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 깊은곳

경주 소금강산 인근 문화재-탈해왕릉,표암,동천동 마애삼존불 좌상,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空空(공공) 2021. 11. 1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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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경주는 도시 자체가 박물관이다

소금강산 트레킹이 목적이었지만 주위에 많은 유적들 안 보고 갈 수가 없다

소금강산 주위 유적들을 보고 간략하게 소개를 한다

 

탈해 왕릉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먼저 본 것은 숭신전이다

숭신전은 신라 석 씨 8 왕의 사당이다

문이 잠겨 있어 외관만 보았다

 

바로 옆의 소나무 숲을 지나가면

 

탈해 왕릉이다

☞ 사적  경주 탈해왕릉 (慶州 脫海王陵)

신라 탈해왕(재위 57∼80)의 무덤으로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왜국 동북 1,000리 지점에 다파나국의 왕비가 알을 낳았는데 불길하다 하여 보물과 함께 

궤짝에 넣어 바다에 띄워 보냈다.

 처음에는 금관국(김해)에 닿았으나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아무도 거두지 않았고 다시 진한의 아진포에 닿았는데 

노파가 거두어 키웠다. 

궤짝이 떠오를 때 까치 한 마리가 따라다니며 울었다고 하여 까치 작(鵲)자에서 조(鳥)를 떼고 석(昔)으로 

성을 삼고, 아이가 궤를 풀고 나왔다 해서 이름을 탈해(脫解)라 지었다. 

탈해왕은 석(昔)씨의 시조로서 신라 최초 석씨 왕이 되었다.

 높이 4.5m, 지름 14.3m의 둥글게 흙을 쌓아 올린 원형 봉토 무덤이다. 

주변에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았으며, 겉으로 보아 내부는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으로 추측된다.

 

 

탈해 왕릉 옆에는 표암이 있다

☞ 경상북도 기념물 경주표암 (慶州瓢巖)

표암이란 ‘박바위’, ‘밝은바위’를 뜻하는데, 신라 6촌 가운데 알천 양산촌의 시조 이알평이 이 바위에 내려와 

세상을 밝게 하였다하여 표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B·C 69년 6촌장이 여기에 모여 화백회의를 열고 신라 건국을 의결했으며, 그 후 B·C 57년 신라가 건국되었다. 

이와 같이 표암은 경주 이 씨 혈맥의 근원지인 동시에 신라 건국의 산실이고 화백이라는 민주 정치제도의 

발상지인 성스러운 곳이다.

 이러한 뜻을 새긴 유허비가 조선 순조 6년(1806)에 세웠고, 1925년에 표암재가 건립된 뒤 매년 3월에 그 뜻을 

기리며 제사를 지내고 있다.

 

뒷 산을 조금 올라 가면 표암 유허비가 있다

그리고 광림대 석혈이 있다

☞ 광림대 석혈

신라 제4대 석탈해왕릉 옆에 있는 표암재 건물 뒤편으로 올라가는 곳에 광림대 석혈이 있다.

96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유허비각이 있고 그 오른쪽 뒤를 돌아 조금만 올라가면 경주 이 씨의 시조 이알평이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했다고 설화로 전해지는 광림대 석혈이 있다.

광림대안에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알터 모양의 둥근 타원형 형태의 파인 돌이 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경주동천동마애삼존불좌상 (慶州東川洞魔崖三尊佛坐像)

경주시 동천동 금강산의 정상 동쪽에 위치한 자연 바위벽에 새긴 삼존불상이다. 

중앙에는 본존불이 앉아 있고, 양쪽에는 협시보살이 새겨져 있다. 

 오른쪽 협시보살의 머리에 쓴 보관(寶冠)에 작은 부처가 조각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미타삼존불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본존불의 높이가 약 3m에 이르는 거대한 마애불이지만 선각에 가깝게 새겨 부분적으로 마멸이 심하다. 

 조각된 옷의 표현과 손의 모습 등은 통일신라시대 마애불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 보물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慶州 掘佛寺址 石造四面佛像)

경상북도 경주 굴불사터에 있는 이 불상은 바위의 서쪽에는 아미타여래불, 동쪽에는 약사여래불, 북쪽에는 미륵불, 

남쪽에는 석가모니불을 각각 새긴 사방불(四方佛) 형태이다.

 『삼국유사』 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이 백률사를 찾았을 때 땅속에서 염불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땅을 파 보니 이 바위가 나와서 바위의 사방에 불상을 새기고 절을 지어 굴불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이 기록만으로는 분명하지 않지만, 여러 가지 여건으로 보아 이때쯤 불상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쪽의 아미타여래는 신체만 돌기둥에 조각했고 머리는 따로 만들어 놓았는데 머리가 얼굴보다 크게 표현되어 

꼭 모자를 쓴 것처럼 보인다. 

신체는 당당하고 굴곡 있게 표현되어 있으며 손과 발 또한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좌우에는 다른 돌로 보살입상을 세워 놓아서 3존불의 모습을 띠고 있다. 

동쪽의 약사여래는 양 발을 무릎위로 올리고 앉아 있는데 몸 전체가 앞으로 숙여져 있다. 

얼굴 표현은 매우 세련되었으며, 신체는 활기차고 긴장감이 넘쳐 보인다. 

북쪽면의 오른쪽에는 도드라지게 새긴 보살입상이 서 있고, 왼쪽에는 6개의 손이 달려있는 관음보살을 

얕은 선으로 새겼다. 

오른쪽의 보살상은 둥글고 예쁜 얼굴, 굴곡 있는 우아한 자세 등 그 표현이 매우 뛰어나다. 

남쪽면은 원래 3존상으로 되어 있었는데 일본인들이 오른쪽 보살을 완전히 떼어 가고 가운데 본존상의 머리마저 

떼어갔다고 한다. 

미래세계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불을 표현한 것인데, 굴곡이 진 신체의 모습과 얇은 옷 주름의 묘사가 

매우 뛰어난 솜씨를 자랑하고 있다.

 이처럼 입체의 표현, 음각과 양각의 표현, 좌상과 입상의 표현 등을 변화있게 배치한 점은 매우 특이한 경우이다. 

풍만하고 부드러우면서 생기를 잃지 않은 솜씨를 볼 때 통일신라 초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다른 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문화재들이 경주는 널려 있어 조금만 움직여도 많이 볼 수 있다

☞ 10월 16일 아내,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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