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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

( 청주여행 ) 청주읍성남문터,중앙공원

空空(공공) 2023. 1. 25.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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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곳을 여행할 때는 이동 동선이 참 중요하다

이번에도 청주의 지도를 보고 가야 할 곳을 정했었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청주 성안길의 시작점이기도 한 남문터와 그리고 중앙공원이다

 

청주읍성 남문터

 

청주읍성 우물터

 

▶ 청주 중앙공원

중앙공원은 청주시의 한가운데 있는 시민들의 휴식처로서 공원에는 선인들의 숨결이 

서린 압각수와 충청도병마절도사 영문, 망선루가 있다. 

병마절도사영문은 목조2층의 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팔각지붕으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그 앞에는 1천 년을 헤아리는 은행나무 압각수와 조헌선생과 영규대사를 기리는 비와 

한봉수의 송공비, 박춘무의 비 및 서원향약비 등이 있다. 

[문화재 정보]
충청도 병마절도사영문(지방유형문화재), 압각수(충북기념물), 망선루(지방유형문화재), 

조헌 전장기적비(지방유형문화재), 청주 척화비(지방기념물)

 

▶ 청주 충청도병마절도사영문 (淸州 忠淸道兵馬節度使營門)

청주읍성 안에 있던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의 출입문이다. 

병영의 출입문은 보통 원문이라고 부르며, 좌우로 담장이 이어져 병영을 에워싸고 있다.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은 당초 충남 해미현에 있다가 조선 효종 2년(1651)에 이곳으로 옮기었다. 

1988년까지 ‘청녕각’으로 잘못 알려져 서원현감 이병정이 세운 것으로 여러 책자에 기록되어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네모진 높은 주춧돌 위에 세운 2층의 누문으로, 아래층의 중앙에는 문을 달아 출입하고 

위층은 마루를 깔고 난간을 둘렀다.

호서읍지와 청주읍지를 보면 정곡루가 병영에 있음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병영내에 누각은 통군루와 정곡루가 있을 뿐인데 ‘충청병영도’와 ‘청주읍성도’에 통군루는 

문루 안쪽의 서편에 있는 2층 건물로 나타나 있어, 정곡루가 바로 문루의 명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병영이나 수영(水營)의 출입문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성곽건축이다.

 

* 중앙공원에 있는 은행나무의 전설 *

중앙공원에 있는 은행나무는 나뭇잎이 오리발처럼 생겨서 압각수(鴨脚樹)라는 이름이 붙어져있다. 

그리고 그 은행나무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고려말 공양왕 때 윤이와 이초가 이성계 일파를 없애기 위해 중국 명나라로 가서 

이성계가 공양왕과 함께 명나라를 치려 한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이 때문에 이색·정지·이승인·권근 등이 청주옥에 갇히고 문초를 받자 갑자기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져 성안에 홍수가 났다. 

이 때 근처에 나무가 있어 죄수들이 올라가 목숨을 건졌는데 그 나무가 바로 압각수였다는 것이다.

청주 조헌 전장 기적비

 

▶ 청주 척화비

척화비는 조선 후기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를 승리로 이끈 흥선대원군이 

온 백성에게 서양세력에 대한 경계심을 일깨우고자 서울과 전국 교통요지에 세우도록 한 비이다.

이 척화비는 1976년 2월 29일 석교동 노상하수구 뚜껑으로 있던 것을 발견한 것으로, 

직사각형의 모습이며, 윗부분의 일부가 파손되어 있다. 앞면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라는 글을 새겨 

대원군의 강력한 쇄국의지를 밝히고 있다.

척화비를 세운 시기는 고종 8년(1871)인데, 후에 임오군란(1882)이 발생하고 대원군이 

청나라에 납치되자 일본공사의 요구로 모두 철거되어, 지금은 이처럼 몇 기의 비들만 곳곳에 남아 있다.

 

▶ 망선루

고려시대 청주관청의 하나로 관리들이 머무는 숙소인 객관 동쪽에 있던 취경루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려 공민왕 10년(1361)에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기념으로 청주에서 

과거시험을 치르고 이곳에 방을 써붙였다는 기록이 있다. 

세조 7년(1461)에 수리하였고 한명회가 현판을 ‘망선루’라 하였다고 한다. 

그 뒤에 다시 고쳐서 근세에까지 유지되다가 1923년에 제일교회로 이건되었으며, 

2000년 12월 중앙공원으로 옮겨 세웠다.

앞면 5칸·옆면 3칸이며, 나무로 지은 2층 건물이다.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가장 화려한 팔작지붕으로 누각형식이다. 

현재 1층은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이 지방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문화재가 가득한 청주 시내 중앙공원이었다

☞ 1월 8일 아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