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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은곳/서원_향교 41

( 대구 달성 ) 귀화 장수 김충선 (사야가)의 달성한일우호관,녹동서원

아트 도서관에 들렀다가 바로 근처 녹동서원이 있는 게 생각이 나 잠시 들렀다 달성한일우호관과 녹동서원은 2015년 들렀으니 근 6년 만에 다시 찾은 거다 https://xuronghao.tistory.com/338 ( 대구 달성) 녹동서원 그리고 달성한일우호관 대구 근교 청도 방향으로 달성 가창면 우록리에는 "징비록" 드라마로 재조명된 임진왜란 당시 3천명의 병력을 이끌고 투항,조선으로 귀화한 일본인 장수 사야가 ( 한국명: 김충선) 를 모신 서원 xuronghao.tistory.com 이곳은 그간 많은 드라마에 조금씩 언급되었던 일본의 귀화 장수 김 충선 ( 일본 명 사야가 )을 모신 서원이고 기념관이다 김충선은 임진, 병자 전쟁과 이 괄의 난에 큰 공을 세우고 이곳 달성 가창 우록리에 세거지를 정해 ..

대구의 서원-구암 서원

구암 서원은 도심 속에 있는 몇 안 되는 서원이다 주거지와 가까이 있는 서원 이어 가끔 찾는다 생각을 하는데도 그 가끔이 몇 년에 한 번이다 블로그에도 올린지 한참 되었다 ☞ https://xuronghao.tistory.com/618 ( 대구 ) 도심속의 서원-구암서원, 숭현사 대구 도심에 있는 서원 구암서원 이곳을 몇번이나 방문하였는데 매번 문이 잠겨 있어 돌아섰었다 문중에 전화를 해 볼까도 생각했었지만 귀찮은 일이 생길까봐 늘 발길을 돌렸었다 오늘도 문이 xuronghao.tistory.com 연암공원, 연암산을 찾은 김에 잠시 들러 보았다 ☞ 구암서원 연혁 구암서원은 1665(顯宗6)년 連龜山(연구산) 서남쪽(현 대구 초교 서남쪽 언덕)에 崇賢祠(숭현사)를 건립하고 대구부민이 龜溪(諱沉)선생을 祭..

( 옥천 여행 ) 옥천 향교,옥주 사마소

옥천 구읍은 볼 만한 곳들이 모여 있어 충분히 걸으면서 볼 수가 있다 옥천 향교는 지나치기가 쉬운데 여느 향교와 다른 점이 있어 보고 가면 좋다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옥천향교 (沃川鄕校) 조선 태조 7년(1398)에 처음 지은 후 임진왜란(1592)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다시 지었으며, 1961년에 황폐한 향교를 복원하였다. 1966년과 1974년에 보수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충청북도문화재자료 제214호)과 명륜당·동재·서재·내삼문·외삼문·고직사 등이다. 건축형태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이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이다. 옥천 향교는 입구가 명륜당이어 특이하다 입구가 명륜당인 향교는 처음 본다 내삼문도 독특한 모습이다 서재, 동재는 공사중이었다..

( 구미 문화재 답사 여행 ) 금오서원

금오 서원은 감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근처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1600년대에 지어 진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새 건물 같았다 이렇게 잘 보존 되어 있는 서당은 처음이다 다시 지은 것인지 확인을 해 봐야 할 정도다 ☞ 경상북도 기념물 금오서원 (金烏書院) 지정(등록)일 1985.10.15 소 재 지 경북 구미시 선산읍 원리 276번지 야은 길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길재(1353∼1419)는 정몽주·이색과 함께 고려 후기에 절의를 지킨 ‘고려삼은(三隱)’으로 불리는 학자이다. 그는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고려가 망하는 것을 알고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 하여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은거하였다. 조선이 건국되고 세자 이방원(태종)이 관직에 임명하였으나 거절하고 학문과 후학양..

( 경북 구미 선산 문화재 답사 ) 선산읍성-선산 향교-선산 객사

국보 죽장리 5층 석탑을 보고 근처의 문화재를 조금 더 답사하기로 했다 이런 경우 종이 지도를 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종이 지도가 없을 때는 차량 내비게이션의 주변 탐색--> 명승고적 기능을 이용하면 좋다 오늘은 돌아 가는 시간을 감안 해 돌아가는 길을 기준으로 선산, 해평 지역의 문화재를 보고 가기로 한다 선산읍은 예전에는 구미를 하부 행정 조직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 반대가 된 곳이다 처음 답사지는 선산읍의 관문 선산 읍성의 남문이다 ☞ 선산읍성-남문-낙남루 善山邑城-南門-落南樓 조선조 500년 동안 선산 도호부와 선산군의 관문이었던 선산 읍성은 고려말에 토성으로 축조 되었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석성으로 고쳐 축조하였다는 기록에 의하면 둘레가 1448척. 높이가 9척으로 동서남북 4문이 있..

( 함양 여행 ) 황암사, 청계 서원

마지막 정자인 농월정까지 가야 선비문화 탐방로가 마무리되는데 날씨가 더워 힘드신지 그만 걷자 하신다 황암사 앞에서 버스를 타고 거연정으로 돌아 가기로 했다 버스 타는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황암사를 돌아본다 황암사는 절이 아니고 호국 선열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 황암사 조선(朝鮮) 선조(宣祖) 30년(1597) 정유재란 때 황석산성을 지키기 위하여 왜적과 싸우다 순국한 호국선열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황석산성 전투는 정유년(1597)에 조선을 다시 침략한 왜군 14만 명 중 우군 2만 7천 명이 8월 16일(음력)에 가또(加藤淸正), 구로다(黑田長政) 등의 지휘로 황석산성을 공격하면서 일어난 3일간(8월 16일∼8월 18일)의 처절한 공방전이었다. 이때 안의현감 곽준(郭埈)과 전 함양군수 조종도(趙宗道)..

함양 남계서원-유네스코 등재 서원

선비 문화 탐방로 트레킹을 마치고 볕이 뜨거워 더 걷지는 못하고 돌아가는 길에 남계 서원만 보고 가기로 했다 함양까지 왔는데 남계 서원은 안 보고 가면 섭섭하다 ☞ 남계 서원 ( 사적 제 499호 )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된 9개 서원중의 한 곳이다 함양 수동면 원평리 소재로 조선 명종 7년(1552)년에 개암 강익(姜翼)이 문헌공 정여창(鄭汝昌)을 기리기 위하여 창건하고 남계서원이라 칭하였다 명종 21년(1566)에 나라에서 ‘남계’라는 사액을 내려 공인과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되었다. 정유재란(1597)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선조 36년(1603)에 나촌으로 옮겨지었다가, 광해군 4년(1612) 옛 터인 지금의 위치에 다시 지었다. 숙종 때 강익과 정온을 더하여 모셨다. 따로 사당을 짓고 유호인과..

군위 양산 서원 그리고 전통 혼례

친구 자녀 결혼식이 서원에서 전통 혼례로 있다 해서 참석하게 되었다 축의만 전할 수도 있지만 야외에서 하는 전통 혼례이기도 하고 근처의 국보도 볼 겸 해서 다녀왔다 전통 혼례의 장소는 군위의 양산 서원 양산 서원은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빈터만 남아 전해오던 곳을 2014년에 146년만에 복원했다고 한다 정조 10년인 1786년 군위군 부계면에 설립된 사립교육기관으로 고려 말 문신 홍노(洪魯)와 조선 전기 문신 홍귀달(洪貴達), 홍언충(洪彦忠)을 배향하다가 고종 5년인 1868년에 훼철됐다. 2008년부터 14억여원의 예산을 투입해 내삼문, 입나재, 구인재, 읍청루 등으로 구성되는 서원을 모두 복원했다고 한다 ( 2014.4.29 연합뉴스 인용 ) 양산이란 이름은 배향된 정조시대의 선비 홍로가 수양산(..

도심 속 향교-대구향교

대구 향교를 근 5년 반 만에 다시 찾았다 2015년 찾을때만 해도 생각은 자주 오게 될 것 같았는데 그러질 못했다 xuronghao.tistory.com/270 ( 대구 가볼만한곳 ) 대구 향교 그리고 칠곡 향교 예전에는 관심도 없었고 거들떠 보지도 않았었는데 요즘 들어 관광,유적지를 가끔 찾다 보니 향교나 서원에 대해 조금씩 관심이 간다 향교는 쉽게 이야기해서 고려시대부터 있어 온 국립 지방 xuronghao.tistory.com 이번에 어릴때 추억이 있던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면서 처음 시작을 이곳 대구 향교서 시작했다 어릴 때도 향교 안은 잘 들어가지 않았었고 향교 앞을 지나치기만 했었다 대구향교는 여타 다른 향교보다 비교적 넓은 면적이고 시내 중심지에 있어 접근성은 아주 좋은 편이다 ▶ 대구 향..

대구 신서혁신도시 선사유적공원 ( 동호유적공원),동호 서당

반야월 연근 단지를 갔다가 집으로 가는 길에 혁신 도시를 잠깐 들렀다. 아내는 모자라는 달리기 운동을 좀 더 하고 난 주변 볼만한것들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 찾은곳이 동호 유적공원이다. ▶ 동호 유적 공원 대구 신서혁신도시 택지 개발지구내에서 발굴, 조사된 문화유적중 대표적인 청동기시대 지석묘(고인돌)와 석관묘를 원형 그대로 이전. 전시형으로 이를 영구히 보존할 수 있도록 조성한 곳이다. 이곳 대구 신서혁신도시 지구는 팔공산괴에서 남쪽(금호강)으로 뻗어 내리는 많은 구릉들의 끝단이자 곡부에 의해 형성된 선상지역 중적 평야지대에 자리를 잡아 입지적 환경이 매우 좋은 곳으로 청동기 시대 이래로 조선시대와 근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삶의 흔적들이 남아서 조사 되었다.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와 분묘, 원삼국..

( 창녕 여행 ) 창녕 향교

창녕여행의 마지막은 향교를 보고 가기로 한다시간이 더 있었다면 근처의 문화공원과 사직단,고분군을 보고 갈건데 오늘 많이 걷기도 해서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 창녕 향교 (昌寧 鄕校)-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12호 창녕향교를 언제 세웠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 효종(재위 1649∼1659) 때 다시 세웠다고 전한다. 1904년에 보수하고 1987년에 동재, 서재를 복원하였다. 건물은 출입문인 외삼문,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과 동·서재, 사당인 대성전과 동·서무 등의 건물이 있으며, 앞에 명륜당이 있고 뒤에 대성전이 있는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받아..

( 경주 여행 ) 서악서원,도봉서당

여행지를 가면 근처의 서원은 웬만하면 찾아 본다경주 지역에도 꽤 많은 서원이 있다. 작년 1월 옥산 서원을 찾은 이래 2번째 경주 지역 서원 방문이다☞ 2019/01/10 - [인상 깊은곳/서원_향교] - ( 경주 여행 ) 경주 옥산서원-퇴계 이황선생 스승 회재 이언적을 기린곳 ▶ 서악서원 (西岳書院) 경상북도 기념물 제19호신라 삼국통일의 중심인물인 김유신 장군과 신라 학자인 최치원, 설총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조선 명종 때 문신인 이정(1512∼1571)이 경주부윤이라는 벼슬을 지낼 때 지방 유림과 뜻을 같이하여 명종 18년(1563)에 세운 것이다. 선도산 아래에 ‘서악정사’로 세운 것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고 1602년 묘우, 1610년 강당과 동·서재를 새로 지었다. 인조 원년(162..

(대구 북구 ) 칠곡향교,구천서당,매양서원

지난 10월,11월 구수산 도서관 길위의 인문학 강의를 들으면서 시간나는대로 못 가본 향교,서원 정자를시간나는대로 둘러 보기로 했다. 10월 27일 오후 구암동 고분을 둘러 보기전 오전 시간에 우선 가까운 몇군데를 찾아 보았다 ▶ 칠곡 향교 칠곡향교는 지난 2015년 한번 찾았다가 문이 잠겨 있어 못 들어 갔는데 이번엗 문이 잠겨 있다향교 사무실에 한분이 나와 계셔 물어 봤다니 일요일은 개문을 않는다고.관리하는분이 안 나온신단다.물론 돈이 들어가는 일이지만 일요일날 지역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면 좋을텐데 하는생각이 들기는 했다.2015/07/03 - [인상 깊은곳] - ( 대구 가볼만한곳 ) 대구 향교 그리고 칠곡 향교칠곡 향교는 나와는 인연이 없는갑다 칠곡향교 대성전 ( 대구광역시 문화재 ..

( 통영 여행 ) 통영 향교-제일 먼저 찾은곳

여름 통영 여행을 하면서 가장 먼저 찾은곳은 통영 향교다통영향교를 먼저 찾은 아유는 그 지역의 향교를 보는 나의 여행 스타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번 여행은 차를가지고 갔기 때문에 북통영 IC에서 가장 가까운곳이었기 때문이다.오전 9시가 안 되어 대구를 출발했는데 통영 향교에 도착한 시간이 12시를 조금 지났으니 통영으로 오는데3시간 남짓 걸렸다,. ( 물론 도중 휴게소에서 2번을 쉬었다. ) 통영향교는 조선 고종 광무 4년(1900)에 진남군이 고성현에서 분리됨에 따라 1901년에 고성향교에서 떨어져 나와 지금의 위치에 세워졌다.▶ 통영향교 : 경남 유형문화재 제218호 1901년에 건립하였고, 과거에는 군내에서 수재를 뽑아서 경학을 연수하도록 하여 중앙제 도와 같이 유교의식 절차를 익히게 하고 미풍..

( 통영 여행 ) 이순신 장군의 위패 사당-충렬사 사적 제236호

국내에 충렬사라고 아름 붙여진곳이 6~7곳 정도 되는데 그중에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곳이 3곳이다 ( 통영,남해,정읍) 이곳 통영 충렬사는 선조39년(1606)에 왕의 명령에 따라 제7대 이운용 통제사가 창건 하였으며, 현종4년(1663)에는 남해 충렬사와 함께 임금이 내린 충렬사 사액을 받은 사액사당이다.그 후에는 역대의 수군통제사들이 매년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왔다. 경내에는 본전, 정문, 중문, 외삼문, 동서재, 경충재, 숭무당, 강한루, 유물전시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경내에는 많은 비석들이 보존되어 있는데 이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숙종7년(1681)에 60대 민섬통제사가 세운 통제사충무이공충렬묘비이며 충무공 후손통제사 비각 2동에 6기가 있고, 이운용 통제사 비각, 김중기 통제사 비각,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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