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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

천주교 대구대교구 톺아 보기-안익사.성직자 묘지.성모당

空空(공공) 2021. 5. 12.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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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동에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는 늘 지도상으로 봐와 존재는 알았는데 들어가 보지는 못했던

곳이기도 하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기도 하고 예전에는 관심이 그다지 없기도 했었서이다


이번에 남산동 동네 한 바퀴를 하면서 이 곳이 대구 근대로의 여행 5코스에 포함되어 있어 대교구 전체를

돌아볼 수 있었다


이곳의 연혁을 잠시 살펴보면 1784년 한국 천주교회가 창립되고 1885년에 대구 본당이 설립되었다

그 후 1911년 4월에 대구 대목구(교구)가 설정이 되었고 초대 교구장으로 플로리안 드망즈 

( 한국명 안세화 주교)가 취임하였다

2010년 제 10대 교구장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가 착좌 하신 후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 대구대교구 누리집에서 발췌 인용 )




대구대교구의 볼만한곳 (성지 )으로는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3호인 성 유스티노 신학교

( 출입 금지 지역 ) 와 성모당과 성직자 묘지, 안 익사 등이 있다


처음 방문한 기회여서  톺아 보았다

 

대교구에도 주차장이 있었지만 난 남산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였다

(코로나 기간 무료 운영중이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청과 가톨릭 교육원이란 현판이 붙어 있는 문으로 들어가 (이곳이 후문)

영산홍이 반겨준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한 곳 한곳 둘러보았다

교육원

카페도 있다 카리타스

교구청 내 이정표가 잘 되어 있었다

안 익사

안익사 설명은 이걸로 갈음한다

예전 사제들의 휴식처

옮겨온 것이다

한국에서 왕벚나무를 처음 발견한 에밀 타케 신부가 심은 왕벚나무

꽃을 보았더라면 좋을 뻔했다

 

대건관

 

성직자 묘지

1915년에 조성된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성직자 묘지는 물론 치명자나 옥사자들이 묻힌 순교 성지는 아니다. 

이곳은 대구대교구 초대 교구장 안세화 드망즈 주교를 비롯해서 성직자 66명(2006년 12월 말 현재)이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곳이다. 

모두 대구대교구가 조선 대목 구로부터 분리 창설된 1911년부터 지금까지 지역에 부임, 국내외에서 

사목활동을 하다가 선종한 목자들이다. 한국인 사제는 물론, 이국의 사제들도 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소통 공간이 바로 남산동 성직자 묘지이다.

 

국채보상운동의 창시자 서상돈 선생도 천주교 신자셨는가 보다

김대건 신부 동상

이곳은 정문이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9호   성모당 (聖母堂)

대구 천주교회 1대 교구장이었던 안세화 주교가 루르드 성모 굴을 본 따 만든 성당이다. 

1918년에 루르드 성모 굴의 크기와 바위의 세부적인 형상까지 비슷하게 본떠 만들었다.

오른쪽 면의 뒤쪽이 안쪽으로 약간 꺾여 들어간 직사각형의 내부를 암굴처럼 꾸미고 그 위에 

마리아상을 모셨다. 

화강석으로 기초를 쌓고 흑색 벽돌로 각 모서리의 버팀벽을, 나머지 벽은 붉은 벽돌을 사용하여 쌓았다.

각 부분의 비례 구성이 아름답고 벽돌의 짜임이 정교한 건물로 지금까지도 그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성모당의 건축물 상부에는 '1911 EX VOTO IMMACULATAE CONCEPTIONI 1918'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다. 

1911은 대구대교구청이 처음 생긴 해이며, 가운데의 글자는 '원죄 없이 잉태하신 성모님과의 

약속대로'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1918은 성모당을 완공한 해이다.

성모당에 얽힌 사연으로 인해, 병을 낫게 해 준다는 치유의 장소로 알려져 천주교 신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성모당은 2014년부터 대구대교구의 로고에도 사용되고 있다     

 

갑자기 고해성사가 하고 싶어 졌다

그런데 폐문..

 

좌로부터 초대, 6대, 7대 교구장

 

신자들은 성지 순례를 신자가 아니더라도 천주교 성지를 한번 돌아 볼만한 곳이다

 

☞ 4월 10일 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