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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

( 대전 여행 ) 우암사적공원

空空(공공) 2023. 3. 20.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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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동구의 우암사적공원은 순전히 지도를 보고 찾아간 곳이다

우암 송시열 선생이 거주했던 송자고택의 실망감을 뒤로 하고 택시로 이동을 했다 


여기는 여늬 사적지와 마찬가지로 정문이 있었는데 2021년에 승용차가 정문으로

돌진하는 사고가 일어나 반파 된 것을 중수하지 않고 정문을 철거해 버렸다 한다

그래서 개방형 공원이 되었다




▶ 우암사적공원

 조선 후기 대유학자인 우암 송시열(1607~1689) 선생이 학문을 닦던 곳으로 

1991년부터 1997년까지 1만 6천여 평에 장판각, 전시관, 서원 등 16동의 건물을 복원해 

사적공원으로 새롭게 탄생한 곳이다

선생이 말년에 제자를 가르치고 학문에 정진하던 남간정사, 건축미가 뛰어난 기국정

송시열 문집인 송자대전판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주요 시설물로 모든 괴로움을 참아야 한다는 뜻의 인함각(忍含閣), 

좌측에는 마음을 밝고 맑게 쓰라는 뜻을 담은 명숙각(明淑閣), 

정면에는 마음을 곧게 쓰라는 뜻의 강당인 이직당(以直堂)이 자리를 잡고 있고. 

 뒤편 역시 매사 심사숙고하여 결정하라는 뜻의 심결재(審決齋)와 선현의 가르침을 굳게 

지키라는 견뢰재(堅牢齋)가 있다

기국정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자 정파 노론의 영수였던 우암 송시열이 소제동에 건립했던 건물이다.

소제호가 매몰되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주변에 구기자와 국화가 무성하여 구기자의 '기'자와 국화의 '국'자를 따서 기국정이라 이름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간결하고 단순하다

▶ 남간정사

 남간정사(南澗精舍) / 대전광역시 동구 충정로 53 

 대전시 유형문화재 제4호인 남간정사는 조선후기 대유학자 송시열이 학문을 닦던 곳으로 

 낮은 야산 기슭 숲이 우거진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는 남간정사는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우암 송시열 (1607∼1689)이 지은 곳으로 많은 제자를 기르고 그의 학문을 대성한 유서 깊은 곳이다.

 건물 앞에는 잘 가꾸어진 넓은 연못이 있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 

 남간정사 오른쪽에는 일제강점기에 소제동에서 옮겨 지은 기국정이, 뒤편 언덕에는 

 후대에 지은 사당인 남간사가 있다. 

 남간정사는 계곡에 있는 샘으로부터 내려오는 물이 건물의 대청 밑을 통해 연못으로 

 흘러가게 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정원조경사에 있어 독특한 경지를 이루게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암 선생이 직접 심었다는 배롱나무

남간사

남간정사 후면에 있는 사우

대전광역시에서 53,120㎡의 부지에 110억 원의 사업비로 1991년에서 1997년까지

사업을 추진하여 1998년에 개장하였다




▶ 송자대전판

 송자대전판(宋子大全板) 이 목판은 우암 송시열선생의 문집과 연보 등을 모아 만든 

『송자대전』의 목판으로 총 11,023판이다. 

 송시열선생은 김장생의 문하생으로 힘 있고 논리적인 문장과 서체에 뛰어났고 평생 

 주자학 연구에 몰두하여 율곡 이이의 학통을 잇는 기호학파의 주류였다. 

 송자대전목판은 순조19년에 장판각을 지어 보관하였으나 1907년에 전쟁으로 인한 화재로 

 소실되어 1929년 선생의 후손과 유림들이 다시 간행하였고 이때 〈송서습유〉4책과 

 〈속습유〉2책을 함께 간행함으로써 〈송자대전〉은 총 108책에 달하게 되었다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되는 것은 바람직하나 많은 돈을 들여 지은 사적지인만큼

다양한 활용이 있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이 들었다

☞ 2월 26일 아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