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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산_사찰

공주 계룡산 갑사

空空(공공) 2022. 10. 20.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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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 후 집으로 가기 전에 한 군데 들렀다 가자고 한다

계룡산에 갑사를 안 가 봤다고 하니 그곳을 가 보기로 했다

난 수 십년 전 그 언저리까지만 다녀온 기억이 있다

 

계룡산 국립공원

계곡이 죽 이어진다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괴목

해마다 정월 초 3일이면 갑사에서 주차장까지 대신제 행렬이 장관이라 한다.

괴목 앞에 이르면 불교와 민간신앙이 어우러져 마을의 안녕과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는

괴목 대신제를 지낸다. 

봄에는 황매화 축제가 열린다

다람쥐도 만나고

고목들이 세월의 흐름을 이야기해 준다

 

우리나라 사찰중에 외자로 불리는 곳은 아마 이곳 한 곳뿐인 것으로 안다

☞ 갑사

백제 때 창건되어 화엄종 10대 종찰 중에 하나가 된 갑사는 마곡사의 말사이다. 

으뜸 또한 첫째란 뜻의 ‘갑사’는 18세기말 산 이름을 따서 계룡갑사로 부르고 있고, 

경내에는 15동의 불전과 승당, 부속, 전각들이 있으며 주변 산골짝 여러 곳에 

산내 암자를 두고 있다. 

갑사는 420년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되었으며(천진보탑), 백제 위덕왕 3년(556) 혜명 대사가 

천불전과 보광명전, 대광명전을 신축하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통일신라 의상대사가 중수하여 화엄십찰(화엄대학지소/국중대찰)로 발전하였다.

보물은 갑사 철당간 및 지주(보물 제 256호), 갑사 부도(보물 제257호), 

갑사 동종(보물 제478호), 월인석보 판목(보물 제582호) 등이 있다.

 

☞ 갑사 대웅전

갑사 대웅전은 절의 중심에 있는 법당으로 원래는 현재 대적전이 있는 근처에 

있던 것으로 보이며, 다시 지을 때 이곳에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앞면 5칸·옆면 4칸으로 1층이며, 옆면이 사람인(人)자 모양으로 맞배지붕 건물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이다. 

가운데 3칸은 기둥 간격을 양 끝칸끝만 보다 넓게 잡아 가운데는 공포를 2개씩, 끝 칸에는 

1개씩 배치하였다. 내부는 우물천장으로 되어있고, 불단을 만들어 석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그 위에는 화려한 닫집을 설치하였다.

갑사 대웅전은 조선시대 중기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건물이다.



☞ 보물 제257호 갑사 부도

갑사 부도(浮屠)는 전체 높이가 205cm로 고려시대의 것으로 전하며 통일신라시대의 

부도 양식을 겸비하고 있다. 

본래의 위치는 갑사의 중사자암에 위치했던 것을 현 대적전 앞으로 이전하였다고 전한다.

대석(臺石), 탑신(塔身), 옥개(屋蓋)와 상륜부(上輪部)를 갖춘 팔각 원당형(八角圓堂形)으로 

상륜부는 오래전에 결실되었다고 전한다. 

전체가 8각으로 이루어진 모습이며 3단의 기단(基壇) 위에 탑신(塔身)을 올리고 

지붕돌을 얹은 형태이다. 

높직한 바닥돌 위에 올려진 기단은 아래·가운데·윗받침돌로 나뉘는데 

특이하게도 아래층이 넓고 위층으로 갈수록 차츰 줄어든다. 



☞보물 제256호 갑사 철당간 및 지주

사찰에 행사가 있을 때 사찰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갑사(甲寺) 동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이 당간은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네 면에 구름무늬를 새긴 기단(基壇) 위로 철당간을 높게 세우고 양 옆에 

당간지주를 세워 지탱하였다. 

철당간은 지름 50cm의 철통 28개를 연결하였던 것이나, 고종 35년(1899) 폭풍우에 벼락을 맞아 

4절이 부러졌다고 하며 현재는 24절만 남아 있다. 

당간을 지탱하는 두 개의 지주는 동·서로 마주 서 있으며 꾸밈이 없는 소박한 모습이다. 

기둥머리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안쪽에 구멍을 뚫어서 단단하게 고정시키고 있다. 

기둥머리의 곡선과 기단부의 단순한 조각이 잘 어우러져 소박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준다.

통일신라 전기인 문무왕 20년(680)에 세워진 것이라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고, 

양식상으로 보아 통일신라 중기의 양식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앗 아직 황매화가 남아 있다

 

황매화 활짝 필 때 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

☞ 9월 18일 아내,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