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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서원_향교

( 옥천 여행 ) 옥천 향교,옥주 사마소

空空(공공) 2021. 11. 2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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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구읍은 볼 만한 곳들이 모여 있어 충분히 걸으면서 볼 수가 있다

옥천 향교는 지나치기가 쉬운데 여느 향교와 다른 점이 있어 보고 가면 좋다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옥천향교 (沃川鄕校)

조선 태조 7년(1398)에 처음 지은 후 임진왜란(1592)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다시 지었으며, 1961년에 황폐한 

향교를 복원하였다. 

1966년과 1974년에 보수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충청북도문화재자료 제214호)과 명륜당·동재·서재·내삼문·외삼문·고직사 등이다.

건축형태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이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이다.

 

옥천 향교는 입구가 명륜당이어 특이하다

입구가 명륜당인 향교는 처음 본다

내삼문도 독특한 모습이다

서재, 동재는 공사중이었다

명륜당

명륜당에 뜬 아궁이가 있다

이 역시 독특하다

 

복원하긴 했지만 향교의 독특한 모습은 관심을 끌 만 하였다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옥천 옥주사마소 (沃川 沃州司馬所)


사마소는 조선 중기 이후 지방의 고을마다 생원과 진사들이 모여 친목과 한문, 정치, 지방 행정의 자문 등을 

논하던 곳이다.

그러나 점차 압력 단체로 발전하여 폐단이 컸으므로 선조 36년(1603)에 없앴으나 지방에 따라 그 폐단이 

지속되기도 하였다.

조선 효종 5년(1654)에 세워진 것으로, 우암 송시열이 쓴 「의창중수기」에 의하면 이 건물은 원래 어려운 백성을 

위하여 곡식을 저장해 두던 의창 건물을 뜯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2칸이고,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과 비슷한 맞배지붕의 건물이다. 앞

면 4칸에 툇마루를 두고, 그 뒤로 오른쪽에는 마루, 왼쪽에는 온돌방과 부엌을 두었다. 

내부에는 관성사마안, 향약계안, 옥천군향계규약 등 조선시대 문인들의 면모를 알려주는 여러 편의 문서들이 있다


현판은 ‘沃州司馬所(옥주사마소)’라고 되어 있는데, 옥천군을 옥주(沃州)라고 부른 것은 

1313년(고려 충선왕 5)부터 1413년(조선 태종 13)까지 였다.

 

서당이나 정자는 많이 봐 왔지만 사마소는 좀 생소하다

지금으로 치면 다양한 외부 활동을 하는곳의 집합체라고 할 수도 있겠다 ( 도서관,문화센터, 협회등)

 

옥천이 예전 옥주라 하는 곳으로 꽤 큰 고을이었음을 알게 해 준다

☞ 10월 31일 아내, 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