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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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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여정남"공원-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민주화 열사

空空(공공) 2019. 10. 26.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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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셨더라면 벌써 나라를 움직이는 정치 지도자이셨을것이다.

1944년생이니 올해 우리나이로 76세..훌륭한 정치인으로 존경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꽃다운 31세의 나이로 사형에 처해진 민청학련 사건의 억울한 희생자 "여정남" 민주열사 이야기다.


그는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어 대법원 판결 18시간만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억울하게 죽었다


민청학련 사건에 대한 평가는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회(International Commission of Jurists)는 

인혁당 판결(대법원 전원재판부, 재판장 민복기)이 난 1975년 4월 8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고,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는 "사형수 8명에게 공공연히 씌운 증거가 의심스러운 것으로 판단한다"라는 강력한 

항의성명을 발표했다한 것으로도 알수 있고

1995년 MBC가 사법제도 1백주년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판사 315명에게 실시한 〈근대 사법제도 

100주년 기념 설문조사〉에 인혁당 사건 재판이 ‘우리나라 사법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재판’이었다고 응답함으로 

이 사건이 정상적이지 못했음을 알수 있다.


2005년부터 재조사에 들어가 2009년 9월 관련자들에 무죄가 선고되었다.


바르게 살다간 남자 여정남은 대구 경북대 학생회장 출신이다

경북대 총학생회 건물앞에 여정남을 기리는 "여정남 공원"이 있다


그는 1964년 6월 한일회담 반대투쟁 주도로 제적되었으며 군입대와 복학을 거쳐 필화 사건과 유신 반대 포고령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186CM의 훤칠한 키로 일설에는 박정희가 사윗감으로 지목해자격을 심사하기도 했다 한다.


벼르고 벼르다 경북대학내에 있는 여정남공원을 찾았다.





말로만 듣는 인물이지만 살아게셔 정치를 했다면 지지했을 훌륭한  분이다


☞ 6월 30일 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