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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서원_향교

( 함양 여행 ) 황암사, 청계 서원

空空(공공) 2021. 9. 8.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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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정자인 농월정까지 가야 선비문화 탐방로가 마무리되는데 날씨가 더워 힘드신지 그만 걷자 하신다

황암사 앞에서 버스를 타고 거연정으로 돌아 가기로 했다

버스 타는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황암사를 돌아본다


황암사는 절이 아니고 호국 선열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 황암사

 조선(朝鮮) 선조(宣祖) 30년(1597) 정유재란 때 황석산성을 지키기 위하여 왜적과 싸우다 순국한 호국선열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황석산성 전투는 정유년(1597)에 조선을 다시 침략한 왜군 14만 명 중 우군 2만 7천 명이 8월 16일(음력)에 

가또(加藤淸正), 구로다(黑田長政) 등의 지휘로 황석산성을 공격하면서 일어난 3일간(8월 16일∼8월 18일)의 

처절한 공방전이었다.

이때 안의현감 곽준(郭埈)과 전 함양군수 조종도(趙宗道)는 소수의 병력과 인근 7개 고을의 주민들을 모아 

성을 지킬 것을 결의하고 관민남녀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 조총으로 공격하는 왜군에 맞서 활과 창칼 

혹은 투석전으로 대항하였다. 

마지막에는 육박전으로 처절한 격전을 벌였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마침내 음력 8월 18일 황석산성은 

함락되고 말았다.

이 전투에 참여한 주민 및 병사의 수(數)를 일부 사서(史書)에서는 500여 명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당시의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수천(數千)에 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숙종(肅宗) 40년(1714)에 황석산 밑에 사당을 짓고 황암사(黃巖祠)라 사액(賜額)되어 당시 황석산성 

싸움에서 순절한 모든 분들의 원혼(?魂)을 달래는 위령제를 지내왔다. 

일제강점기에 사당이 헐리고 추모행사 마저 중지 되어오던 중 1987년에 황석산성이 사적 제322호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지방민의 정성을 모아 2001년에 호국의총(護國義塚)을 정화(淨化)하고 사당(祠堂)을 복원하였다



이 버스를 타고 차가 주차 되어 있는 거연정 휴게소로 갔다

 

조금의 미련을 두고 선비 문화 탐방로를 걸었다

 

청계  서원은 남계 서원 바로 옆에 있는 서원이다

☞ 청계 서원

경남 문화재 자료 제 56호이며 수동면 원평리에 있다

조선 연산군 때 학자인 문민공 김일손(1464∼1498)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다.

김일손은 김종직의 제자로서 그의 스승을 비롯한 영남학파 학자들과 함께 조의제문 사건에 연루되어 

무오사화로 희생되었다. 글에 뛰어났으며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비판하였다.

연산군 1년(1495)에는 ‘청계정사’를 세워 유생을 가르쳤고, 광무 10년(1905) 유림들이 그 터에 유허비를 

세웠다. 그 뒤 1915년에 건물을 원래 모습으로 고쳐 청계 서원이라 하였다.

구경재와 동재, 서재, 홍남문, 솟을삼문 등의 건물이 남아 있고,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유네스코 등재 된 바로 옆 남계 서원과 비교되어 보인다

☞ 8월 3일 아내, 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