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왕의 길" 걷기 행사 코스는 국보인 "황복사지 3층 석탑"을 지나간다
3층석탑의 사진을 찍으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대부분은 그냥 흘낏 보시고는 지나치신다
난 가면서, 돌아 오면서 좀 시간을 가지고 살펴보았다
외관상으로는 여늬 신라시대 3층 석탑과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 국보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慶州 皇福寺址 三層石塔)
통일신라 신문왕이 돌아가신 후 그 아들인 효소왕이 아버지의 명복을 빌고자 세운 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며,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국보)이나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에 비해 작은 규모이다.
기단의 양식은 두 탑과 거의 비슷하나, 기단의 각 면에 새겨진 가운데 기둥이
3개에서 2개로 줄어 있다.
탑신부도 여러개의 돌로 짜 맞추는 대신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어,
달라진 석탑의 양식을 보여준다.
지붕돌은 윗면이 평평하고 네 귀퉁이가 살짝 올라가 경쾌하며, 밑면에는 5단의 받침을 두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받침돌인 노반(露盤)만이 남아있다.
효소왕 1년(692)에 세워진 탑으로, 이후 효소왕의 뒤를 이은 성덕왕이 즉위한 지 5년 만인
706년에 사리와 불상 등을 추가하여 다시 탑안에 넣어 앞의 두 왕의 명복을 빌고,
왕실의 번영과 태평성대를 기원하였다.
1942년 착수된 탑 해체수리 과정에서 2층 지붕돌 안에서 금동 사리함과 금동 불상 2구를
비롯하여 많은 유물을 발견하였는데, 그중 사리함 뚜껑 안쪽에 탑을 건립하게 된 경위와
발견된 유물의 성격이 기록되어 있어 탑의 건립 연대와 조성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이면서도 전기 석탑양식의 변화과정이 잘 담겨 있어
소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 국가유산포털에서 인용 )
황복사는 왕실 사원으로 추정되는 사찰로 의상대사가 출가한 사찰로 기록되어 있다
탑 인근은 아직 발굴 조사가 덜 된 듯해 보였다
자료를 찾아보니 인근 들판이 신라 효성왕 ( 재위 737~742 )의 기릉이었다가
화장하는 바람에 폐왕릉지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승용차로 갈 수는 있지만 주차 장소가 없고 길이 협소해 진평여왕릉 들어가는 길에
주차를 하고 2~3분 정도 걸어 들어 오는것이 좋다
☞ 11월2일 아내, 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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