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짐은 많을수록 불편할뿐 (空手來空手去) :: '사야가' 태그의 글 목록

구 근교 청도 방향으로 달성 가창면 우록리에는 "징비록" 드라마로 재조명된

임진왜란 당시 3천명의 병력을 이끌고 투항,조선으로 귀화한 일본인 장수 사야가

( 한국명: 김충선) 를 모신 서원이 있다..그 곳이 녹동 서원이다

 그리고 그 서원 옆에 그의 일대기와 임진왜란등 한일 관련 역사를 정리해 놓은

2012년 개관한 한일우호관이 있다

 

명나라의 쇠퇴로 귀화하였던 두사충과 달리 김충선의 귀화 이유는 명확치 않다

임진왜란당시 부산 상륙때

"금사출무명(今師出無名) 도욕화린국(徒欲禍隣國) 유사이종지비부 (有死耳從之非夫)"

금번에 일본이 군사를 일으켜 전쟁을 하는 것은 명분이 없고 가까운 이웃나라에

화만 끼칠 뿐이다.나는 죽을 수는 있지만 명령에 따를 수 없다.

라는 말을 남겼지만 내가 생각할때 복잡한 그의 속내는 알길이 없다

 

김충선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인조때 이괄의 난에도 혁혁한 공을

세운바 있고 이곳 우록에서 그 생을 마쳤다

 

녹동서원은

모하당 김충선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향도(鄕道) 유림(儒林)들의 공의(公議)로 상소(上疏)하여

정조(正祖) 15년 신해(辛亥)(1791)에 건립하였다.
그 후 고종(高宗) 8년 신미(辛未)(1871)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毁撤)되었다가

1914년 다시 복원하였으나 후손이 늘어남에 따라 규모가 협소하여 국고의 지원을 받아 1972년

지금의 장소로 이축과 동시에 증축하였다.  ( 한일 우호관 사이트에서 인용) 

 

 

 

 

 

 

 

 

 

 

 

 

 

 

 

 

 

김충선의 묘는 300m 산을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는 길은 잘 되어 있었으나 후손들외 묘소는 잘 안 찾는듯 하다

 

 

 

 

 

 

 

장군이 남긴 4편의 시중에서 남풍유감이란 시가 있다

그 시의 내용을 잘 보면 그의 번뇌를 조금은 알수 있을듯도 하다

 

- 남풍유감시취(南風有感時吹) 개호입방내(開戶入房內) 조연유성거(條然有聲去) 소식무인래(消息無人來)

남풍이 건덧불어 문을 열고 방에 드니 행여 고향 소식 가져올까

남의 퇴침 급히 일어나 앉으니 거어인 광풍인제 지나가는 바람인제

홀연유성(忽然有聲) 홀불견(忽不見)이라 허히탄식하고 성그러이 앉으시니 이내 생전의 골육(骨肉至親)
소식을 알길이 없어 슬프하노라

 

명분과 혈육의 정 사이에서 그는 수많은 날을 회한으로 보냈으리라..

 

 

 

Posted by 삶.. 공수래공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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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청결원 2015.09.21 07: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충선 장군을 알게 되었네요..

  2. BlogIcon 봉리브르 2015.09.21 07: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분에 대해서는 드라마 징비록을 보면서
    좀더 알아보고 싶었었는데 그만 잊고 있었네요.
    귀화라는 것이 참 쉽지 않은 일인데다
    그것도 적국의 장수로서 귀화한 삶이 어떠했을까
    여느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가늠할 길이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뜻깊은 포스팅 덕분에
    김충선 장군에 대해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감사합니다.


    • BlogIcon 삶.. 공수래공수거 2015.09.21 11: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추정되는 귀화 이유를 알것 같기도 한데
      막연한 추측입니다^^

      그의 후손들이 지금 7,500명 정도 된다고 하는군요
      어쨌거나 인간의 기본적인 고뇌에서 고민했을듯 합니다

  3. BlogIcon 지후니74 2015.09.21 08: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곳이네요.
    저도 징비록 드라마를 통해 김충선이라는 인물을 알 수 있었습니다.

  4. BlogIcon 백순주 2015.09.21 08: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쓸쓸하군요!

  5. BlogIcon 참교육 2015.09.21 08: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몰랐습니다.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은 역사가 참 많습니다. 지역사가 학습교재가 되어어야 할 이유입니다.

  6. BlogIcon The 노라 2015.09.21 10: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에 남은 조선인들 대부분은 끌려갔던 사람들이고, 김충선하고 몇 장수들은 조선에 출병왔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귀화를 했고...
    일본쪽에는 사야가라는 장수에 대한 기록이 확실하지 않다고 읽은 것 같아요. 조선으로 귀화를 해서 밉보여서 기록이 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요. ^^;;

  7. BlogIcon 청춘햇살 2015.09.21 11: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창에 자주 갔었는데..
    다음에는 이곳에도 들려봐야겠어요..ㅠㅠ

  8. BlogIcon 耽讀 2015.09.21 11: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각해보니 경북은 우리나라 성리학 뿌리입니다. 우리나라 정신문명을 이끌어온 경북이 앞으로도 중심지가 되면 좋겠습니다.

  9. BlogIcon 새 날 2015.09.21 15: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의 안보법 강행을 보니 과거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네요

  10. BlogIcon 『방쌤』 2015.09.21 16: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도 오르는 길이 잘 되어있어서 다행이네요
    시간이 지날수록 찾는 사람들도, 감사하는 마음도 더 많아지고 커졌으면 좋겠네요^^

  11. BlogIcon 금정산 2015.09.21 17: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이곳에 댕겨 왔는데 ㅎㅎ
    포스팅을 해야하는데 미루고 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12. BlogIcon 개인이 2015.09.21 19: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왠지 모르게 쓸쓸함이 묻어나네요. 이전에 한장군에 대한 정보도 처음 들었던 내용인데,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

  13. BlogIcon 유라준 2015.09.21 21: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시 어떤 심정이었는지 궁금하네요.
    남긴 시조를 보면 가족을 언급한 것들도 두어편 되는 것 같던데...

  14. BlogIcon 나이스블루 2015.09.22 00: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징비록에서 다루었던 김충선을 자세히 알 수 있는 공간이군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15. BlogIcon 까칠양파 2015.09.22 11: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 대단한 분이네요.
    역사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또 새로운 역사를 배우고 갑니다.
    저도 묘소까지 올라가서 인사를 드려야겠네요.ㅎㅎ

대구 시내 중심지에 있는 경상감영공원..

그 이름이 약간은 낯설다

 

내 기억속에는 중앙공원이란 이름이 더 또렷하다

중앙공원이란 이름에서의 추억이 더 많다

 

경상감영공원으로 명칭이 변경된뒤 실로 오랫만에 찾았다

사실 크게 볼것은 없다

지금도 서울의 파고다 공원처럼 도심 한가운데 어르신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나는 어릴때 이곳에서 사생대회를 한 기억이 있다^^

 

이곳에서는 5월 9일부터 (7월,8월 제외) 10월 17일까지 매주 토요일14시부터 16시까지

수문장교대, 병마절도사 행차를 비롯해 최근 징비록에서 언급된 귀순한 일본 장수 사야가의 행차및 귀순,

전통 무예시범을 보인다

( 마침 찾았을때가 오전이어서 보지는 못했다)

( 경삼 감영의 역사)

15세기 전반에 조선의 국경이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확립되고 전국을 8도의 체재로 갗춘 후에

경삼감영을경주에 두었다가 중종14년(1519) 낙동강을 경계로 경상우도,경상좌도로 나누어

각각 상주와 경주에 감영을 두었으나  다시 선조26년(1593) 10월2도를 하나로 합쳤다.

선조29년(1596) 감영을 대구 달성에 두었다가 그 후에 전란의 피해가 복구되지 못해 감영을

안동으로 옮긴바 있으나 선조34년(1601) 체찰사 이덕형의 장계로

경상도 중앙인 대구부로 감영을 다시 옮기고 한말 1910년까지 존속하였다

이를 계기로 대구부는 경상도의 정치,문화,경제적 중심지가 되어 조선말까지 계속 발전하여 왔다

1601년부터 1910년까지 경싱감사로 부임한 관찰사의 수는 모두 253명이다 

                                                                    ( 경삼감영공원 해설 팜프렛에서)

 

 

아래는 경상감영의 관찰사가 집무를 하던곳 산화당이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

겹처마를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건물이다

 

 

 

 

아래는 경삼 감영 관찰사 처소로 사용된 징청각이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2호) 

 

 

 

 

 

 

 

 

 

비림..백성들이 관찰사들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로 각지에 흩어져 있던것을 모아 놓았다

 

  

 

 

 

이 공원에 앉아서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던 때가 어렴풋이

기억에 떠오른다...

Posted by 삶.. 공수래공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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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뉴론♥ 2015.05.30 06: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구 근대로 여행지 모습 잘보고 갑니다.

  2. BlogIcon 耽讀 2015.05.30 07: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와 현재가 만나는 대구입니다.
    즐거운 주말보내십시오.

  3. BlogIcon 금정산 2015.05.30 08: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상감영공원 저도 가봤네요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4. BlogIcon 참교육 2015.05.30 09: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계급사회의 잔영이네요.
    저곳에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수탈당하고 고문당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그 계급이 지금은 계층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라야겠지요.

  5. BlogIcon The 노라 2015.05.30 1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구가 예전에는 관찰사의 감영으로 그 이후에는 경북의 도청소재지로 꽤 오랜 지역 중심지로 자리잡았군요. 대구가 직할시가 된지 오래니까 지금 경북 도청소재지가 다른 곳이겠죠?
    대구 역사가 오성과 한음의 이덕형과도 연결이 되네요. 저랑은 관계도 없는 이덕형인데 왜 괜히 신났는지. ㅋㅋ
    어릴 때 이 공원에 앉아 그림도 그리셨다니... 한 곳에서 터를 잡고 오래 산 다는 것은 많은 추억이 있어 좋은 것 같아요. ^^*

  6. BlogIcon 새 날 2015.05.30 12: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곳도 근대역사의 흔적이 어린 곳이군요. 근대 역사 관광 벨트 중 하나에 해당하겠군요.

  7. BlogIcon 소스킹 2015.05.30 15: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공원 지나가면서 봤었는데 안은 이렇게 넓었군요. 전에 외국인 친구가 놀러왔을 때 부근을 지났었거든요. 담엔 안쪽으로도 들어가봐야겠어요.

  8. BlogIcon 유라준 2015.05.30 2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상 감영의 역사가 오래되었네요.
    단청이며 기림비며 복원이 잘 된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사생대회를 하면, 자연스럽게 역사도 접할 수 있고 여러 모로 좋은 것 같네요.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9. BlogIcon 지후니74 2015.05.31 12: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장소네요...

  10. BlogIcon 언젠간날고말거야 2015.05.31 18: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봄에 홍매화가 참 예뻤던 기억이 있네요.
    바로 옆에 대구근대역사관도 재밌더라고요 ^^*

  11. BlogIcon écrivain inconnu 2015.06.01 00: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구는 경산 근처만 갔다온 게 다인데 이런 공간이 있었군요
    옛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건 큰 즐거움 중 하나인 듯 싶습니다

  12. BlogIcon 봉리브르 2015.06.01 07: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옛 모습을 그대로 잘 보존해 두었나 봅니다.
    산 역사의 장이네요..

  13. BlogIcon 『방쌤』 2015.06.01 10: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년에 근대골목투어 갔다가 들렀던 기억이 나네요
    해가 지고도 참 좋더라구요^^

  14. BlogIcon 까칠양파 2015.06.01 22: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일장이라, 저도 생각이 나네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상을 받았는데, 그게 백일장 금상이었거든요.
    유치원때 받은거라서, 아마도 모든 아이들에게 다 준거 같아요.ㅎㅎㅎ

    근데 요즘 대구 엄청 덥다는데, 사진만 봤는데도 그 더위가 느껴지는거 같아요.
    쨍한 하늘인데, 대구라 그런지 덥게 느껴졌나봐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