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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고택,고건축물

( 창녕 여행 ) 술정리 진양하씨 고택 ,창녕 석빙고

空空(공공) 2020. 9. 9.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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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정리 3층석탑 옆에 초가로 된 고택이 있어 잠시 살펴 보았다

후손이 사시고 있는듯 해서 조심스럽게 들어가 보았다


 창녕 진양하씨 고택 (昌寧 晉陽河氏 古宅)-국가민속문화재 제10호

지정(등록)일 1968.11.25

소 재 지 경남 창녕군 창녕읍 시장1길 63 (술정리)

시 대         조선시대

창녕 지방에 있는 옛집으로 안채·사랑채·대문간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중 안채만 지정되어 있다. 

안채는 현소유자 하경목 씨의 18대 조상이 이 마을에 들어와 세종 7년(1425)에 지은 건물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수리과정 중에 ‘건륭 25년’<영조 36년(1760)>이라는 기록이 발견되어 이 때에 다시 지었거나 수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안채는 중부 이남지방에서 일반적인 앞면 4칸·옆면 1칸의 '一'자형 홑집으로, 왼쪽부터 작은방·대청·큰방·

부엌의 순서로 배치되어 있다. 


길게 빠져나온 처마는 이 집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빠져나온 처마의 길이가 기둥의 

높이에 가까울 정도로 깊다. 

이는 일조량이 높은 남부지방의 기후적 특성을 고려한 것으로 여름날 최대한 햇볕이 집안으로 

적게 들어오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지붕은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인 볏짚을 사용하여 만든 초가지붕과 달리

억새풀을 엮어 얹은 억새지붕으로 하였는데,  비가 올 경우 빗물이 지붕에 고이지 않고 곧바로 억새풀 줄기를 

따라 흘러내리도록 하여 집안으로 비가 새는 것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지붕의 수명도 

일반 초가지붕보다 길다.


대청마루는 통나무를 윗부분만 편평히 깎고 아래는 껍질만 벗겨 그대로 깔았는데 이것은 민가에서 오래전부터 

해오던 방식이다. 또한 목재는 못을 쓰지 않고 구멍을 뚫어 연결하였으며, 천장은 흙을 깔지 않은 상태로 

구성하여 가볍게 한 점 등이 이 고택의 특징으로 이러한 점들은 중부 이남지방 살림집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앞마당에는 작은 텃밭을 가꾸었고 부엌 앞쪽에는 장독대가 있으며, 안채 뒤로는 꽃계단을 꾸며 몇 그루의 

오래된 나무들이 어울러 숲을 이루고 있다.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인용 )



인기척이 있었다면 인사라도 했을텐데 아무도 안 게셔 혼자 조용히 보고 나왔다


다음은 근처의 석빙고다

남한의 석빙고는 모두 6개가 있는데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6개의 석빙고중 창녕 석빙고가 5번째 본 석빙고이며 이제 영산 석빙고만 보면 다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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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석빙고 (昌寧 石氷庫)-보물 제310호

지정(등록)일 1963.01.21
소 재 지 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288번지

창녕군 명덕초등학교 맞은편 도로변에 언덕처럼 보이는 것이 이 석빙고이다. 
석빙고는 얼음을 저장해 두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창고로, 주로 강이나 개울 주변에 만들어진다. 
서쪽으로 흐르는 개울과 직각이 되도록 남북으로 길게 위치하고 있으며, 입구를 남쪽으로 내어 얼음을 쉽게 
옮길 수 있도록 하였다.

 입구 안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밑바닥은 경사졌고 북쪽 구석에는 물이 빠지도록 배수구멍을 두었으며, 
바닥은 네모나고 평평하다. 내부는 잘 다듬어진 돌을 쌓아 양옆에서 틀어올린 4개의 무지개모양 띠를 
중간중간에 두었다. 각 띠사이는 긴 돌을 가로로 걸쳐놓아 천장을 마무리하였다. 또한 천장의 곳곳에는 
환기구멍을 두어 바깥공기를 드나들게 하였다.

 이 석빙고는 입구에 서 있는 비석의 기록을 통해 조선 영조 18년(1742) 당시 이곳의 현감이었던 신서(申曙)에 
의해 세워졌다는 것을 알수 있다. 각 부 양식 또한 조선 후기의 모습이 잘 담겨져 있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하씨고택에서 약 150M 떨어져 있다

멀리서 보면 고분 같아 보인다

석빙고의 모습은 제각기 조금씩 다르다

☞ 5월 4일 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