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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서원_향교

대구 신서혁신도시 선사유적공원 ( 동호유적공원),동호 서당

空空(공공) 2020. 9. 19.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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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월 연근 단지를 갔다가 집으로 가는 길에 혁신 도시를 잠깐 들렀다.

아내는 모자라는 달리기 운동을 좀 더 하고 난 주변 볼만한것들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 찾은곳이 동호 유적공원이다.


동호 유적 공원 

대구 신서혁신도시 택지 개발지구내에서 발굴, 조사된 문화유적중 

대표적인 청동기시대 지석묘(고인돌)와 석관묘를 원형 그대로 이전. 전시형으로 

이를 영구히 보존할 수 있도록 조성한 곳이다. 

이곳 대구 신서혁신도시 지구는 팔공산괴에서 남쪽(금호강)으로 뻗어 내리는 많은 구릉들의 끝단이자 

곡부에 의해 형성된 선상지역 중적 평야지대에 자리를 잡아 입지적 환경이 매우 좋은 곳으로 

청동기 시대 이래로 조선시대와 근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삶의 흔적들이 남아서 조사 되었다.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와 분묘, 원삼국 시대의 분묘, 삼국~통일신라 시대의 분묘. 주거지. 

건물지(우물). 도로유구, 고려~조선시대의 분묘. 건물지(우물). 기와가마. 삼가마 등 오랜 시간에 걸쳐 

삶과 죽음의 공간으로 영속되어 왔음이 밝혀졌다.


동호유적공원 안내도

대구둘레길 구간이다

유적과 그 설명이 되어 있는곳

지석묘

석관묘

석관묘

간토기와 동검에 대해 설명되어 있다

신서동 고인돌 출토 유물

대구의 고인돌 문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구 각산동 입구에 세워져 있던것을 이곳으로 옮겼다

석관묘

상석

지석묘

지석묘 상석

동호 서당이 이곳으로 옮겨져 있다

▶동호서당

의병장 면와 황경림(勉窩 黃慶霖 1566~1629)을 위하여 하양현 사림(士林)들이 1820년 세운 

동호사(東湖祠)에서 유래한다.동호사는 1872년 조선 고종때 서원 철폐령으로 인해 수년간 방치 하였다가 

1876년 본 건물을 중건 하였다. 

그 후 1921년 중수 하면서 서당으로 명칭을 바꾸었으며, 2013년 12월 다시 중수 하였다.


황경림은 조선 세종때 정승이던 황희(黃喜)의 후손으로 이곳 동내동의 입향조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하양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이 되어 권응수, 곽재우 등과 함께 

여러 전투에 참가하여 큰 공적을 세웠다. 이러한 업적을 높게 평가한 조정에서 여러번 벼슬을 내렸으나 

사양하고 후진 양성에 힘쓰며 학문을 토론 하였다. 사 후 창의공신(倡義功臣)의 휘호를 받았다.


서당의 규모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좌측에 2칸 온돌방을 두고 우측에 2칸 마루를 

두었는데 전반적으로 소박하게 건물을 꾸몄다.


문은 잠겨져 있어 밖으로 밖에 볼수 없었다


아직은 조성된지 얼마 되지 않아 찾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다


☞ 8월 1일 혼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