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짐은 많을수록 불편할뿐 (空手來空手去) :: (밀양 여행 )친일작곡가 박시춘 생가,무봉사


영남루를 돌아 보고 마지막 돌아가는길에 작곡가 빅시춘 생가와 무봉사를 보고 밀양 여행을 마무리 하였다

박시춘( 1913~1996 )은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든 가요계 대표적인 친일행위자이다.


〈고향초〉, 〈가거라 삼팔선〉, 〈신라의 달밤〉, 〈비 내리는 고모령〉, 〈낭랑 십팔세〉, 신세영이 부른 〈전선야곡〉, 

〈전우여 잘 자라〉,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 〈럭키 서울〉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했고

약 3천여 곡의 노래와 악상을 남겼으나 젊은시절 친일 가요와 혈서 지원을 하는등 대표적인 가요게 친일인으로

역사는 기록할것이다.


가요박물관을 짓겠다는 이야기가 있엇으니 친일 논란으로 흐지부지 되었고 생가도 보존 여부가 불투명하다



박시춘 생가 반대편으로 올라가면 무봉사가 나온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通度寺)의 말사이다. 

773년(혜공왕 9)법조(法照)가 현재의 영남루 자리에 있었던 영남사(嶺南寺)를 순례하다가 큰 봉황새가 이곳으로 

날아와 앉으므로, 상서로운 성지라 생각하고 창건하였다.

혹은 고려의 고승 범률국사가 이 절에서 하안거를 하면서 봉황이 춤추는 형국이기 때문에 절 이름을 무봉사로 
하였다고도 한다. 그래서 지금의 삼문동 지역에서 봉황이 알을 낳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밤나무를 심어 가려 
주었으며, 무봉사에서 아침과 저녁으로 종소리를 울려 봉황을 날게 하였다고 한다.
1359년(공민왕 8)영남사가 화재로 소실되자 무봉암이라 하였던 이 절을 무봉사로 승격시켰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5년혜징(慧澄)이 중건하고, 1628년(인조 6)경의(敬儀)가 중창하였다.
 1899년(광무 3)경봉(慶蓬)이 중건하고, 1942년에 중수, 증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 삼성각·종루·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 안에는 보물 제493호로 지정된 
무봉사석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


무봉사로 올라가는길..5분이면 된다

무봉사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 493호

신라 혜공왕 9년(733)에 법조가 영남사의 부속암자로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무봉사의 대웅전에 모셔진 높이 0.97m의 불상이다. 

네모진 얼굴에 가는 눈과 입, 넓적한 코, 짧은 목 등이 다소 평판적으로 표현되기는 했으나 단정한 인상을 풍긴다. 어깨는 넓고 둥근 편으로 가슴이 다소 움츠러들어 보인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너무 두꺼워서 옷주름과 신체의 굴곡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는 2줄의 볼록한 선으로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구분하고, 그 안에 덩굴무늬와 연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광배의 바깥부분에는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광배의 앞면에 5구의 작은 부처를 새겼으며, 뒷면에는 연꽃무늬 대좌(臺座) 위에 앉아 있는 약사여래를 조각하였다. 광배 뒷면에 불상이 새겨진 표현은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36호)과 같은 것으로 드문 예이다.

단정하고 양감있는 신체표현, 간략해진 옷주름, 화려하고 복잡해진 광배의 표현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보인다   (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인용 )



밀양 여행이 이렇게해서 끝났다.

유익했던 여행이었으며 한번 더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햇다.

밀양은 선비의 고장이며 항일의 고장이었다.


7월 6일 아내,친지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남 밀양시 내일동 37 | 무봉사
도움말 Daum 지도
Posted by 삶.. 공수래공수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BlogIcon 청결원 2019.09.28 07: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거운 주말 잘 보내세요~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3. BlogIcon kangdante 2019.09.28 07: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석조여래좌상의 온화한 자태가
    시선을 잠시 멈추게 하네요
    여유로운 주말보내세요.. ^^

  4. BlogIcon 상식체온 2019.09.28 09: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의 역사입니다.

    독일과 일본의 차이.

    과거 바람직하지 않은 역사를 후대 사람들에게 교육의 장으로 삼아 다시는 그러한 부끄러운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고 실천하느냐의 차이겠죠.

    오늘 대문에 걸린 제목과 일부 글을 읽고, 문뜩 떠올라 몇자 적어 봅니다.

  5. BlogIcon 참교육 2019.09.28 09: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늘이 준 재주를 왜놈들의 비위나 맞추는 인간들....
    아직도 곳곳에 그런 인간들이 숨어 있습니다.

  6. 2019.09.28 1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BlogIcon 휴식같은 친구 2019.09.28 1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친일행위만 아니면 국민적 추앙을 받을것인데 아쉽군요.
    이런분들 보면 가끔 그시대에 내가 있었다면 난 어땠을까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8. BlogIcon FranklinLee 2019.09.28 10: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친일 행위를 했던 작곡가 군요...
    그 자식들은 그 친일 행위로 번 돈으로 잘 살고 있겠죠?? ㅂㄷㅂㄷ하네요..ㅜㅜ

  9. BlogIcon 코치J 2019.09.28 11: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친일의 뿌리를 못뽑은게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ㅠ

  10. BlogIcon 드림 사랑 2019.09.28 15: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알던몇곡이 이분의 손에서 만들어진곡이였군요

  11. BlogIcon 후미카와 2019.09.28 17: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상에 모자이크.ㅋㅋㅋ 빵터졌어요 ㅋ

  12. BlogIcon 내로라하다 2019.09.28 17: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일의 고장에서 친일의 행적을 찾고 오셨군요. 모자이크라니 대단하십니다 ㅋㅋ 얼굴조차 내보이지 않으시겠단 뜻인가요? ㄷㄷ

  13. BlogIcon 문moon 2019.09.28 2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밀양여행을 마무리 하셨군요.
    박시춘이 친일행적을 했다는건 몰랐네요.
    오래된 무봉사에 대해서도 알고 갑니다. ^^
    즐거운 주말 되세요~

  14. BlogIcon 작크와콩나무 2019.09.28 21: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보았습니다.^^

  15. BlogIcon 오렌지훈 2019.09.28 21: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보고 공감하고 갑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16. BlogIcon 시크릿리치 2019.09.28 22: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뜻깊은 곳이네요 ㅎ
    저도 다음에 가봐야겠네요 ^^

  17. BlogIcon 버블프라이스 2019.09.29 02: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중에라도 밀양 여행을 가게되면 꼭 참고해야겟어요^^

  18. BlogIcon 널알려줘 2019.09.29 06: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라에 해가되는일을 한사람들은 역사에서도
    꼭 심판해야합니다!

  19. BlogIcon Bliss :) 2019.09.29 06: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헐... 엄청 유명한 곡들이 많은데 친일 작곡가의 곡이었네요ㅠㅠ 조각상에 모자이크하신 센스^^;;ㅎㅎㅎ에 감탄했습니다. 친일행적을 했는데도 독립운동가로 기록되는 일까지 있던데ㅠㅠ 친일파의 뿌리를 지금이라도 다 뽑아내는 게 정말 필요한 듯해요. 무봉사 뷰가 정말 좋네요. 도심과 아주 먼 곳에 있지는 않은가 봐요. 편안한 주말 보내시길요^^

  20. BlogIcon 草阿(초아) 2019.09.30 21: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시춘 생가에는 들려보았지만,
    다른 일정이 빠뜻하여 무봉사는 통과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건국초기에 친일파들을 색출해내지 않고
    그대로 둔게 화근이 되었지요.

    늦었지만, 밝혀내어 응징함이 마땅하다 생각합니다.

  21. BlogIcon Jajune+ 2019.10.03 00: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 음악교과서 편찬에 관여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일음악가라고 하더군요. 친일청산이 필요하지 않은 분야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