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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서원_향교

( 구미 문화재 답사 여행 ) 금오서원

空空(공공) 2021. 9. 12.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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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 서원은 감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근처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1600년대에 지어 진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새 건물 같았다

 

이렇게 잘 보존 되어 있는 서당은 처음이다

다시 지은 것인지 확인을 해 봐야 할 정도다

 

☞  경상북도 기념물 금오서원 (金烏書院)

지정(등록)일        1985.10.15
소 재 지             경북 구미시 선산읍 원리 276번지

야은 길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길재(1353∼1419)는 정몽주·이색과 함께 고려 후기에 절의를 지킨 ‘고려삼은(三隱)’으로 불리는 학자이다. 

그는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고려가 망하는 것을 알고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 하여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은거하였다. 

조선이 건국되고 세자 이방원(태종)이 관직에 임명하였으나 거절하고 학문과 후학양성에만 전념했다.

 금오서원은 선조 3년(1570)에 금오산 자락에 세웠으며 선조 8년(1575) 임금으로부터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35년(1602)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다시 지었고, 광해군 1년(1609)에 다시 

사액되었다. 이 때 점필재 김종직·신당 정붕·송당 박영·여헌 장현광을 추가로 모셨다.

 서원 경내에는 위패를 모시고 있는 상현 묘를 비롯하여 정학당, 동재와 서재, 읍청루 등이 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철거되지 않은 서원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금오정

 

최근 보물로 지정된 정학당

☞ 보물 구미 금오서원 정학당 (龜尾 金烏書院 正學堂)

지정(등록)일       2020.12.28
소 재 지             경상북도 구미시 유학길 593-31 (선산읍, 금오서원)

1602년에 현재의 위치에 재건함. 

재건 이후 중건 기록이 없이 현재까지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청방 칸에 고주를 사용한 가구 구성,
 
영쌍창, 창틀 구성에서 고식 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음. 

온돌방 부분까지도 원기둥을 사용하고 부재의 규격을 크게 하였으며, 장식은 배제하여 엄격한 느낌을 주며, 

여기에 지붕가구 세부와 공포 형식에서 절제미 등 미학적인 건축 양식과 조형미가 돋보임. 

또한 정면 간살의 경우 정칸에 비해 퇴칸을 한 자 정도 크게 하여 일반적인 건물과는 반대로 하였는데 

이는 기능적으로 온돌방을 크게 쓰려는 의도이지만 고도의 미학적 관점이 녹아있는 점이 뛰어남. 

정학당은 서원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지역적 특징과 고유한 특징을 간직하고, 건축적으로 미학적 

가치가 뛰어나며 임란직후 창건된 조선 후기의 강당 건축의 모범을 보임으로서 보물로 지정 가치가 충분함.

상현 묘

☞ 보물 구미 금오서원 상현 묘 (龜尾 金烏書院 尙賢廟)

상현 묘는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출목 2익 공 5량가의 맞배지붕 건물로, 평면구성은 전면에 퇴칸을 

설정하지 않고 전후 평주 사이에 벽과 출입문을 설치하여 사당 내부 공간을 넓게 확보한 점이 눈에 띄며, 

출목 2익 공의 세부 형상은 17세기의 시대 특징을 간직하고 있으며 내부 지붕틀은 대들보와 마룻보를 걸고 

장식이 가미된 대공을 설치함. 

조선시대 사당 건물은 적어도 전면에는 개방된 퇴칸을 갖추는 것이 일반적이나 전면에 개방된 퇴칸을 두게 

되면 내부 사당 공간이 지나치게 협소해질 우려가 있어서 부득이 전면 퇴칸 없는 사당 건물도 적지 않게 

발견되는데 금오서원 상현 묘는 현존하는 사례 가운데서 비교적 건립 시기가 이른 17세기 초에 속하는 

건물이어서 가치가 있음. 

금오서원 상현 묘의 또 다른 건축적 가치 중 하나는 이 건물이 17세기 초 출목익공식을 갖춘 사당 건물의 

뛰어난 사례인 점임. 

출목익공은 익 공식의 공포를 구성하면서 처마 내밀기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외출 목을 갖추어 처마 서까래를 

지지하도록 한 것이며 현존하는 이른 시기의 대표적인 사례로 종묘 정전 건물을 들 수 있음. 

종묘 정전은 규모와 격식 등에서 상현 묘와는 차원이 다르지만 두 건물의 기본적인 익공 결구 방식은 동일하여 

상현묘 역시 17세기 초 출목 익 공의 좋은 사례로 꼽을 수 있으며, 시기적으로는 오히려 종묘 정전보다 

6년 앞서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님   (문화재청 국가 문화유산 포털 인용 )

금오서원 주위로 녹색길이 조성되어 있다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이 다행이다

앞으로도 잘 보존되어야 할 것이다

☞ 8월 4일 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