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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산_사찰

( 백제 유적 탐방 ) 낙화암 ( 백화정 ) ,고란사

空空(공공) 2021. 11. 26.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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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에 의해 쓰여 잘못 알려져 있는 것 중의 하나 

백제가 멸망할 때 의자왕의 3천 궁녀가 몸을 던졌다고 전해 내려져 오는 낙화암을 찾았다

수십 명이 될지언정 3천은 분명 아닐 것이다

백제보다 큰 나라였던 조선도 궁녀가 최대였을 때 천명을 넘지 않았었다 

궁녀의 수 : 왕실 구성원이 늘면 궁녀도 늘었고, 왕실 구성원이 줄면 궁녀도 감축되었다. 

 
연산군 대에는 1000명이 넘었다고도 하지만 이것은 과장된 듯하다. 
 
인조 대에는 230명 정도, 영조 대에는 600명 정도였고, 18세기의 성호 이익은 당시 궁녀가 684명이라고 하였다. 
 
조선 말 갑오개혁 때의 궁궐제도 개혁안에 따르면 ‘상궁 이하는 필요한 때에 따라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한다. 
 
대전 시녀는 100명, 대비전 시녀는 100명, 중궁전 시녀는 100명, 세자궁 시녀는 60명, 세자빈궁 시녀는 40명, 
 
세손궁 시녀는 50명, 세손 빈궁 시녀는 30명이다’라고 하였다. 
 
합 480명인데 여기에는 후궁 처소의 궁녀가 빠져 있다.



출처: https://xuronghao.tistory.com/2133 [인생의 짐은 많을수록 불편할뿐 (空手來空手去)]

 

낙화암, 고란사는 이전 2016년에도 올린 적이 있다

https://xuronghao.tistory.com/740

 

( 부여 여행 ) 백마강,황포돛배, 고란사,낙화암

백마강 그러면 우리 국민이라면 가보지 않았어도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강이다 또 어느 정도 나이가 드신분들은 배호의 노래 "추억의 백마강"이나 허민의 "백마강"이란 노래로 익숙한곳이기도

xuronghao.tistory.com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낙화암 (落花岩)

 충남 부여 백마강변의 부소산 서쪽 낭떠러지 바위를 가리켜 낙화암이라 부른다.

 낙화암은 백제 의자왕(재위 641∼660) 때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일시에 수륙양면으로 쳐들어와 왕성(王城)에 육박하자, 궁녀들이 굴욕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이곳에 와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깊은 물에 몸을 던진 곳이라 한다. 

『삼국유사』, 『백제고기』에 의하면 이곳의 원래 이름은 타사암이었다고 하는데, 뒷날에 와서 궁녀들을 꽃에 

비유하여 낙화암이라고 고쳐 불렀다.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백화정 (百花亭)

 백제 멸망 당시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궁녀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1929년에 지은 정자이다.

 ‘백화정’이란 이름은 중국의 시인인 소동파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부소산성 북쪽 백마강변의 험준한 바위 위에 자리 잡고 있다.

 건물 구조는 육각형 평면을 가진 육모지붕으로 꾸몄다. 
 마루 바닥 주변에는 간단한 난간을 설치하였고, 천장에는 여러 가지 연꽃무늬를 그려 놓았다.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고란사 (皐蘭寺)

 부소산 북쪽 기슭의 백마강 좌안(左岸)에 자리한 고란사는 정면 7칸, 측면 4칸의 법당과 요사(窯舍)의 건물로 이루어진 조그마한 사찰이다. 

 이 사찰은 불적(佛跡)보다는 고란초에 의해 널리 알려져 있는데 법당 뒤편에서 나오는 약수와 함께 이 사찰의 명물을  이루고 있다. 

 고란사는 백제 멸망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전설이 저하나 정확한 유적이나 유물은 없고, 현재의 고란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는데 현 사찰 건물(寺刹建物)은 은산(恩山) 승각사(乘角寺)를 이건(移建) 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세상 편하게 잠을 자는 고양이

여기 약수를 마시면 젊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나라가 없으면 정말 비참하다

강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

☞ 11월 5일 구수산도서관 문화탐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