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

안동 부용대,화천서원,옥연정사

空空(공공) 2024. 9. 30.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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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하회마을 건너편에 보이는 화천서원과 옥연정사, 

그리고 부용대에 가 보기로 했다

배로 갈 수는 없기에 빙 둘러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부용대를 먼저 올랐다


▶부용대

 부용대는 하회마을에 있는 만송정 숲 맞은편에 있는 절벽이다

 태백산맥의 맨 끝부분에 해당하며 정상에서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하회마을 관광 백미 중의 하나로 부용대라는 이름은 중국 고사에서 따온 것으로 

 부용은 연꽃을 뜻한다. 

 처음에는 북애(北厓)라 했는데, 이는 하회의 북쪽에 있는 언덕이라는 뜻이다. 

 아래로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곳에 옥연정사, 겸암정사, 화천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부용대는 화천서원 오른편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된데

조금만 올라가면

부용대에 다다른다

강 건너편 하회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 경상북도 기념물  안동 화천서원 (安東 花川書院)

 화천서원은 도산서원 등 향촌 사림의 동의를 얻어 1786년에 건립하였다. 

 건립 후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을 주향으로 하고 동리(東籬) 김윤안(金允安)과 

 종손자인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를 배향하고 100여 년 이상 춘추로 향사를 지내오다가 

 1871년 서원 철폐령에 의해 강당과 주사만 남기고 훼철됐다. 

 서원의 훼철을 아쉬워하던 후손들은 1966년부터 기금을 모아 사림들의 공론으로 

 1996년에 복설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서원을 관리하시는듯한 ( 확실치는 않다 ) 분이 부근에서 음료를 파신다




 ▶ 국가민속문화유산 옥연정사 玉淵精舍 

 이 정사는 서애 선생이 노후에 한가로이 지내면서 학문을 하기 위해 세우려 하였으나 

 재력이 없어 짓지 못했다. 그

 러던 중 승려 탄홍(誕弘)이 스스로 10년이나 시주를 모아 선조 19년(1586)에 완성한 

 우정의 산물로 선생의 덕망이 얼마나 두터웠는지를 알려주는 증거이다.

 처음에는 옥연서당(玉淵書堂)이라 했는데, 옥연(玉淵)은 정사 바로 앞에 흐르는 깊은 못의 색조가 

 마치 옥과 같이 맑고도 맑아서 서애 선생이 이름하였다. 

 선생은 이 집에서 임진왜란의 회고록인 「징비록(懲毖錄)」을 구상하고 저술하였다.

 건물의 특징은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터가 넓고 평탄한 것과 사랑채와 별당채는 남향이며, 

 안채와 행랑채는 동향으로 지은 것이다.



 옥연정사는 관람 시간이 늦었는지 문이 닫혀 있어 안은 보지 못했다

하회마을 방문하면 가 볼 곳이다


☞ 8월 3일 아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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