇가지는 잠금기능인거 맞죠?? ^^;;
    편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11. BlogIcon 시니냥 2018.01.07 21: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대로 옮길 서 있는 기술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네요.
    날씨가 풀리면 가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12. BlogIcon 둘리토비 2018.01.07 21: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천은 아무래도 임진왜란때 왜군이 북쪽으로 진격하기 위한 통로였을 것입니다
    그만큼 치열했겠고 역사와 문화재에 대한 아픔과 각각의 스토리들이 다양하겠죠.

    수몰로 문화재를 옮겨야 했다는 것이 대단했네요.
    지금은 잘 보존되고 있는 것이죠?
    하나하나 잘 보존이 되어서 늘 빛났으면 좋겠습니다~

  13. BlogIcon 시골청년v 2018.01.07 22: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존되어 있는 우리문화재를 보니 기분이 좋습니다. ㅎ

  14. BlogIcon veneto 2018.01.07 23: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존되어있네요
    이런멋있는곳을 잘 찾아서 보시다니 부럽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