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표 사찰중 한곳인 해인사에는 3점의 소중한 국보가 있다.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 되기도 한, 우리가 흔히 팔만 대장경으로 익히 알고 있는 대장경판과 ( 국보 32호 )
그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이고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인 장경판전 ( 국보 52호 ) ,
그리고 동,서 사간판전에 보관 되어 있는 고려 목판 ( 국보 206호) 가 그것이다
해인사에 간다면 누구나 한번은 보고 오게 되지만 해설사 분의 설명을 들으면 더욱 좋다
나는 아쉽게 코로나 땜에 해설은 듣지 못했다
실제로 자세히 볼수 있는건 장경판전이고 대장경판과 고려 목판은 건물 사이로 있다는것만 확인할수 있다
국보 제52호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陜川 海印寺 藏經板殿)
수량/면적 4동
지정(등록)일 1962.12.20
소 재 지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해인사 (치인리)
시 대 조선 성종19년(1488)
가야산 중턱에 자리잡은 해인사는 통일신라 애장왕 3년(802)에 지은 사찰로, 왕후의 병을 부처의 힘으로
치료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이며, 8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법보사찰이라고도 부른다.
장경판전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8만여장의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로, 해인사에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 되었다.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조선 세조 3년(1457)에 크게 다시 지었고
성종 19년(1488)에 학조대사가 왕실의 후원으로 다시 지어 ‘보안당’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산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 임진왜란에도 피해를 입지 않아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광해군 14년(1622)과 인조 2년(1624)에 수리가 있었다.
앞면 15칸·옆면 2칸 크기의 두 건물을 나란히 배치하였는데, 남쪽 건물은 ‘수다라장’이라 하고
북쪽의 건물은 ‘법보전’이라 한다. 서쪽과 동쪽에는 앞면 2칸·옆면 1칸 규모의 작은 서고가 있어서,
전체적으로는 긴 네모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장경판을 보관하는 건물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장식 요소는 두지 않았으며, 통풍을 위하여 창의 크기를 남쪽과 북쪽을 서로 다르게 하고 각 칸마다
창을 내었다.
또한 안쪽 흙바닥 속에 숯과 횟가루,소금을 모래와 함께 차례로 넣음으로써 습도를 조절하도록 하였다.
자연의 조건을 이용하여 설계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점 등으로 인해 대장경판을 지금까지 잘 보존할 수
있었다고 평가 받고 있다.
해인사장경판전은 15세기 건축물로서 세계 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며,
대장경판과 고려각판을 포함하여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문화재청 국가 문화 유산 포털에서 인용 )
주의: 이곳에서 사진 촬영은 가능하나 플래쉬를 사용하면 안된다
남쪽건물 수다라장
북쪽 건물 법보전
이곳은 상시로 관리 하시는 분이 있디
그리고 가까이 들어 가지는 못한다
법보전 예불은 가능한 모양이다
습기가 자연적으로 조절 되도록 하였고 그 기능을 더 원활하게 하려고, 판전의 창문도 격자창 모양으로 하였으며,
수다라전의 창은 아랫창이 윗창보다 세배로 크게 하였고 법보전의 창은 그 반대 꼴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아주 과학적인 통풍 방법으로서, 오히려 건축 방식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따라가기 어려운 우리 선조들의
슬기를 잘 보여 준다. ( 해인사 누리집에서 )
장경판전과 고려 목판은 견본을 볼수가 있다
국보 제32호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陜川 海印寺 大藏經板)
수량/면적 81,258매
지정(등록)일 1962.12.20
소 재 지 경상남도 합천군
시 대 고려시대(1237∼1252년간)
대장경은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말하며, 불교경전의 총서를 가리킨다.
이 대장경은 고려 고종 24∼35년(1237∼1248)에 걸쳐 간행되었다.
이것은 고려시대에 간행되었다고 해서 고려대장경이라고도 하고, 판수가 8만여 개에 달하고 8만 4천 번뇌에
해당하는 8만 4천 법문을 실었다고 하여 8만대장경이라고도 부른다.
이것을 만들게 된 동기는 고려 현종 때 새긴 초조대장경이 고종 19년(1232)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지자
다시 대장경을 만들었으며, 그래서 재조대장경이라고도 한다.
몽고군의 침입을 불교의 힘으로 막아보고자 하는 뜻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장도감이라는 임시기구를 설치하여
새긴 것이다. 새긴 곳은 경상남도 남해에 설치한 분사대장도감에서 담당하였다.
원래 강화도 성 서문 밖의 대장경판당에 보관되었던 것을 선원사를 거쳐 태조 7년(1398) 5월에 해인사로 옮겨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현재 해인사 법보전과 수다라장에 보관되어 있는데 일제시대에 조사한 숫자를 보면 81,258장이지만
여기에는 조선시대에 다시 새긴 것도 포함되어 있다. 경판의 크기는 가로 70㎝내외, 세로 24㎝내외이고
두께는 2.6㎝ 내지 4㎝이다. 무게는 3㎏ 내지 4㎏이다.
구성을 보면 모두 1,496종 6,568권으로 되어있다.
이 대장경의 특징은 사업을 주관하던 개태사 승통인 수기대사가 북송관판, 거란본, 초조대장경을 참고하여
내용의 오류를 바로잡아 대장경을 제작하였다고 한다.
이 대장경판은 현재 없어진 송나라 북송관판이나 거란의 대장경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며,
수천만 개의 글자 하나 하나가 오자·탈자없이 모두 고르고 정밀하다는 점에서 그 보존가치가 매우 크며,
현존 대장경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내용의 완벽함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는 문화재이다.
또한 2007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 문화재청 국가 문화유산포털에서 인용 )
국보 제206호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 (陜川 海印寺 高麗木板)
수량/면적 28종2725판
지정(등록)일 1982.05.22
소 재 지 경상남도 합천군
시 대 고려시대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시대의 불교경전, 고승의 저술, 시문집 등이 새겨진 목판이다.
이 목판은 국가기관인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새긴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국보 제32호)과는 달리,
지방관청이나 절에서 새긴 것이다. 현재 해인사 대장경판전 사이에 있는 동·서 사간판전(寺刊板殿)에
보관되어 있다.
후박나무를 짠물에 담가 지방기를 빼고 나무결을 삭혀 잘 말린 다음 판각하였기 때문에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었다.
이 목판에는 『금강경』, 『화엄경』 등의 대승경전과 신라·고려·중국의 고승이나 개인의 시문집 및 저술들이
있는데, 경전류는 대부분 간행기록이 있어 고려시대 불교경전의 유통 등 불교신앙의 경향을 알 수 있다.
고승이나 개인의 시문집 및 저술 등은 비록 간행기록이 없고 전권을 갖추지 못한 것이 많으나,
그 내용이 전하지 않거나 역사적으로 희귀한 자료들이다.
고려시대 판화 및 판각기술은 물론이고, 한국 불교사상 및 문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해인사에 있는 목판은 모두 54종 2,835판인데 이 중 28종 2,725판이 국보 제206호로 지정되어 있고,
26종 110판이 보물 제734호로 지정되어 있다. ( 문화재청 국가 문화유산포털에서 인용)
견본 팔만대장경
사진 해인사 누리집
팔만 대장경 ( 사진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앞으로도 길이 지키고 보존해야 하는 자랑스럽고 소중한 우리의 문화 유산이다
☞ 6월 20일 아내,친지
▶ 7월 9일 행복 척도 1.5점 ★☆
-0.5 영화 포스팅 하나에 씨름
-0.5 박원순 서울시장 실종.사망소식 마음 무거웠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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