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채널 추가 버튼
공공(空空)의 시선
728x90

인상 깊은곳/고택,고건축물 55

달성 하빈 육신사. 사육신 기념관

난 3번이나 찾은 곳이지만 아내는 처음이라 성주에서 달성 하빈으로 육신사를 보기 위해 이동을 했다 육신사에 가기 전 "묘운"카페에 들렀는데 빈자리가 없어 가면서 들르기로 하고 지금껏 문이 닫겨 있어 보지 못했던 사육신 기념관을 찾았다 ㅁ 사육신 기념관 사육신 기념관은 132㎡규모의 한옥 형태의 건축물로 사육신 박팽년 선생의 표준 영정을 봉안하고 사육신과 육신사에 대한 전시 및 영상 자료 등으로 꾸며져 있다. 2010년 개관하였다 ㈔육신사보존회가 국비와 지방비 등 사업비 약 12억 원을 들여 건립하였다 박팽년 선생의 표준 영정 그리고 육신사를 보러 가는 도중 예전에 보지 못했던 곳 삼성 이병철 회장의 부인 박두을 여사의 생가터도 돌아 보았다 생가터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육신사는 다음의 포스팅에 자세한 내용..

의성 산운마을

의성 산운마을은 빙계 계곡을 가기 전 들러 볼 곳을 찾다가 찾은 곳이다 오래된 전통 가옥이 많은 동네지만 대부분 후손들이 거주하고 계셔서 관광으로 찾아 오시는 분들은 거의 없다 오전인데도 햇살이 뜨거워 다른 일행들은 복숭아 밭에서 낙과를 사서 드시고 나와 친지 형님은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산운마을은 80 가구 170여 명 주민이 있지만, 실제로 마을에서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은 70~80명 정도라고 한다 ▶ 산운 마을 산운마을은 의성에서 대감마을로 불리는 전통반촌으로, 자연경관이 수려한 영천이씨(永川李氏) 집성촌이다. 마을은 수많은 전설을 간직한 금성산(金城山)을 뒤에, 비봉산(飛鳳山)을 옆에 두고 나지막한 구릉과 평지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을이름은 신라시대 불교가 융성할 적에 수정계곡(水淨溪谷) 아..

안동 의성 김씨 학봉종택,학봉기념관

경북 안동만큼 종택,종가가 많은 곳은 없을 것이다 안동 지역을 다니다 보면 심심찮게 -종택, -종가 이정표를 많이 만나게 된다 퇴계종택을 비롯 조선 시대 유명 인사의 종택이 많이 있다 그래서 안동을 예로부터 양반의 고장이라 불러 왔다 봉정사를 보고 돌아 오는 길에 조선 중기의 문신 김성일 선생의 "학봉종택"을 잠시 둘러 보고 왔다 의성김씨 학봉 종택은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 되어 있다 ▶경상북도 기념물 의성김씨학봉종택 (義城金氏鶴峰宗宅) 조선 중기 문신 학봉 김성일(1538∼1593) 선생의 종가이다. 김성일은 선조 1년(1568) 과거에 급제하여 정언과 수찬 나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경상도 초유사로 관군과 의병을 화합시켜 의병의 전투력 향상에 큰 공을 세웠다. 퇴계의 제자로 뛰어난 성리..

(제주 여행) 대정읍 추사 김정희 유배지

첫날 예정했던 올레길을 다 걷지 않으니 여유 시간이 생겼다 생각 끝에 다음날 가려고 했던 대정의 '추사 김정희 유배지"와 기념관을 찾기로 했다 송악산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도 해서이다 ▶ 사적 서귀포 김정희 유배지 (西歸浦 金正喜 流配址) 서귀포시 대정읍성 동문자리 안쪽에 자리 잡은 추사유배지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화가였던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유배생활을 하던 곳이다. 김정희는 영조의 사위였던 김한신(金漢藎)의 증손으로, 조선 순조 19년(1819) 문과에 급제하여 균관 대사성·이조참판 등의 벼슬을 지냈다. 그러다 조선 헌종 6년(1840) 55세 되던 해에 동지부사로 임명되어 중국행을 앞두고 안동김 씨 세력과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나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유배 초기에 포도청의 부장인 ..

달성 하목정-배롱나무

달성의 하목정은 3차례 이상 방문한 것 같은데 정작 포스팅은 한 번 밖에 하지 않은 것 같다 그것도 삼가헌,낙빈서원과 같이 했으니 ☞ https://xuronghao.tistory.com/556 ( 대구 가볼만한곳) 삼가헌.낙빈서원,하목정 육신사에서 낙빈 서원을 가려고 문화해설 관광의 집에 계시는분에게 길을 물었더니 친절히 가르쳐 주신다 뒷 산을 넘어 가면 금방인데 차로 가면 돌아 가서 5분은 걸릴것이란다 시간적인 여유 xuronghao.tistory.com 그만큼 포스팅할 거리가 안 되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배롱나무가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성주 다녀 오는 길에 달성의 하목정을 찾았다 ☞ 보물 달성 하목정 (達城 霞鶩亭) 2019년 12월 보물로 지정되었다 달성 하목정」은 낙포 이종문(156..

문희갑 전 대구시장-인흥마을 (남평문씨 세거지)

대구 수목원 둘레길을 걷다 무슨 이야기에서인지 대구 시장 이야기가 나왔다 역임했던 대구 시장들 중에서 그래도 시민들에게 기억에 많이 남아 있는 사람은 7년간 재임을 했었던 문희갑 전 시장이다 그 문희갑 시장이 사는 곳이 수목원 인근 '남평 문씨 세거지-인흥마을'이라고 이야기를 하니 아내와 친지가 한 번 가 보자고 하신다 난 몇 번 다녀온 곳이어 아내나 친지는 당연히 같이 갔다 온 곳인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나 혼자 다녀 온 것이다 인흥 마을은 여러번 소개를 했었고 다른 블로그 글에서도 많이 소개된 곳이다 https://xuronghao.tistory.com/1028 ( 대구 달성 ) 남평문씨본리세거지 ( 인흥마을 )-인흥사지,석탑 대구수목원 바로 뒤,인흥마을이라 불리우는 남평문씨본리세거지 수목원 ..

(거제 여행 )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

이수도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전 잠깐의 시간이 있어 가까운 관광지나 유적지를 보고 가기로 했다 지도를 보니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와 기념관이 매미성과 가까운 곳에 있어 들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금으로 말하면 금수저 집안 출신이다 배를 10여척이나 보유한 선주이며 멸치 어장을 보유한 집안의 장남이다 어머니는 1960년 무장공비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 김영삼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진 분 그러나 대통령이 되기 위한 3당 합당과 재임 시 IMF 사태에 대한 미흡한 대처는 과로 남아 있다 그가 남긴 신념과 아래의 말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 대도무문(大道無門) ☞ 닭의 목을 비틀지라도 새벽이 온다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 생가 1893년 목조기와 건물 5동으로 세워진 생가는 10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

(경북 칠곡) 동산재

왜관 철교를 본 다음 시간 여유가 좀 남아 동산재를 마지막으로 보고 가기로 했다 내비게이션에 안 나와 폰으로 검색 주소를 입력하고 찾아갔다 문은 잠겨 있는 듯 했으나 시건은 안 되어 있어 밀고 들어갔다 ☞ 동산재 동산재는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에 있는 6동의 목조 기와 건물이다. 2006년 2월 16일 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 제503호로 지정되었다 동산재는 광주이씨 석전문중의 대표적인 건물로서 낙촌 이도장(各村 李道長)의 덕행을 기리기 위해 1913년에 세운 정면 4칸 측면 2칸 홑처마 팔작지붕 목조 와가의 낙촌정, 장자 귀암 이원정(歸巖 李元禎)의 유덕과 공적을 알리기 위해 1903년에 세운 정면 4칸 측면2칸 홑처마 팔작지붕의 목조 와가 경암재, 장손 정제 이담명(靜齋 李聃命)의 별사봉향을 위해..

( 경북 칠곡) 묵헌 종택

칠곡 왜관 답사는 이번이 2번째다 예전 왜관서 몇 달 산 적도 있어 비교적 친근한 동네이기도 하다 그때는 출퇴근하기에 바빠 주위에 어떤 곳이 있는지 신경을 쓸 겨를이 전혀 없었다 이번에 1차 답사 시 못 가 본 곳을 가 보기로 한다 왜관 읍내에 있는 묵헌 종택을 찾았다 ☞ 묵헌 종택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묵헌 이만운이 죽은 뒤 유림의 뜻에 따라 조선 순조 20년(1820)에 세운 건물이다. 묵헌 이만운(1736∼1820)은 퇴계, 한강, 문익공을 잇는 정통 성리학자로 우리 국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증보동국문헌비고』를 편찬하였다. 원래 이 집은 대문채와 방앗간 채도 있었으나 지금은 사랑채와 정침, 사당이 남아 있다. 정침과 사랑채는 문익공 이원정의 아들인 이한명(1651∼1681)이 조선 현종1..

( 구미 문화재 ) 의구총 (義拘塚), 낙산리 삼층석탑

돌아갈 시간이 다 되어 가면서 1~2곳만 더 보고 가기로 했다 지도를 보니 보물 낙산리 3층 석탑을 보고 가면 될 것 같았다 의구총은 가는 도중에 안내 표지판을 보고 본 곳이다 ☞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의구총 (義拘塚) 지정(등록)일 1994.09.29 소 재 지 경북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 산 148번지 일선리 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개의 무덤이다. 주인을 구하려 목숨을 바친 개의 충직함을 기리고 있는데, 충성스러운 개의 행적을 그린 의구도(義狗圖) 4폭이 함께 보존되어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해평면 산양리에 사는 김성발이라는 사람이 기르는 개가 있었는데, 매우 영리하여 늘 주인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하루는 주인이 이웃마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술에 취해 그만 길가에서 잠이 들었다. 마침 들에 불..

구미 일선리 문화재 마을

구미보 가기 전 일선교를 지나 낙동강과 낙동대로를 보고 가다 보면 도로가에 고택들이 있는 마을이 있다 예전부터 궁금하던 곳을 이번 기회에 찾아보았다 이곳은 안동 지역 임하댐 건설(1987년)로 안동시 임동면 수곡(水谷·무실)·박곡·한들·용계마을에 흩어져 살던 전주 류 씨 일가들이 구미시 해평면 일선 마을로 이주해 생긴 마을이다 마을 뒤편으로 이주민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정착한 류해종 선생이 지키고 있는 수남 위 종택(경북도 문화재자료 제51호)과 용와 종택, 침간정(경북도 민속자료 제18호), 호고와 종택(경북도 문화재자료 제57호), 무실 마을의 ‘작은집’인 근암 고택(경북도 문화재자료 제55호)과 임하댁(경북도 문화재자료 제58호)이 자리 잡고 있다. 또 안동 양반들이 자제나 인재를 학문과 예를 가르친..

군위 한밤마을 문화재-석조여래 입상,대청

군위 한밤마을에는 다수의 문화재가 있다 그 문화재들을 모아 올려 본다 https://xuronghao.tistory.com/2468 ① 대율리 석조여래 입상 ( 보물 제988호 ) 지정(등록) 일 1989.04.10 소 재 지 경북 군위군 부계면 한밤 8길 21-1, 대율사 (대율리) 대율사 용화전 안에 모셔진 불상으로 둥근 대좌(臺座)위에 올라서 있으며 높이가 2.65m이다. 민머리 위에 있는 낮고 넓은 머리(육계), 둥근 얼굴, 아담한 눈과 입, 어깨까지 내려진 긴 귀 등에서 세련된 모습을 보여준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손끝이 위로 향하도록 펴고 있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몸 쪽으로 하여 가슴에 대고 있는 독특한 모양이다. 양 어깨에 걸쳐진 옷은 가슴과 배를 지나 무릎까지 얕은 U자형 주름을..

(군위여행) 한밤마을 돌담길

내륙 깊숙한 곳에 제주의 돌담 같은 담장이 있는 마을이 있다 경북 군위의 "한밤마을" 군위의 한밤 마을은 몇 번인가 가려했다가 그때마다 이런저런 사정이 생겨 못 갔던 곳이다 군위 삼존불을 보고도 혼례 시간이 남아 한밤 마을을 보려고 동네 주민에게 물었더니 걸어가도 된다 하여 걸어 가다 너무 멀다는 생각과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혼례가 끝나고 친구들과 헤어잔후 혼자 찾았다 군위 한밤마을은 대율 1, 2리와 남산 1, 2리, 동산 1, 2리 등 6개 리로 이루어진 큰 마을이다 고려 전기 이래, 1천여 년을 이어온 부림 홍씨 동성 반촌 관향이기도 하다 1991년 한티재가 지금처럼 확·포장되어 대구와 1일 생활권이 되기 이전에는 폐쇄성이 강한 경북의 오지 중의 하나였다. ▶ ‘한밤마을’이라 불리는 이유는 ‘일’이..

금호강의 누정-압로정 ( 狎鷺亭 )

작년 10월과 11월 구수산도서관의 "길위의 인문학"강연에서 "금호강의 누정"에대해 경북대 특별연구위원이신구본욱 선생의 강연을 들은적 있었다.그때 "압로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었고 아직도 금호강변에 "압로정"이 있다 하길래 언제 시간나면 한번찾아 볼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지난번 금호강을 걸을때 한번 찾아 보았다 예전에도 금호강변을 걸으며 본것 같았는데 그때는 그냥 지나쳤었다확실히 관심을 가져야만 보이는 모양이다이제 알고 나니 그냥 지나 치지는 못할것 같다 지금도 금호강 주변에는 옛 선비들의 많은 정자가 남아 있다 ,요즘으로 치면 권세 있는 집안의 별장 같은 것일수도 있겠다그중에서도 대구 제1의 정자로 평가되는곳이 "압로정"이다 압로정이 있는 검단동(檢丹洞)은 조선중기에 순흥안씨(順興安氏)와 우계이씨(羽溪..

( 창녕 여행 ) 술정리 진양하씨 고택 ,창녕 석빙고

술정리 3층석탑 옆에 초가로 된 고택이 있어 잠시 살펴 보았다 후손이 사시고 있는듯 해서 조심스럽게 들어가 보았다 ▶ 창녕 진양하씨 고택 (昌寧 晉陽河氏 古宅)-국가민속문화재 제10호지정(등록)일1968.11.25소 재 지경남 창녕군 창녕읍 시장1길 63 (술정리)시 대 조선시대창녕 지방에 있는 옛집으로 안채·사랑채·대문간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중 안채만 지정되어 있다. 안채는 현소유자 하경목 씨의 18대 조상이 이 마을에 들어와 세종 7년(1425)에 지은 건물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수리과정 중에 ‘건륭 25년’이라는 기록이 발견되어 이 때에 다시 지었거나 수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안채는 중부 이남지방에서 일반적인 앞면 4칸·옆면 1칸의 '一'자형 홑집으로, 왼쪽부터 작은방·대청·큰방·부엌의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