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수목원 바로 뒤,인흥마을이라
불리우는 남평문씨본리세거지
수목원 들렀다가 생각이 나면 한번씩
찾는곳이다
작년 봄에 들러 목화가 핀것을 보았었고
들어가는 진입로 공사를 햇었는데
일년이 훌쩍 지난 싯점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 9월의 풍경도 담을겸해서 지난 9월
중순 다녀 왔었다
확실히 갈때 마다 새로 보이는게 있다
이번에는 여태 못 보았던 인흥사지 터와 석탑 1기가 있다는것을 알고 왔다
이곳의 대표적인 건물로는 수봉정사와 광지당·인수문고를 들 수 있다. 수봉정사는 세거지의 입구에 있는 정자로 정원을 매우 아름답게 꾸민 곳이다. 주로 손님을 맞고 일족의 모임을 열 때 사용하던 큰 규모의 건물이다. 광지당은 문중의 자제들이 학문과 교양을 쌓던 수양장소이다. 또 인수문고는 문중의 서고로, 규장각 도서를 포함한 책 1만여 권을 소장하고 있다. 처음에는 작은 규모였으나 후에 크게 늘려지었고, 도서열람을 위한 건물도 따로 지어놓았다.
주변경관이 아름답고 도로망도 편리하게 정리되어 있는 옛 마을이다. ( 문화재청 누리집에서 )
목화밭
주차장및 입구가 잘 정비 되어 있다
수백당..정숙
모임과 공부를 하는 장소
수백당은 ‘결백을 지키는 집’이란 의미로 수봉 문영박 선생을 추앙하기 위해 그의 아들들이
1936년에 세웠다
T
수백당 안에 있는 우물..옛 인흥사 시절부터 있었다 한다
이 마을은 돌담이 특히 아름답다
전 대구시장 문희갑씨의 집
아직 여기서 살고 게신다 한다
광거당
광거당이 선 자리는 인산재 문경호가 처음 이 땅에 정착할 때 지은 용호재(龍湖齋)가 있던 자리다. 1910년 용호재를 확장 개축하여 지은 재실이 광거당으로 세거지의 상징적인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이후 광거당 안에 만권의 책을 비치한 ‘만권당(萬卷堂)’이 설치됨으로써 전국의 수많은 문인, 학자들이 학문과 예술을 토론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누마루에는 추사가 적은 ‘수석노태지관(壽石老苔池館)’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수석과 묵은 이끼와 연못으로 이루어진 집’이라는 뜻이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아시는분은 대단하신분이다
수봉정사앞의 대추밭에 유존하고 있는 인흥사지탑이다.
인흥사는 임진왜란때 전소되어 그후 복원하지 못했다.
현재 이 절터에는 탑재들과 주춧돌, 돌유구들이 여기저기 산재하고 있는데 원래 이곳에는 3층 석탑이 2기 있었으나 1기는 경북대학교 이종항 교수에 의해 1959년 인흥사 옛터에서 경북대학교 노천박물관으로 옮겨가고 2기는 허물어진 채 문시갑 소유의 과수원 중앙에 방치되어 있다.
높이 1.5m 정도인 이 탑은 허물어져 다시 세운 것으로 땅속에 묻힌 받침대 위에 1층만 얹혀져 겨우 탑모양만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절에서 사용했던 우물과 1492년 간행된 심경부주 2매 (16.8 * 24.2cm)가 인수문고에 보관되어 있다.
몇번이고 왔어도 돌담이 참 정겨운곳이고 경치가 좋아 자주 찾아도 좋을곳이다
- 산에 비석을 옮기는 도구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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