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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서원_향교

( 합천 여행 ) 합천향교,조선의 마지막 향교 강양향교

空空(공공) 2019. 2. 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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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사지 삼층석탑을 보고 난뒤 지도에 나와 있는 합천향교를 찾아 나섰다.

그런데 네비게이션에 등록이 안 되어 있는지 네비게이션으로는 검색이 안된다.

그럼 주소를 찾아 갈수밖에. 그런데 네비게이션에는 주소도 안 나온다. 근처 주소를 입력하고 찾아 나섰다.

 

보통은 가까이 가면 이정표가 있기 마련이고 웬만하면 향교 건물이 멀리서도 보이는데 여긴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마을 어르신들에게 물었더니 골목으로 들어가 중학교 앞이라고 친절히 가르쳐 주신다

 

덕분에 지도에도 없는 그마을의 효부문을 볼수 있었는데 누군지는 설명이 없었다. ( 아마 승정대부였던 한 장군의

부인이거나 며느리 였지 싶다..) 그리고 제실도 잠깐 보고 합천 향교를 찾아갔다.

 

설명문이 없어 누구의 효부문인지....

글씨도 알아 보기 힘들었다

어느 가문의 재실..

향교는 다행히 개방이 되어 있었다.

*합천향교 (陜川鄕校):경남유형문화재 제228호

 세종(재위 1418∼1450) 때에 세워진 후 고종 18년(1881) 홍수로 인해 합천군청을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같이 옮겨와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출입문인 영귀루,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 사당인 대성전과 동 ·서무가 있다. 배치는 명륜당이 앞에 있고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로 배치되어 있다. 

경내에는 이 고장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목숨을 걸고 향교를 지킨 정씨 부인의 사당이 있으며, 명륜당 대청에는 각종 현판들이 걸려있어 향교에 관한 좋은 연구자료가 된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제사만 지내고 있다.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인용)

 

향교 출입문인 영귀루

명륜당

내삼문..열려 있는 경우가 없는데..

대성전 내부를 잠깐 볼수 있었다

5성 20현을 봉안하고 있었다

앞의 중학교에서 넘어 온듯한 공 하나가 뎅그러니 놓여 있었다.

다음 지도에는 합천 향교가 2곳이 나온다 ㅡ.ㅡ;;

 

합천은 전국 시군구에 유일하게 한군에 향교가 4곳이나 되는 곳이다 ( 합천향교,강양향교,초계향교,삼가향교 )

해방 이후 군청 소재지에 향교가 없음을 아쉬워하던 읍을 중심으로 하는 군내의 인근 4개 지역(합천, 율곡, 대양, 용주)

유림들이 뜻을 모아 합천읍에 1965년 '강양향교(江陽鄕校)'를 새로 건립하게 된다.  

그래서 강양향교가 전국 232개 향교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세워진 향교가 된것이다

 

강양향교 (江陽鄕校):문화재자료 제210호

합천군 소재지에 처음 지었던 합천향교는 조선 고종 18년(1881) 수해 때 합천군청을 야로면으로 옮기면서 함께 옮겼다. 그 뒤 1965년 합천·용주·율곡·대양면의 유림들이 지금 있는 자리에 강양향교를 지었다.

건물은 제사지내는 공간인 대성전, 내삼문,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강당인 명륜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향교 232개소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지은 향교이다.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인용)

강양향교도 문이 열려 있어 들어갈수 있었다.

명륜당

대성전

안에서 본 외삼문

이쪽은 어떤 건물인지는 모르겠다..

강양향교는 특이하게 명륜당과 대성전이 나란히 배치 되어 있다.

합천의 나머지 2곳 향교는 다음기회 다녀 와야겠다.

합천에 이렇듯 예전 선비의 고향이다...

현대에선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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