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空空)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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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 음악-한국 김민기.미국 존 덴버

空空(공공) 2020. 3. 6.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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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한국 전쟁의 영향으로 당시 예술 활동은 대구를 중심으로 활발히 이루어졌었다..

음악도 예외는 아니어서 당시 전국에 유일한 음반 회사 오리엔트 레코드사가 대구에 있어 음악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고 그 영향으로 7~80년대 통기타 라이브 무대도 명맥을 이어 왔다.


그래서인지 대구에서는 매년 포크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고 아직도 전국적인 사랑을 받는 김광석 노래 

경연대회도 매년 열리고 있기도 하다


포크송,포크 음악은 한마디로 1970년을 전후로 미국 모돈포크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대중가요.통기타 

음악이다


포크송(folk song)의 원래 뜻은 민요이다.

미국 민요에 바탕을 둔 미국 모던포크와 음악적으로 연관성이 있다. 

그러나 미국의 모던포크가 상업주의에 대한 반발과 비판적 사회의식 등이 강한 것에 비해, 한국의 포크송은

 상업적 음반과 방송 활동을 거부하지 않았고 비판적 사회의식 또한 그리 강한 편이 아니었다. 

어쿠스틱 기타의 소박한 반주의 노래는 모두 포크송으로 지칭하는 경향이 많으며, 실제로 팝의 연장선상에 

있는 노래, 혹은 컨트리송, 요들송, 칸초네, 심지어 록 형태의 노래조차 어쿠스틱 기타로만 반주하면 포크로 

불리는 경향이 있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


한국의 포크는 1960년대 후반 서수남,하청일을 시작으로 70년대 초반 "트윈폴리오":뚜아에무아""

라나에로스포""세시봉" 서유석,사월과 오월등이 나와 초반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포크송의 대부라 불리우는 김민기,양희은등이 나와 청년 문화를 이끌었다..

그것이 민중 가요로 이어져 내려 왔다..


한국의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는 포크 명반이 다수포함되어 있다

4위: 김민기 1집 (1971년 ). 6위: 조동익,이병우 어떤날 (1986년),  8위: 한대수 멀고 먼길 ( 1974년 )

11위: 장필순 나의 외로움이 널부를때 ( 1997년 ) . 14위: 시인과 촌장 푸른 돛 (1986년 ) ,16위: 김현식3집(1986년)



포크 에피소드

- 김민기와 조용필 : 물과 기름처럼 섞일것 같지 않은 두 뮤지션은 가요평론가 강헌씨가 다리를 놓은 

  덕분에 둘은   1997년 어느 겨울날 방배동의 한 일식집에서 40분간 말없이 20여병의 소주를 비웠다

  가게를 나온 둘은 입가심을 위해 근처 카페를 들렀는데 이 자리에서 조용필이 노래방 기계 반주로 노래 

  한곡을  불렀는데 그 노래가 김민기의 "아침 이슬"이었다

  그 모임을 계기로 조용필은 대학로 소극장 공연을 시작했고 총리허설이 끝나던날 김민기는 꽃다발을 갖고

  나타났다. 둘은 장르는 달랐지만 서로를 인정했다


-  1세대 여성 포크 가수 은희는 단 일주일만에 기타를 배우고 연주하였다

   그녀의 말 " 조금만 신경써서 4가지 코드만 안다면 왠만한 노래는 다 칠수 있다"


포크 상식

- 한국 최초의 포크 콘서트 : 1969년 9월19일 서울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열린 한대수의 귀국 콘서트 

  게스트로 트윈폴리오 요들러 김홍철이 출연했다


- 최초의 여성 싱어송 라이터 포크뮤지션 : 정미조와 함께 이화여대의 노래 잘하는 가수로 불렸던 

  방의경이다

  그녀는 졸업후 CBS의 인기 청소년 음악 프로그램 "세븐틴"의 DJ로 활동하다가 1972년 

  유니버셜레코드를 통해   독집 앨범을 낸다

  


-국내 첫 혼성 포크 듀엣 : 1969년 서수남과 현혜정이 짝을 이룬 게 최초다.

 이후 1970년 이필원과 박인희가 만든 "뚜아에무아"를 거쳐 한민과 은희가 만나 만든 "라나에로스포"등이 

 있었다


- 전인권도 오디션에서 떨어졌다 : 70년대 전인권이 대구의 라이브클럽 해바라기에 닐영의 노래로 오디션을

  봤는데   비호감스런 발성으로 퇴짜를 맞았다.그후 대구의 다른 업소에서 노래를 하다 상경 1983년 들국화

  를 결성한다


- 대구의 첫 포크 전문 라이브무대

 대구의 첫 포크전문 라이브 무대는 7년대초 등장했던 "해바라기"였다 목화밭의 하사와 병장,양하영과 

 만나 80년대를 풍미했던 혼성듀엣 한마음을 통해 가슴앓이,갯바위등의 히트곳을 냈던 대구 청구고 출신의 

 강영철,가요무대,전국 노래자랑을 연출햇던 KBS PD 박영규 등이 스쳐 갔다.  

                                            ( 이상의 내용은 2019년 포크 페스티벌 전시 내용에서 부분 발췌 )


포크 음악의 본고장 미국에는 유명한 포크송 가수가 많다

피트 시거,존 바에즈,밥 딜런 등을 꼽을수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대표적 가수는 존 덴버이다

1971년에 발표한 그의 노래 " Take Me Home,Country Roads"는 불후의 명곡이다


나의 젊은 시절을 관통했던 포크 음악..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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