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1박 2일 여행의 주목적은 "화성 둘레 한 바퀴 걷는 것"과
화성 행궁의 주, 야간 관람이다
첫 날 장안문에서 팔달문까지 걷고 저녁을 먹은 다음 야간 개장하고 있는
화성 행궁을 관람하였다
( 그 다음날 낮에 한 번 더 관람하고자 하였으나 시간이 안 되었다 )
행궁의 야간 개장은 10월 27일까지이다
▶ 화성 행궁
1796년 정조가 지었으며 2002년 복원되었다 사적 ( 제478호 )으로 지정되어 있다
행궁은 왕이 지방에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물거나 지방에 별도의 궁궐을 마련하여
임시 거처하는 곳을 말하는데 목적에 따라 ( 전쟁시 행궁-강화, 의주, 남한산성,
( 휴양-온양, 능원 참배-화성) 세 가지로 구분한다
화성 행궁은 정조 13년(1789)에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부 읍치 자리로 옮기고,
원래 수원부 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겨 오면서 관청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왕이 수원에 내려오면 머무는 행궁으로도 사용했다.
정조는 수원도호부를 화성유수부로 승격시켜 위상을 높인 한편, 1795년 화성행궁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 씨의 회갑연을 치르기 위하여 건물의 이름을 바꾸거나 새로 지었다.
1796년에 전체 600여 칸 규모로 완공되었다.
건립 당시의 모습이 『화성성역의궤』와 『정리의궤』에 그림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화성행궁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부터 병원과 경찰서로 쓰이기 시작했고,
1920년대 병원 건물이 신축되며 대부분 파괴되었다.
현재는 낙남헌과 노래당만 본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1996년 복원공사가 시작되고, 2002년에 중심권역의 복원공사를 마쳤다
▶ 신풍루(新豊樓)
1790년(정조 14) 창건 2002년 복원 신풍루는 화성행궁의 정문이다.
조선 정조 13년(1789)에 수원읍의 관청 건물을 세우면서 그 정문으로 지었다.
처음에는 진남루鎭南樓라 부르다가 1795년에 혜경궁 홍 씨의 회갑연을 열면서
이름을 신풍루로 바꿨다.
건물은 2층의 누각 구조로 아래층은 출입문으로 쓰고, 위층에는 큰 북을 두어 군사들이
주변을 감시하고 신호를 보내는 용도로 사용했다.
▶ 봉수당(奉壽堂)
1789년(정조 13) 창건 1997년 복원 봉수당은 화성행궁에서 가장 위상이 높은 건물이다.
건물은 정면 7칸으로 일반 동헌과 마찬가지로 대청과 방을 둔 구조이나,
마당 한가운데에는 왕이 지나는 길인 어로를 두었고 건물 앞에는 넓은 기단인 월대를 갖추었다.
▶ 경룡관(景龍館)
1794년(정조 18) 창건 1997년 복원 경룡관은 장락당으로 들어가는 대문 상부에 지은 다락집이다.
▶ 장락당(長樂堂)
1794년(정조 18) 창건 1997년 복원 장락당은 조선 정조 19년(1795) 혜경궁 홍 씨의
회갑연을 화성행궁에서 열면서 혜경궁 홍 씨가 머물 처소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낙남헌(洛南轩)
1794년(정조 18) 창건 낙남헌은 화성행궁에서 공식 행사나 연회를 열 때 사용하는 건물이다..
정조는 1795년 을묘원행 당시 낙남헌에서 수원의 백성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무과 시험을 치르고 상을 내리는 등 다양한 행사를 열었다.
낙남헌 건물은 벽이 없는 개방된 구조로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다.
▶우화관(于華觀)
1789년(정조 13) 창건 2023년 복원 우화관은 화성유수부의 객사다.
▶ 집사청(執事廳)
1790년(정조 14) 창건 2002년 복원 집사청은 관청에서 치르는 제사나
행사를 준비하는 집사들이 근무하는 건물
상당히 넓은 곳이고 야간이라 샅샅이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정조의 효심이 가득 담겨 있는 곳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10월 19일 아내, 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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