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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

김해 봉하마을-생가,묘역

空空(공공) 2024. 9. 4.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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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방문의 마지막은 "봉하 마을"이다


봉(烽)화산 봉수대 아래(下)에 있어 유래한 이름 봉하(烽下)이다

주호, 용성, 본산, 금봉, 봉하 등의 본산리 5개 마을 가운데 하나로 진영단감과 

벼농사를 주로 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에 속한다. 

봉화산에는 정토원이라는 절과 마애불이 있으며, 산 정상에는 마을 일대를 

훤히 둘러볼 수 있는 사자바위가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봉하마을에서 태어나 유년과 청년 시절을 보냈다. 

소년 시절에는 마을에서 진영 읍내에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 한 시간 남짓을 

걸어서 다녔다. 

부산에 나가 공부한 고등학교 시절과 군 복무 시간을 제외하고, 신혼생활과 제대 후 

고시공부도 마을에서 했다.

부인 권양숙 여사와도 봉하마을에서 만나 사랑을 키웠다. 

권양숙 여사는 어릴 때 마을로 이사 와서 성장했고, 후에 노 대통령과 백년가약을 맺어 

고시 합격 뒤 새 출발을 위해 마을을 떠나기까지 수많은 추억과 사랑을 쌓았다

                                                                 ( 봉하 마을 누리집에서 일부 인용 )

 ☞ 봉하마을  https://www.knowhow.or.kr/bongha/main.php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걸어가면서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

눈앞에 사자 바위와 부엉이 바위가 보인다. 울컥해진다


▶  대통령생가

1946년 9월 1일 태어나 8살까지 살았던 집. 퇴임 당시 생가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고 

원래 모습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김해시가 생가를 매입하지 못해 복원 사업이 난항을 겪자 대통령의 고교 친구가 

직접 생가를 사서 김해시에 기부했고, 이후 생가 복원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복원될 생가의 설계 과정에 대통령이 직접 수차례 걸친 자문과 협의, 

꼼꼼한 메모를 통해 직접 의견을 제시했다. 

대통령은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되, 생가를 방문한 사람들의 ‘쉼터’가 되기를” 희망했다.

생가는 전통적인 초가집 형태로 약 36㎡(약 11평) 규모의 본채에 방 2칸과 부엌, 

약 14㎡(약 4.5 평)인 아래채에 헛간과 옛날식 화장실이 있다. 

대통령 서거 이후인 2009년 9월 복원사업을 마치고 일반에 공개되었다.




▶ 노무현 대통령 묘역 

“화장한 유골은 안장하되 봉분을 만들지 않겠다”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지하에는 안장시설을 하고 “아주 작은 비석만 남기라”는 대통령의 유언에 따라 검소하게 

남방식 고인돌 형태의 낮은 너럭바위를 봉분처럼 올렸다.

국민참여 방식으로 조성되었다. 

너럭바위에는 ‘대통령 노무현’ 여섯 글자만 새기고, 박석 하나하나에 담긴 

국민들의 존경과 추모, 애도와 사랑의 글 전체가 비문을 대신하게 하였다. 

추모박석과 자연박석이 조화를 이루어 길과 내, 사람과 집이 어우러진 ‘

사람 사는 세상’을 형상화하고 있다. 

2009년 8월 5일, 정부는 전직 대통령을 고향에 안장한 첫 사례로서 ‘국가보존묘지 1호’로 

지정하였으며, 이후 박석, 곡장, 수반 등을 추가 설치하여 이듬해 5월 23일, 

서거 1주기를 앞두고 묘역 조성이 완료되었다.

 

수반(입구 작은 연못) : 마을을 비추는 거울, 묘역에 들어가기 전 마음가짐을 정돈하는 곳

헌화대(참배 공간) : 너럭바위를 앞에 두고 헌화와 분향, 참배를 하는 곳

곡장(묘역 뒤편 벽) : 묘역과 자연의 경계를 구분하는 벽으로, 일정 기간 녹이 슬고 나면 

보호막이 형성되어 부식을 막아주는 내후성 강판으로 제작

너럭바위 : 지하의 안장 시설을 덮고 있는 남방식 고인돌 형태의 낮은 바위



묘역에 국화 한 송이를 놓아 드리고 참배를 했다

☞ 8월 2일 아내, 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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