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다 보면 정려각을 가끔 만나게
된다
정려각이란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기리고자
정문(旌門)을 세우고 표창하기 위해 건립한
상징적인 건물로 내부에 정려비나 현판처럼
만든 정려기를 모신다
보통은 그 사람이 사는 마을 입구나 집앞에
세우는것이 일반적이다
충신,열녀는 사당앞에 홍살문을 세우기도 했다
책을 읽다 효에 대한 내용이 있어 작년 가을에 다녀 오고 올리지 못했던 하효자 정려각이
생각이 났다
하효자정려각(夏孝子 旌閭閣) 문화재자료 제18호 (1989. 6. 15 지정) |
하광신의 정려가 세워진 곳은 달성 하씨들의 세거지였던 현재의 대봉동 수도산 근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버렸다. 그때 달성 하씨들은 당시 14세 소년이던 하인경을 제외하고는 모두 희생되는 바람에 명맥마저 끊길 지경이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대구의 토족이면서도 지금 그 숫자가 매우 적다. 현재의 정려비는 1781년(정조 5)에 만촌동 형제봉 기슭에 중건하였으나 일제시대에 경부선 철도가 놓이면서 헐려 현 위치로 다시 옮겨 진 것이다. 정려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규모로 전면은 홍살창이며 뒷벽은 약50cm의 고맥이 위에 판벽을 설치했으며 양측면은 판벽위에 홍살창을 설치한 겹처마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
주택가 외진곳에 있어 일부러 찾아가기는 참 쉽지 않다
조선 시대에는 효자에게 "정문"과 '복호"라는 상을 내렸다
정문이란 홍살문이나 정려각을 이름이고 복호는 부역이나 군역,조세등의 호역을 면제해 주는것이다
효자를 선정한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부모에게 먹여 응급조치토록 한 "단지(斷指)"를 하거나
부모를 위해 허벅지 살을 베어내었던 "할고(割股)"를 한 사람들이 세간에 알려져 선정 되었다
또 부모의 병세를 살피기 위해 대변을 맛 보는 "상분(嘗糞)"도 있었고 "조문(蚤蚊)" 효행도 있었다
조문은 벼룩과 모기를 말하는데 부모와 함께 잠을 잠으로 밤에 설치는것들을 자신의 몸으로 유인해
부모는 물리지 않게끔 한 효도다 ( "조선 과학 실록 -이성규 저" 에서 일부 인용)
부모님이 나이가 들면 거의 같이 살지 않는 요즘
가슴 깊이 생각해볼 이야기다
'효"와 거리가 멀었던 나에게 가시같은 가르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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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부모님 연세가 들어가시니 생각이 많아지게 되더라구요....
2월 한달도 힘차게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자주 연락드리고 찾아 뵈시길 바라겠습니다
2월도 행복하게 시작하세요^^
하효자정려각이 주택가에 있나봐요?
옛날 효자로 선정된 예는 요즘세태와는 좀 거리가 있지요.
다시한번 부모님을 생각하게 되는 계기는 될것같네요.
네 주택가이고 접근성이 떨어져 일부러 찾아가서 보기는 쉽지 않더군요
요즘과는 정말 효의 기준이 천양지차라는걸 느낍니다^^
이 효자비는 주택가 한가운데 딱 있나 봐요.
동네분들이 효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시지 않을까 싶어요.
하효자 정려각에 영향받아 지금도 이 동네에서는 효자들이 많이 나올 것 같구요. ^^*
대로변에 붙어 있는 주택가이긴 하나 좀 외진곳에 있습니다
안내 이정표도 없고..
이 동네에서 효자,효녀들이 많이 나왔을듯도 싶습니다
어릴때부터 이것을 보고 교육을 받아왔다면 말입니다^^
부모님 얼굴 자주 뵙고, 사소한거 챙기는게 효도라고 생각합니다.
영원한건 없으니까 후회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게 도리인거 아닌가 싶어요! ㅋㅋ
그럼요
그것만큼 효도가 없습니다
잘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제 자신을 반성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어요.
잘 보고 갑니다.^^
저도 많이 반성합니다
2월 행복한 나날 되세요^^
부모님 안계시니..더 맘 아픈 노을입니다.ㅠ.ㅠ
행복한 2월 맞이 하세요^^
저도 2분 안 계십니다 ㅡ.ㅡ;;
동병상련이라고 하나요?
정려각이 충신, 효자, 열녀를 기리기 위함이라는 걸 몰랐네요. 우리가 가끔 말하는 열녀문이 이런거군요. 부역이나 군역, 조세를 면제해주는 방법으로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 정말 좋네요^^ 효행의 예를 들어보니 부모의 몸을 자신의 몸처럼 여기는 행동에 많이 의미를 둔 것 같아요. 저도 부모님께 뭘 해드렸나...되돌아보게 되는 글이네요. 항상 좋은 곳을 멋진 사진과 좋은 말씀으로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2월에도 건강하고 행복한 나날로 이어지시길요^^
현대에 들어 와서도 그런 취지의 행사가 있긴 한가 모르겠습니다
간혹 TV로 부모님에게 효도하는것을 볼때 예전보다는 더 강도가 떨어지자 않았는가 싶기도 합니다
점 더 적극적으로 찾고 또 지원도 해주면 좋겠습니다^^
요즘의 사람들에게 일러줄 좋은 장소 같아요
잘 찾아갈수 있도록 이정표라도 잘 되어 있으면 좋겠습니다^^
정려각이란 게 있군요. 효부 효자를 기리기 위한 표식 같은 게 있다는 말은 간혹 들었는데 이게 일종의 그런 종류의 것이로군요. 자기만 아는 현대인들에게 따끔한 일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니다 보면 가끔 볼수 있는데 저를 포함해 대부분은 그냥 지나치더군요
타의 모범이 되는 행동을 새겼으면 좋겠네요^^
우리 후손들이 정말 잘 지켜야할 문화 유산이라 생각해요 ㅋ
맞습니다
이런건 발굴해 내서 널리 알려야 합니다
요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효자 정려각이라는 곳이 있군요. 부모님 살아계실때 효도해야겠습니다. ^^
맞습니다
계실때잘해 드려야 합니다
나중 후회를 덜하게 됩니다^^
효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야겠지만 오늘날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뭔가 새로운 모습으로 재정립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점점 예전 효에 대한 개념이 희박해져 가고 있습니다
고령화 시대에 다시 정립할 필요가 시급합니다
읽는내내 뜨끔뜨끔하네요.
이래서 불효자는 우는가 봅니다.
그런데 선조들처럼 따라할 자신은 없네요.ㅎㅎ
예전 선조들처럼의 효를 따라 할수는 없지만 최소한 불효는 하지 말아야겠네요^^
그러고 보니 요즘은 효자, 효녀 이야기는 정말 듣기 힘든 이야기가 된 것 같아요.
저도 효자로 살고 싶었는데.... 참 그게 쉽지는 않네요.
아버진 엄청 효자셨는데... ^^
피터준님도 당연히 효자이실것입니다
부전자전이거든요^^
이런거 보면 왠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한번씩 자신을 돌아 보는것도 좋습니다^^
단촐하고도 쓸쓸하게 있네요.
의미를 읽으면서 이런 것을 본다면 좋을 텐데 말이죠~^^
"효"라는 것,
일상에서 세심해지는 부모님과 저 자신과의 관계가 된다면 좋겠지요.
지금 어머니와의 살가운 대화와 나눔이 그저 좋습니다~^^
토비님은 어머님에게 효를 다하시지 않나 생각됩니다
효라는게 다른게 있나요
불효가 아니면 효인것을요
부모님과 대화를 자주 하는것도 효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할고, 상분, 조문... 어느 것 하나 칭찬받아 마지 않을 일이 없네요.
저 정도는 고사하고 같은 집에 모시려고조차 하지 않는 게 일반적인 풍토가 되었고, 조금이라도 아프면 요양병원에 가둬놓는 게 일상이 된 요즘... 현재를 돌아보게 만드는 일화군요.
요즘은 상상할수도 없는 일이죠..
앞으로가 참 걱정입니다
고령화 사회 들어서 어두운 그늘이 점점 많아질둣 합니다
효라는 개념이 많이 약해진 것은 자본주의가 만든 것이지요.
먹고살기 힘들어지고 모든 것이 경쟁인 상황에서 개개인은 극도의 스트레스에 처하게 됩니다.
그렇다 보니 효를 얘기하기도 힘든 시절입니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것도 한몫했고요.
앞으로 점점 더 그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야 되는데 점점 그런것과는 멀어지고 있습니다
리더가 잘해야 합니다
효도의 길을 멀고도 험하네요.. 손가락을 자르거나.. 허벅지 살을..;;;
에고고.. 오래전에는 치료하기도 힘들었을 텐데요.. 감히 따라할 수 없는 일들이라
저는 일주일에 한번이상 전화해서 안부전하는 걸로
소박한 효를 실천해야겠습니다.^^
요즈음 생각으로는 감히 할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소박한 효..
그것이 진정한 효가 아닐런지..
효는 분명 중요한 덕목이긴 하지만, 단지, 할고, 상분, 조문과 같은 조선시대의 효행은 그 정도는 너무 심한 것 같은데요.^^
하지만 효와 거리가 멀었던 저역시 많이 반성하게 만드는 가르침입니다.
그 시절에는 그게 최고로보여 줄수 잇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즘처럼 돈을 들일수도 없고
돈이 있더라도 제반 환경이 그러질 못햇으니..
저 역시 그러힙니다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