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을 가면 한번은 반드시 들러 봐야 할곳이다.
바로 삼도수군통제영이다
▶ 삼도수군 통제영 : 사적 제402호
통제영이란 충청·전라·경상도의 삼도수군을 통할하는 통제사가 있는 본진을 말하는 것으로, 삼도수군통제영을 줄여서 표현한 것이다.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한산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다.
지금의 통영시 관내에 통제영을 짓기 시작한 것은 선조 36년(1603) 때의 일이다. 제6대 이경준 통제사가 이곳에 터를 닦고 2년 뒤인 선조 38년(1605)에 세병관 (보물 제293호에서 국보 305호로 승격 지정), 백화당, 정해정 등을 세웠다. 이곳은 고종 32년(1895) 각 도의 병영과 수영이 없어질 때까지 292년간 그대로 유지하다가 일제시대 민족정기 말살정책에 의해 세병관을 제외한 많은 건물이 사라졌다.당시 건물 중 남아있는 것은 세병관 뿐이나, 최근 관공서와 주택이 있던 통제영터를 일부 정비 복원하였다.
망일루
광해군 3년 제 10대 우치적 통제사가 세웠으며 영조 45년 제128대 이국현 통제사가 화재로 소실된것을 다시 지었다
일명 세병문이라고도 하며 통행 금지와 해제를 알리는 커다란 종이 있어 종루라고도 하였다.
소실되었던것을 2000년에 다시 중건하였다.
좌청
군관과 사병이 대기하던 건물로 대변좌청이라고도 하며 제54대 신여철 통제사가 1689년에 우청과 좌청으로
분청했다고 한다
산성청
통영성을 지키는 산성중군등이 근무했던 곳으로 숙종 44년 제 83대 오중주 통제사때 건립하였던것으로 그후
소실되었던것을 발굴, 유구와 문헌에 의하여 최근에 중건하였다.
백화당
선조 36년 제6대 이경준 통제사가 건립하였다, 중국 사신등의 손님을 맞이하는 통제사의 접견실이자 비장청인데
비장은 지방 장관및 중국 사신을 수행하던 무관으로 민정의 염탐과 같은 업무도 맡았으며 지방 장관이 임의로
임명하였다
잉번청
숙종 44년 제 66대 이세선 통제사가 건립하였으며 통제영 공방의 건물이나 물건등을 지키는 사람이 근무하던곳이다
느티나무
둘레는 5M이며 수령은 400년 이상 되는걸로 추정을 한다.통제영 창건 당시 심어진걸로 생각이 된다
기삽석통
세병관 앞뜰에 영기와 장군기를 세우기 위해 깃대를 고정하는 커다란 2개의 돌기둥으로 정조 10년 제 142대 류진항
통제사가 세웠다. 원래는 세병관 좌우 앞뜰 2기가 있었으나 현재는 서쪽 1기만 남아 있다
통영 앞 바다가 보인다
통제사비군
통제사비군은 역대 통제사들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이 시내 일원에 흩어져 있던것을 현 위치에 모아서
동향으로 58기를 나란히 4줄로 세워 놓은것을 말한다
이 통제사비군운 통제사가 부임하여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후에 이 지방 군,관.민이 세운 일종의 공덕비인데
표제도숭덕비.추사비.거사비,사적비,불망비,타루비,,유애비,선정비등으로 다양하다.
내아군
통제사가 업무를 보던 영역이다.통제영 영역에서 중심에 자리하며 세병관 동쪽에 위치한다.
내냐군 내에는 운주당과 이순신 장군의 영당이자 관사인 경무당이 자리하고 그 우측으로는 살림채인 내아가
자리한다
중아의 관아와 달리 지방의 관아에서는 관리의 식구들이 살림하는 내아가 있어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이 공존하는
특징이 있는곳이다.
병고
선조 37년 제 6대 이경준 통제사때 통제영 설치와 같이 세워졌다.
통제영 병무를 관장하던 곳으로 현재 대포,창,검등 무기루를 전시하고 있다
운주당
삼도수군 통제영은 비교적 규모가 크다.
넓은곳이지만 꼼꼼이 둘러 보면 좋을것이다
☞ 8월 4일 아내,친지
'인상 깊은곳 > 고택,고건축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평문씨세거지 문익점 동상,목화밭,매화 그리고 인흥원-3월14일 (171) | 2020.03.18 |
---|---|
이상화 생가 한옥까페 라일락뜨락1956 (114) | 2019.10.16 |
( 통영 여행 ) 착량묘-수군과 지방민이 세운 이순신장군 사당 (52) | 2019.09.13 |
( 밀양여행 ) 밀양 관아지-조선시대 밀양지방 통치의 중심지 (94) | 2019.08.29 |
( 밀양 여행) 영남루,천진궁-밀양을 가면 한번 찾아야 할곳 (110) | 2019.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