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의 진흥왕 척경비를 보기 위하여 만옥정 공원을 찾았다
만옥정 공원은 면적 1만㎡의 도시공원으로 공원내는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국보 제33호), 창녕척화비, 창녕객사,
퇴천3층석탑, UN전적비, 창녕현감비군, 지석묘(고인돌)가 있으며, 열린 문화공간인 야외공연장도 있어 창녕 읍민들의
훌륭한 쉼터및 휴식처로 이용되는 공원이라고 한다
국보인 진흥왕 척경비는 별도로 소개를 하고 나머지 문화재를 소개한다
만옥정공원 입구
이팝나무꽃이 활짝 피었다
① 창녕척화비-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18호
척화비란 쇄국정책을 실시하던 흥선대원군이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치르면서 그러한 의지를 더욱 굳혀
국민들에게 서양세력의 침략을 더욱 강력히 경고하고자 서울 및 전국 중요 도로변에 세우도록 한 비이다.
만옥정 공원 안에 자리하고 있는 이 비는 땅위로 드러난 얇은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운 모습으로, 그 앞면에
대원군의 쇄국의지가 담긴 강한 어투의 비문을 적어 놓았다.
고종 8년(1871) 신미양요를 치른 후 같은 해 일제히 세운 것으로, 한일합방이 되면서 대부분 철거되거나
훼손되었는데, 이처럼 몇 기의 비들이 곳곳에 남아 그 역사적인 의미를 말해주고 있다
② 창녕 퇴천리 삼층석탑 (昌寧 兎川里 三層石塔)-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0호
민가 안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69년 10월에 해체, 보수하여 창녕의 만옥정 공원으로 옮겨 세웠다.
탑이 있던 마을 주변에서 기와조각과 자기조각들이 발견되어 사찰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나, 절이름이나
역사를 전하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탑은 2층 기단(基壇)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위 ·아래층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수평을 이루던 처마의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 있으며, 밑면에는 4단의 받침을 두었다.
통일신라 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기단의 일부가 약가 파손되기는 했지만 통일신라의 석탑 변천 과정을
밝히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③ 창녕 객사 (昌寧 客舍)-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1호
객사는 조선시대의 지방 관아건물로 고을 수령이 임금의 위패를 모시고 예를 올리는 정당과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머물렀던 좌·우헌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어진 시기는 알 수 없고 1924년 군수 이장희가 시장용 건물로 쓰기 위해 창녕읍 술정리로 옮겼다가
1988년 이곳 만옥정에 옮기고 보수했다.
앞면 3칸·옆면 3칸의 1층 건물로, 지붕 옆모습이 사람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되어있다.
바닥은 따로 마련하지 않고 기단 위에 곧바로 세웠으며 기둥 사이에는 벽을 쌓지 않아 주위의 경관을 볼 수 있게
했다.
앞면을 제외한 나머지 면들의 기둥 사이에 나무 2개를 가로로 설치해 행사 때 발이나 병풍을 치기 쉽게 했으며,
건물 전체에 쇠못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지어진 건물양식으로 보아 조선 후기의 건물로 추측된다.
이외에 창녕현감비군 UN전적비등이 있다
창녕현감비군은 신라시대부터 조선말 사이 창녕에 부임한 현감, 부사, 어사, 관찰사들의 선정비이다.
창녕읍에는 생각외로 문화재가 많다
☞ 5월 4일 혼자
▶7월 15일 행복 척도 2.5점 ★★☆
비가 오락가락.기분도 오락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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