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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고택,고건축물

영천댐 수몰 이전 문화재-강호정,오회공종택,하천재,사의당,삼휴정,오회당

空空(공공) 2018. 1. 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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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댐 공사에 의해 댐안에 있는

오천정씨 문중의 문화재를 이곳

자양면 성곡리 산 78번지에

한꺼번에 옮긴 모양이

 

기존에 있던 곳은 모두 조금씩 떨어져

있었을것이나 영천댐 공사로 인해

문중의 문화재가 그대로 옮겨온것은

어찌 보면 나쁘지 않은듯도 하다

 

6개가 각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으며 100M 내로 모여 있어 한꺼번에 둘러

볼수 있어 좋았다

 

제일 처음 만나곳은 강호정이다

( 강호정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

 임진왜란 때의 의병대장 정세아가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기 위해 세운 누각이다. 선조 32년(1599)에 지은 후 여러 차례의 보수공사가 있었는데, 지금의 건물은 영천댐 건설공사로 인해 1977년에 현 위치로 옮겨 다시 지은 것이다. 

정세아는 임진왜란 당시 영천·경주지방을 되찾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전쟁이 끝난 뒤 국가에서 수여하는 모든 영예를 사양하고, 고향인 용산동에 이 정자를 지어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가르치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양쪽에는 각 2칸의 방이 있고, 가운데 1칸이 마루로 꾸며져 있으며 화려한 난간을 설치하였다. 뒤에는 2채의 작은 부속건물이 있는데, 그 마당을 통해 정자로 오르게 되어있다.

                                                              ( 문화재청 누리집에서 )

 

강호정을 보고 우측으로 가니 하천재가 있다

하천재는 한창 공사중이었다

( 하천재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73

 오천 정씨 집안의 묘와 강의공 정세아의 무덤가에 세운 비를 보호하기 위하여 지은 집과 비각이다. 

조선 인조 15년(1637)에 진주목사 정호인이 처음 지었다고 한다. 지금의 건물은 후에 다시 지은 것으로 보이며, 영천댐 건설로 인하여 1976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어졌다.

강의공 정세아는 임진왜란(1592) 때 의병대장에 추천되어 많은 공을 세웠다. 그러나 그 공으로서 상을 바라지 않고 관직을 떠나 시골에서 제자를 기르며 학문을 닦은 덕망이 높은 선비였다. 

경내에는 하천재, 신도비각 등이 있는데 모두 단순하고 소박하게 지은 건물이다.

( 오회공종택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2호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하여 영천·경주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정수번의 셋째아들인 호신이 결혼하여 살던 집이다. 

조선 광해군 12년(1620)경에 지었으며, 효종 6년(1655)에는 사당을 세웠다. 1977년 영천댐 건설공사로 인해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앞면 5칸·옆면 1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이며,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 오회당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6호
오회당 정석현을 추모하기 위하여 조선 영조 3년(1727)에 관찰사 권대규가 지었다. 1977년 영천댐 건설로 인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소박하게 지어진 건물로, 앞면 4칸·옆면 1칸 규모이다.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단순한 맞배지붕인데, 양쪽 옆면에 눈썹지붕을 이어 달아서 마치 팔작지붕처럼 보이게 하였다. 이런 예는 영천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것이다. 한쪽에 마루 2칸, 다른 한쪽에는 방 2칸을 나란히 들였다.

요렇게 잠겨 있어 열고 들어갈수 있었다

( 사의당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4호

 사의당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강학당으로, 조선 영조 8년(1732)에 정중호의 형제인 중기·중범·중락 등이 우의를 더욱 돈독히 하고 학문연구와 제자교육을 위해 지은 것이다. 원래는 자양면 용산동에 지은 것을 영천댐 건설로 인하여 1977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앞면 5칸·옆면 1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 건물이다. 왼쪽 2칸은 마루이고 오른쪽 3칸은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루에는 둥근 기둥, 방에는 네모 기둥을 사용하였다. 사의당 이외에 앞면 6칸·옆면 1칸의 규모로 행랑채인 수의당이 있다.

( 삼휴정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5호
삼휴 정호신(1605∼1649)이 자연을 벗삼아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지은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인조 13년(1635)에 지었다고 전하며, 지금은 영천댐 건설로 인하여 옛 자리를 굽어보는 산비탈에 옮겨지었다. 

할아버지인 의병장 정세아가 살았던 곳에 지었는데, 그 풍경을 바라보면서 ‘삼휴’란 시를 지어 삼휴당이라는 정자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

앞면 4칸·옆면 1칸 반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가운데 2칸은 대청마루이고 양쪽에는 각 1칸짜리 방을 들였다.

하절

하절은 묘터로서는 영천에서 가장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다

정효자가 얻은 명당자리라 알려진 하절은 울창한 노송들이 둘레 2Km에 걸쳐 늘어서 있고

99기의 큰 무덤과 비석들이 있다

이곳의 기운이 정말 명당의 효험이 있는듯 하다

그래서 충신들이 많이 났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