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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서원_향교

도심 속 향교-대구향교

空空(공공) 2021. 2. 17.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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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향교를 근 5년 반 만에 다시 찾았다

2015년 찾을때만 해도 생각은 자주 오게 될 것 같았는데 그러질 못했다

 

xuronghao.tistory.com/270

 

( 대구 가볼만한곳 ) 대구 향교 그리고 칠곡 향교

예전에는 관심도 없었고 거들떠 보지도 않았었는데 요즘 들어 관광,유적지를 가끔 찾다 보니 향교나 서원에 대해 조금씩 관심이 간다 향교는 쉽게 이야기해서 고려시대부터 있어 온 국립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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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어릴때 추억이 있던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면서 처음 시작을 이곳 대구 향교서 시작했다

어릴 때도 향교 안은 잘 들어가지 않았었고 향교 앞을 지나치기만 했었다

대구향교는 여타 다른 향교보다 비교적 넓은 면적이고 시내 중심지에 있어 접근성은 아주 좋은 편이다

 

대구 향교

 대구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에 처음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선조 32년(1599)에 달성공원 근처에 다시 세웠다가 선조 38년(1605) 교동으로 옮겼고,
 1932년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운 것이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문묘·삼문 등이 있다.

 대구향교로 들어서면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학생들이 숙식하는 동재·서재가 있으며,내삼문을 열고 뒤채로 
 들어서면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나타난다. 
 대성전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성현 18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건물로,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지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대구향교 대성전은 대구 시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향교의 중심 건물로,전체적으로 엄숙하고도 단아한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건물이다. ( 대구 문화재자료 1호)    -국가 문화유산 포털 인용

 

향교는 개방되어 있었고 손소독과 방명록을 작성한 다음 들어갈 수 있었다

대구 향교는 명륜당과 대성전이 나란히 배치 되어 있다

명륜당과 동재 서재

낙육재(樂育齋)

경종(景宗) 원년(1721년)에 경상감사 조태억(趙泰億)이 대구읍성의 남문 밖에 세웠고, 경상도 지역의 유생들을
뽑아 기숙시키며 독서 및 학문 연구를 지원하였다. 

건립 당시 낙육재는 대구향교와는 독립된 건축이었다. 독서와 시부(詩賦)의 제술, 연구 등의 기능이 있었던 
교육기관임에도 향교와는 달리 문묘(文廟)나 사묘(祀廟)를 따로 두지 않았던 것이 특징이다

 

▶양사재(養士齋)

영조(英祖) 43년(1766년)에 대구 판관 김노(金魯)에 의해 건립되었는데, 관찰사 김응순(金應淳)과 
김노 자신이 쓴 기문이 남아 있다

 

대성전

 

이존덕위심 : 높은 덕으로 마음을 삼고

이읍 양위 속 : 예의를 행함을 풍속으로 삼으라

 

향교가 도심에 위치해 있어 주차 요금을 받는다

 

향교의 선 기능을 잘 살려 나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 2021년 1월 30일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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