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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버킷 실천하기/국보 탐방

( 창녕 여행 )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 (昌寧 新羅 眞興王 拓境碑)-국보 제33호

空空(공공) 2020. 6. 12.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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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진흥왕( 540∼576년)은 37년 재위하는 동안 낙동강 서쪽의 가야세력을 완전 병합하였고

한강 하류유역으로 진출해 서해안지역에 교두보를 확보했으며, 동북으로 함경남도 이원지방까지 경략하는 등 

정복적 팽창을 이룩하였다.


이렇게 확대된 영역을 진흥왕이 직접 순수하면서 민심을 살피고 국가에 충성과 절의를 바친 자에 대한 공로의 

포상을 선포하고, 군신이 함께 경하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은 모두 4개인데, 이들은 약칭해 창녕비ㆍ북한산비ㆍ마운령비ㆍ황초령비라고도 한다.


* 순수 : 순수는 원래 천자(天子)가 천하를 돌아다니며 천지산천에 제사하고, 그 지방의 정치와 민심의 동향을 

살피던 고대 중국의 풍습이다.


그중 하나인 창녕의 국보 제33호 진흥왕 척경비를 보고 왔다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 (昌寧 新羅 眞興王 拓境碑)-국보 제33호

지정(등록)일 1962.12.20

소 재 지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28-1번지

시 대         신라 진흥왕 22년( 562)

빛벌가야(지금의 창녕군)를 신라 영토로 편입한 진흥왕이 이곳을 순시하면서 민심을 살핀 후 그 기념으로 세운 

비이다. 

당시 창녕군은 신라가 서쪽으로 진출하는데 있어 마치 부채살의 꼭지와 같은 중요한 길목이었는데, 진흥왕 16년(555) 

신라에 병합되었고, 565년에는 대야주(지금의 합천군)와 합쳐져 비사벌군(比斯伐郡) 또는 비자화군(比自化郡)

으로 불리워지게 되었다.


 비는 목마산성 기슭에 있던 것을 1924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비각안에 모셔 둔 것으로, 자연석의 앞면을 

평평하게 다듬어 비문을 새기고, 그 둘레에 선으로 윤곽을 돌려놓은 모습이다. 다른 순수비와 달리 

‘순수관경(巡狩管境)’이라는 제목이 보이지 않아 척경비(영토 편입을 기념하여 세운 비)라 일컫고 있으나, 

임금을 수행한 신하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순수비에 속한다 할 수 있다. 


 비문은 심하게 닳아 있어 판독하기가 힘든 상태이나, 후반부는 명확히 읽어낼 수 있을 만큼 선명하다. 

다른 순수비의 내용을 참고할 때 대략 진흥왕이 빛벌가야를 점령하여 영토를 확장한 사실과 왕의 통치이념, 

포부 등이 실려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후반부에 당시 왕을 수행하던 신하들의 명단이 직관, 직위, 소속의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어 당시 지방행정조직, 신분제 및 사회조직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비를 세운 시기는 대가야가 멸망하기 1년 전인 신라 진흥왕 22년(561)으로, 이 지역을 가야진출의 발판으로 

삼고자 한 왕의 정치적인 의도가 엿보인다. 또한 진흥왕 당시의 사실을 기록해 놓아『삼국사기』의 내용을 

보완해줌으로써, 이 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이해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 문화재청 국가 문화유산포털에서 인용)


진흥왕 척경비는 창녕의 만옥정 공원안에 있다

내가 지킬꼬양~~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는 국보3호인데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언제 다시 국립 중앙 박물관을 찾으면 볼것이다

☞ 5월 4일 혼자서

▶ 6월 11일 행복 척도 2.5점 ★★☆

- 별일 없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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