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짐은 많을수록 불편할뿐 (空手來空手去) :: '태실' 태그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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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4.24 세조의 잔인함이 느껴지는 세종대왕자 태실 (32)

전국 최고의 명당 자리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 나라 최대의 태실유적지인 세종대왕자 태실을 찾았다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것 같은데

태실생명문화공원이 조성되면 많이 찾을듯 하다

 

태실은 왕실에서 자손을 출산하면 그 태를 봉안하는 곳을 말한다. 예로부터 태는 태아의 생명력을 부여한 것이라고 인정하여 태아가 출산된 뒤에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다루었다. 민간에서는 땅에 묻는 경우도 있었으나 많은 경우 출산 후 마당을 깨끗이 한 뒤 왕겨에 태를 묻어 몽긋몽긋하에 태운 뒤에 재를 강물에 띄워 보내는 방법으로 처리하였다. 그러나 왕족의 경우에는 국운과 직접 관련이 있다고 여겨 태를 항아리에 담아 전국의 명당에 안치시키는 방법으로 처리하였다. 이때 이를 주관하는 관상감에서 길지로 선정된 명산에 일정한 의식과 절차를 밟아 묻었는데, 이 의식과 절차를 거쳐 완성한 시설을 태실이라 불렀다. 또한 태봉은 태실 가운데 그 태의 주인이 왕으로 즉위할 경우에 격에 맞는 석물을 갖추고 가봉비를 세운 것으로 임금의 태실을 말한다.
19기의 태실은 화강암으로 깎은 조선태실 의궤(儀軌) 형식으로 지하에 석실을 만들고 그 안에 백자로 된 태호(胎壺)를 넣는 형태이다. 태호 속에는 태항(胎缸)과 태주(胎主)의 이름 및 생년월일을 음각한 지석(誌石)을 두었다. 지상에는 기단, 간석, 옥개의 형식을 갖춘 석조물을 안치하는 한편 각왕자의 태실을 가리키는 표석을 세웠다. 태실의 옥개 높이는 25㎝, 지름 1.6m, 둘레 3.2m이며 신석은 높이 60㎝, 지름 1.2m, 둘레 2.4m이다. 기단은 높이 45㎝, 지름 2.2m, 둘레 8.8m이고 태비의 높이는 90㎝, 너비는 35㎝이다.   (VisitKorea 에서 인용)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태봉(胎峰) 정상에 소재하는 세종대왕자태실은 세종대왕의 적서(嫡庶) 18왕자와 원손 단종의 태실 까지 도합 19기로, 그 조성 시기는 조선 세종 20년(1438)에서 24년(1442)사이다. 전체 19기중 14기는 조성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세조(世祖)의 왕위찬탈(王位簒奪)에 반대한 다섯 왕자의 태실은 방형의 연엽대석(蓮葉臺石)을 제외한 석물이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으며, 세조 태실의 경우에는 즉위한 이후 특별히 귀부를 마련하여 가봉비(加封碑)를 세워두었다. 1977년 태실에 대한 정비사업과정에서 분청인화문개(粉靑印花紋蓋), 분청인화문완(粉靑印花紋盌), 평저호(平底壺), 지석(誌石)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재질은 화강암이고, 형식ㆍ구조는 연엽형의 개첨석(蓋簷石, 하단 지름 102cm, 높이 42cm), 구형(球形)의 중동석(中童石, 높이 60cm), 석함(石函)으로 이루어져 있다. 태실 비문에 ‘○○(대)군명태장 황명연호연월일입석(○○(大)君名胎藏 皇明年號年月日立石)’이라고 음각되어 있으며, 세조가봉비의 비문은 멸실되었으나 『실록(實錄)』에 비문이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있어 태를 봉안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김유신의 장태(藏胎)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이후 고려의 왕실에서 태봉안 양식(胎奉安 樣式)이 성립된 후 조선시대까지 그 맥락이 이어진 오랜 전통을 가진 것으로, 태봉(胎峰)에 태를 봉안하기 위한 석물구성은 우리나라에서만 행해졌던 독특하고 독자적인 문화라 할 수 있다. 세종대왕자 태실은 왕과 태자에 대한 태실만을 조성하던 고려시대의 태봉안 양식이 변화하여 왕과 왕비 및 그 자녀의 태실을 조성하기 시작한 조선시대 최초의 왕자태실로 그 의미가 크다. 태실의 조성 및 조성시기에 대해서는 『세종실록』의 기록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으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기록에서 찾아지는 태실 관련 기록에서 언급된 산맥이 연결된 높은 봉우리가 아닌 들판에 홀로 우뚝 솟은 반구형(半球形)의 형태를 한 최적의 입지조건에 자리잡고 있다. 
 세종대왕자 태실은 우리나라에서 왕자태실이 완전하게 군집을 이룬 유일한 곳일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초기의 태실형태 연구에 중요한 자료라는 점, 그리고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교체와 함께 왕실의 태실 조성방식의 변화 양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 경상북도 지정문화재 정보화 시스템에서 인용)

 

 

명당이다 ㅋ

 

 

 

 

 

 

 

 

 

 

 

 

 

 

부관 참시와 더불어 태실조차 없애려한 권력에 눈이 먼 사람들의 야욕의 결과를 그대로 본다

세조의 태실도 있었는데 비문에 글씨가 남아 있지 않다

 

인과응보이리라

Posted by 삶.. 공수래공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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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耽讀 2015.04.24 07: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잔인하지 않았더라면 권력을 찬탈하고 조카를 죽일 수 없었습니다. 세조가 할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를 길을 갔다면 조선을 달라졌을까요?

  2. BlogIcon 봉리브르 2015.04.24 07: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세 태를 모셔놓은 곳도 있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왕위를 놓고는 아버지와 자식도
    목숨을 걸고 투쟁을 불사하는 일이 종종 있으니
    권력에 눈이 멀면 말 그대로 <눈에 뵈는 게> 없어지나 봅니다..

  3. BlogIcon 금정산 2015.04.24 09: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곳에 가봤습니다. 선석사 옆이죠 ㅎㅎ
    잘 보고 갑니다.

  4. BlogIcon 참교육 2015.04.24 1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임금 한사람을 위해 모든 국민이 노예가 되는 군주제.... 지금도 뭐가 달라졌는지 생각해 봅니다.

  5. BlogIcon 늙은도령 2015.04.24 10: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도 조선시대는 왕을 견제하는 힘들이 다양했습니다.
    지금의 권위주의 정부보다 더욱 민주적이었습니다.

  6. BlogIcon 바람 언덕 2015.04.24 10: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조.
    비정한 임금이었지요. 권력에 눈이 멀게 되면 저렇게 됩니다.
    어디 과거 뿐이겠습니까.
    요 근자에 들어 우리 국민들 똑똑히 보고 있잖습니까..
    이게 나라인지, 깡패소굴인지....

  7. BlogIcon The 노라 2015.04.24 11: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같은 말을 하고 싶어요.
    인과응보이니라~!
    그런데 인간이 아니면 이런 말귀를 못알아 듣더라구요. ㅠㅠ

  8. BlogIcon *저녁노을* 2015.04.24 12: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권력이 무엇인지...ㅠ,ㅠ

  9. BlogIcon 새 날 2015.04.24 12: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권력의 속성이 느껴지는 일화로군요. 권력 앞에선 자식이나 형제 피도 눈물도 없으니 현대의 위정자들이 왜 그리도 목을 매려 하는지 이해가 가기도 하는군요.

  10. BlogIcon 지후니74 2015.04.24 12: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조의 업적이 크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세조의 왕위 찬탈은 정당성을 찾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11. BlogIcon Cong Cherry 2015.04.24 13: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나 지금이나 변한게 변하는게 없는가봐요,,,

  12. BlogIcon 『방쌤』 2015.04.24 14: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과응보..
    오늘도 깊이 되새기고 갑니다
    예나 지금이나 참...

  13. BlogIcon 유라준 2015.04.24 21: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유신의 장태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고 하니, 정말 오랜 전통인 것 같네요.

    세조는 권력무상을 느낄만도 한데, 죽기 전에 어떤 심정이었을지가 궁금하네요.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14. BlogIcon 언젠간날고말거야 2015.04.24 21: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치밀하네요. 옛날 사람들이 더 잔인하고 머리도 명석한 것 같습니다.
    그 명석함을 좋은 곳에 쓰면 더 좋을텐데...예나 지금이나...

  15. BlogIcon 릴리밸리 2015.04.25 07: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종의 태실도 있군요.
    태실에도 인간이 야욕을 부렸다니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16. BlogIcon 백향이 2015.07.01 14: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참 아무것도 알지못하고 다녀온듯한 느낌이들어
    부끄럽습니다.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