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空空)의 시선

나의생각-글을읽고

김재규 법정진술-야수의 마음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다

空空(공공) 2020. 2. 12.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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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 영화가 2월 11일 기준으로 460만명의 관객이 관람해 흥행 성적이 나쁘지 않다

다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땜에 흥행 속도가 약간 주춤해진듯 하다.


영화를 보고 나니 예전 읽었던 책들이 생각나 책장에서 몇권을 빼내 다시 읽기도 했다.

그 중에서 동아일보 김재홍 기자가 김재규 군사재판 1,2심의 녹음 테이프를 정리해 2백자 원고지 

4천여장에 정리한 내용을 동아일보사에서 펴낸 '박정희 사건,살해 비공개진술 전 녹음 최초 정리"라는

부제와 운명의 술 시바스란 제목의 책을 다시 읽었다


그 중 영화와 관련해서 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들을 옮겨 적는다


이 책을 쓴 김재홍은 1950년생으로 서울대 학.석.박사를 취득하고 1978년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해 

해직 당했다가 1988년 복직해 정치부 차장,논설 위원을 거쳤다

그후 2004년 열린우리당 비레 국회의원이 되고 현재는 서울디지털 대학교 총장으로 재직중이다


박정희에 관한 저서를 10권 정도 출간한 우리나라에서 박정희에 대한 최고의 연구 전문가라 할수 있다

그는 2012년 한 방송에서 박정희를 " 굉장히 출세주의자였고 권력주의자였고, 기회주의자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변신의 달인이었지요"라고 평가 하기도 했다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살해 사건이 일어나고 김재규를 비롯한 피의자 8명에 대한 재판이 사건

39일만에 군사 재판으로 열리게 되었다. ( 12월 4일 )

첫 공판은 이 재판이 군사 재판으로 합당한지 변호인과 법무사간의 설전과 논란이 있었다


검찰의 김재규 공소장은 김재규가 박대통령의 신임을 잃어 가는데서 비롯된 불만으로 저지른 우발적 범행

라고 주장했는데 ( 책 33P ) 김재규는 우발적 행동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결심하고 기회를 보다가 거사한

계획적인 혁명이다 라고 주장했다 ( 책 34P )


김재규가 최종 결심한 동기는 당시 한달에 10번 (사흘에 한번 )꼴로 열리던 대행사,소행사로 불리는 술판

때문이고 사생활 문란으로 인한 대통령의 판단력 마비 .여기에 큰 비중이 있었다 ( 책 35P )


12월 8일에 2차 공판이 있었다,

2차 공판 초기에는 김재규 호칭에 대한 논란이 검찰과  변호사 사이에 있었다.

검찰관과의 김재규 사이 심문 과정에서 주목할만한 발언이 있었다


" 검찰관 : 지난번 검찰 조사 단계에서 만약에 김계원 피고인이 반발하는 표정을 지었더라면 "농담이오"

라고 얘길 흘려 버리고 각하 살해 현장에서 사살해 버렸을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셨는데

 김재규 : 예. 그것은 김계원 실장이 완전히 저의 혁명 결행에 반대 의사를 뚜렸이 햇으면 그날 저녁

제 총에 맞아 죽었을겁니다." (책 67P )


김계원 실장이 당시 살아난 이유였다.


또 김재규가 사건 후 정승화 육참 총장과 차를 타고 가면서 세종 호텔 근처에서 '어디로 가지'라고 했을때

정승화 육참 총장이 '육본으로 가시지요'라고 말할때 박흥주 대령의 그게 좋겠습니다"라는 그말 한마디로

중정으로 가지 않고 육본으로 간게 역사의 분수령이 되었다 (책 89P )

12월 8일 오후에 속개된 2차 공판 김재규의 진술운 비공개로 진행 되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 중략) 결국 저는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이고 동향이고,동기생이고 이런 관계지만 그 순간에는 내가 

마음을 야수의 마음으로 바꿔서 행동했습니다 , ( 후략 )  ( 책 165P )


김재규는 1926년 생으로 경북 선산 출생이며 육사 2기로 박정희와 동기이다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였으며 건설부장관을 역임하고 중앙정보부장에 1976년에 임명되었다

그는 1980년 1월 28일 사형을 선고 받고 5월 4일 사형 집행되었다


채홍사 역할을 햇던 박선호 대령과 박흥주 대령에 대한 내용과 진술은 다음 기회에 옮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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