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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서원_향교

( 대구 달성 ) 귀화 장수 김충선 (사야가)의 달성한일우호관,녹동서원

空空(공공) 2022. 3. 17.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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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도서관에 들렀다가 바로 근처 녹동서원이 있는 게 생각이 나 잠시 들렀다

달성한일우호관과 녹동서원은 2015년 들렀으니 근 6년 만에 다시 찾은 거다

https://xuronghao.tistory.com/338

 

( 대구 달성) 녹동서원 그리고 달성한일우호관

대구 근교 청도 방향으로 달성 가창면 우록리에는 "징비록" 드라마로 재조명된 임진왜란 당시 3천명의 병력을 이끌고 투항,조선으로 귀화한 일본인 장수 사야가 ( 한국명: 김충선) 를 모신 서원

xuronghao.tistory.com

 

이곳은 그간 많은 드라마에 조금씩 언급되었던 일본의 귀화  장수 김 충선 ( 일본 명 사야가 )을

모신 서원이고 기념관이다

김충선은 임진, 병자 전쟁과 이 괄의 난에 큰 공을 세우고 이곳 달성 가창 우록리에

세거지를 정해 살았다

 

아직도 주위에는 그의 후손 200여 세대가 살고 있다 한다

 

녹동서원은 모하당 김충선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향도(鄕道) 유림(儒林)들의 

공의(公議)로 상소(上疏)하여 정조(正祖) 15년 신해(辛亥)(1791)에 건립하였고

한일우호관은 2010년 1월 착공하여 2012년 5월 개관하였으며, 모하당 김충선 선생의

귀화 및 귀화 후의 활약상을 내용으로 한 역사관, 3D 영상관, 예절교실, 기획전시관,

통놀이 및 일본식 정원 등이 있다


삼란공신 모하당 김충선 장군(1571-1642)은 사성김해김씨(賜姓金海金氏)의

시조로 선조 25년(1592) 임진전쟁 발발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우선봉장(右先鋒將)으로

4월 13일 부산에 상륙 후 이끌던 군사와  함께 조선에 귀화하였다.

선조 36년 만주족이 해마다 국경을 침범한다는 말을 듣고 자원하여 10여 년을

변방을 지키고 돌아오기도 하였고조 2년(1624) 이괄(李适)의 난(亂)에는

이괄의 부장 서아지(副將 徐牙之)를 잡았으며

인조 6년(1628) 우록리에 정착하였고 인조 20년(1642)  나이 72세로  병으로 별세하셨다. 

                                                                                             (  리플릿 및 누리집 요약 )

 

지난 번은 묘소를 참배했지만 이번은 생략을 했다

 

향양문

김충선 장군 묘소로 올라가는 길

미국 자리공이 계단을 막고 있다

우록리는 원래 우미산 아래 소의 굴레 모양의 마을이라 해서 우륵리로 불리다가 김충선 장군이 정착하면서

사슴과 벗하는 마을이란 뜻으로 우록리라 고쳤다 한다

 

남풍 유감(南風有感)이란 시로 두고 온 고향과 형제를 그리워하기도 했다

(전략)

조상의 무덤을 평안한가, 일곱 형제는 무사한가

구름을 보며 고향 생각하는 마음, 봄풀을 보고 솟아오르는 생각이

어느 때 인들 없을쏘냐

고향 산천 그리워하는 마음은 떠날 날이 없네

(후략)

김 충선과 같이 귀화 한 일본 군인 들의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는 게 없고

일본의 형제와 후손에 대한 기록도 없다 한다

그는 시로 "최악의 보기 드문 운명"이라고 자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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