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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서원_향교

( 영천 여행 ) 산남(창)의진,용계서원,생육신 이경은 제단,부조묘,용산정사

空空(공공) 2017. 11. 9.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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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댐과 망향공원을 둘러 보고

당초 생각했던 용계서원을 찾아 나섰다

길을 잘못 들었는지 지도상으로는

가까운길인데 남은 거리가 많음을

표시하길래 다시 한번 지도를 봤다..

 

역시나 들어 가는길을 지나쳐 왔다

그래서 진행방향으로 호수를 빙둘러

가니 남은길이 멀수밖에 ㅋ

차를 돌려 다시 찾아 나섰다

 

가는길에 유적지들이 많이 보여 급한 걸음도 아니라서 차를 세우고 하나 하나 돌아 보았다

이 지역은 예로부터 또 충신,애국 지사가 많이 나신곳인 모양이다

그 이유를 나중에 짐작할수 있는곳을 발견하고 "역시"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산남의진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산남의진)

 1906년 경상북도 영천(永川)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던 항일의병부대.

 자세한 내용은 민족문화대백과 사전의 관련 항목을 링크한다

 산남의진

 

산남의진은 정환기,정용직 부자에 의해 조직되었고 이 비는박한종,조상환,최치환,전응팔,강봉학

애국지사의 강력한 대일 무장 투쟁을 한것을 기리는 비다

조선시대 유학자 정삼휴공의 묘소

이 다리를 건넌게 길을 잘못 들은 이유 ㅋ

송암정

이 일대가 영일 정씨 문중인데 그 문중중의 누정인듯....문이 잠겨 있고 오래 관리가 안된듯 보였다

정규식 애국 지사 추모비

명암 이태일 선생 항일 척장비

용계서원

경은 이맹전(1392∼1480)의 학덕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은 서원이다. 

이맹전은 조선 단종(재위 1452∼1455)을 위하여 수절한 생육신의 한분으로,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의 왕위를 탐내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을 닦으며 일생을 보냈다. 

정조 6년(1782)에 왕명으로 토곡동에 건립된 용계서원은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노항동으로 옮겨 서당으로 사용되다가, 1976년 영천댐 건설로 인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을 올린 누각건물이다.

생육신 이경은 선생 제단

생육신 이경은 선생 부조묘

부조묘(不祧廟)란 불천위(不遷位)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둔 사당을 말하며, 본래 4대가 넘는 조상의 신주는 사당에서 꺼내 묻어야 하지만 나라에 공훈이 있는 사람의 신위는 왕의 허락으로 옮기지 않아도 되는 불천지위(不遷之位)가 된다. 따라서 불천지위가 된 대상은 사당에 계속 두면서 기제사를 지낼 수 있다.

바로 앞 개울을 사이에 두고는 용산 정사가 있다

(용산정사)

구한말 대학자이며 애국지사인 명암 이태일 선생이 후진을 양성하면서 끊임없이 강론을

하던 학당

 

이곳에 있으니 정말 충절과 항일의 기운이 느껴 지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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