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전쯤 친구와 고령 일대를 다니다가
우연히 들렀던곳인데. 그 후로 가 보질 못하고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생각이 나서 미세먼지가
심한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찾아 나선곳이다
경북 고령군 쌍림면의 "개실 마을"이다
10여년전에 본 기억과는 많이 달라 있었다
아마 그때는 분명 건성으로 보았을것이다
이곳 개실 마을은 영남학파 종조인 문충공 점필재 김종직의
후손들이 350여년간 동성마을을 이루고 있는곳이다
무오사화때 화를 입은 점필재 김종직의 5대손이 1650년경에 이 마을로 피신와서 은거하며 살 때, 꽃이 피고 골이 아름다워
아름다울 가(佳) 골 곡(谷)을 써서 가곡이라 했는데 그후 음이 변하여 개애실,개실이 되었다 한다
개실 마을에는 김종직의 종택, 사당 등 고택과 점필재 김종직과 관련한 유적이 많이 남아 있어 한국 전통마을의 미를
느낄 수 있다
농협 지정 팜스테이 마을로 2003년 지정되었고 2015년에는 농촌체험휴양마을로 지정되었다
김종직(金宗直, 1431년 6월 ~ 1492년 8월 19일)은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이자 사상가이며, 성리학자, 정치가, 교육자, 시인이다. 자(字)는 계온(季溫)·효관(孝盥), 호는 점필재(佔畢齋), 시호는 문충(文忠), 본관은 선산(善山, 일명 일선)이다. 세조때에 동료들과 함께 관직에 진출하여 세조~성종 연간에 동료, 후배 사림파들을 적극 발탁하여 사림파의 정계 진출 기반을 다져놓았다.
1459년(세조 5년) 문과에 급제하여 출사하여 성종 초에 경연관·함양군수(咸陽郡守)·참교(參校)·선산부사(善山府使)를 거쳐 응교(應敎)가 되어 다시 경연에 나갔으며, 승정원도승지·이조 참판·동지경연사·한성부 판윤·공조 참판·형조 판서·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재지사림(在地士林)의 주도로 성리학적 정치질서를 확립하려 했던 사림파의 사조(師祖)의 한사람이자 중시조격이다. 그러나 세조의 즉위를 비판하여 지은 〈조의제문〉이 무오사화를 불러일으켰다. 조선왕조 수립 이후 성리학을 전승한 것은 길재, 권우였고, 사림파 출신으로 처음 조선정계에 진출한 이는 정몽주, 권근이었으나, 세조 이후 조선 조정에 본격적으로 출사한 것이 김종직과 그의 동료, 제자들이었으므로 김종직을 사림파의 실질적인 중시조로 간주한다.
김종직은 자신을 전별(餞別)하는 문인들을 '우리당'(吾黨)이라고 불렀는데 김종직을 종주로 삼았던 정치세력이 사림(士林)이
다. 이를 통상 붕당 정치의 시원으로 간주한다.
정여창, 김굉필, 이목, 권경유, 김안국, 김정국, 김일손 등이 모두 그의 제자였고, 조광조는 김굉필의 제자로서 그의 손제자였
으며, 남효온과 남곤, 송석충, 김전, 이심원 역시 그의 문하생이었다.
그는 세조의 찬탈을 비판하고 이를 항우의 초 회왕 살해에 비유한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지어 기록에 남겼으나 그자신은 1459년(세조 5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가 벼슬이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김종직 종택 전경
국제워크 행사가 2007년,2008년에 잇었던 모양이다
근심푸는곳..웬지 와 닿는다
안채는 1800년경에 건립하여 1878년에 중수하였고, 사랑채는 1812년에 건립한 것으로 추측되는 선산 김씨 문충공파(善山金氏 文忠公派)의 종가이다. 마을 뒷산을 등지고 완만한 경사를 이룬 대지에 남동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가 있고, 사랑채 뒤에는 안마당을 마주한 정침 의 좌우에 고방채와 중사랑채를 두어 전체적으로 튼·자형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는 안쪽에 툇마루를 둔 2칸방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전면이 개방된 대청을, 좌측에는 앞뒤로 방과 작은 부엌을 두었다. 막돌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방주를 세웠는데, 대청의 앞쪽 가운데 기둥은 원주이다.부가구는 3량가로 대량 위에 원형판대공을 놓아 종량을 받게 하였다.
종손이 기거하고 있어 출입은 안 되었다
이 건물은 필재(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선생의 과업(過業)을 기리기위해 지방유림들이 건립한 강학지 소(講學之所)이다.종택(宗宅)에서 남서쪽으로 약 100m 거리를 두고 있다. 점필재의 15세 주손(?孫)인 김창현(金昌鉉)대에 건립되었다 하며, 상량문(上樑文)에는 1886년(?幀紀元後四丙寅三月···)으로 기록되어 있다.
솟을대문을 지나 방형(方形)으로 토석담당을 두른 일 곽 안으로 들어서면 마당을 마주하여 동남향으로 좌정하고 있다. 평면은 정면 5칸,측면 2칸 규모의 일(一)자형으로 전면에 툇마루를 둔 2통 칸 온돌방의 우측에는 전면이 개방된 대청을 두었는데 우측면과 배면의 각 칸에는 쌍여닫이 판문, 대청과 방 사이에는 2분합틀 문을 달아 개방할 수 있게 하였다.좌측에는 전면에 툇마루와 같은 폭으로 하부에는 광, 상부에는 누마루를 설치하였으며, 그 뒤쪽의 하부는 아궁이 부엌을, 상부는 방에서 드나들 수 있는 다락을 설치하였는데 전면에 높은 누마루를 놓은 수법이 주목된다.
이 비석은 합천에서 고령을 거쳐 서울로 향하는 진상품을 서로 인수인게한곳에 세운것으로
합천군수와 고령현감이 진상품의 인수인게장소를 확정하고 서로 잊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체험 숙소로 활용되고 잇는곳 같다
여길 다녀 옴으로 한구석에 남겨둔 묵은 숙제를 한 느낌이 드는건 왜일지 모르겠다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한적하고 조용한 농촌 체험 하기에는 좋은 장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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