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짐은 많을수록 불편할뿐 (空手來空手去) :: 장사 상륙 작전..오늘 9월15일 기억하다

성공 확률 5,000천분의 1, 불가능했던 작전을 성공하게끔 했던 많은 요인들중에

양동상륙작전이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장사 상륙작전이다

 

경상북도 영덕군 장사 해수욕장에는 2013년 장사 상륙작전을 기념하는  전승기념념공원을

착공하였으나 예산문제,안정성등의 문제로 아직까지 완공을 못하고 있다

 

당시 장사 상륙작전의 주역이었던 LST 문산호가 1997년 3월 해병대에 의해 이곳 바닷속 벌에서

발견된 이래 그 실물 모형을 ( 길이 90m. 높이 26m, 폭 30m) 제작 설치하고자 하였는데

3년이 지난 현재도 완공을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최우석 월간 조선기자의 2016년 7월 11일 "최초 공개 6.25 전쟁 인천 상륙작전 성공 투입된 LST

문산호 선장,선원 명단"이라는 기사에 그날의 상황이 생존자의 증언을 통하여 비교적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 전략)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패가 기만전술에 있다고 봤다. 어디가 목표인지를 숨기려는 유엔군과 알아내려는 인민군의 정보전이 치열했다. 맥아더는 미(美) 5해병 연대원들에게 ‘군산(群山)’이란 이름을 흘리면서 인천에서 작전을 펼치기 하루 전 동해안 장사(章沙)에서 양동(陽動) 작전을 펴기로 했다. 작전명 174. 장사동상륙작전은 이렇게 시작됐다. 
  
  작전에는 여수철수작전을 성공시킨 문산호가 투입됐다. 제1유격대대 4개 중대(772명)를 태운 문산호는 1950년 9월 15일 새벽 4시 반, 장사동 해안에 도착했다. 부산을 떠난 지 이틀만이었다. 
  
  상륙부대는 이름만 제1유격대대였을 뿐 이들은 경남 밀양에서 불과 보름 정도 훈련을 받은 앳된 10대 학도병이었다. 실탄을 채 10발도 쏴보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군에서 보급받은 것이라곤 소련제 장총과 배낭, 인민군 군복, 물 약간, 건빵 한 봉지, 미숫가루 세 봉지가 전부였다. 원래 이 작전은 위험한 임무 특성상 미 8군이 수행해야 했지만, 미군은 “실패할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우리 군에 떠넘겼다.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기 어려웠던 육군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학도병들에게 작전을 배정했다. 부대장 이명흠 대위 이름을 따 ‘명(明)부대’로도 불렸던 이들을 태운 문산호는 장사동 근해에 함미닻을 투묘(投錨)하고 해안으로 접근해 들어갔다. 이명흠 대위가 손가락으로 접안(接岸) 장소를 가리켰다. 황 선장은 너무 위험하다고 했다. 이 대위는 작전 지점이라며 접안을 지시했다. 황 선장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곳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때맞춰 내습(來襲)한 태풍 ‘케지아’ 때문에 암초에 걸린 것이다. 북한군의 집중포화가 시작됐다. 
  
  “바다에 빠져 고기밥이 되는 것보다 육지에 올라가 까마귀밥이 되는 게 낫다.” 이 대위의 상륙(上陸) 명령이 떨어졌다. 새벽 5시 반이었다. 해변까지는 50여m. 파도 높이는 4~5m에 달했다. 배는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배에서 나오던 대원들은 해발 200m 고지에 포진한 북한군 2군단 예하 101보안부대의 기관총 세례에 차례로 쓰러져갔다. 
  
  류병추 장사상륙참전유격동지회장은 “총알이 비 오듯 쏟아졌고, 죽고 사는 기로에 선 게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정신없었다”고 회상했다. 많은 대원이 거센 파도에 휩쓸려 바닷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대부분의 탄약도 바다에 유실됐다.  
  
  
 장시간의 사투(死鬪) 끝에 ‘명부대’는 상륙에 성공했다. 황 선장과 선원들도 함께였다. 문산호에 파견됐던 미 해군 쿠퍼 상사는 해군본부에 문산호와 명부대의 상황을 알렸다. 해군본부는 인왕(LT-1)호를 현지에 급파했다. 명부대의 상륙 다음날인 1950년 9월 16일 오전 7시 현지에 도착한 인왕호는 문산호 구출에 착수했지만, 실패하고 부산으로 철수했다. 이 사이 유격대원들은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며 적진지를 파괴하고, 도로와 교량을 폭파했다. 이 과정에서 ‘유격전의 귀재’로 불렸던 군사고문 전성호 대령, 황 선장과 선원 전원이 전사했다. 
  
  살아남은 이들은 장사동상륙작전이 인천상륙작전의 교란작전인지도 모른 채 북한군 정예 병력과 악착같이 싸웠다. 명부대의 기세에 인민군은 포항에서 대규모 병력을 빼 장사 해안으로 출동시켰다. 이 와중에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 전쟁의 주도권이 아군으로 넘어왔다. 

                                                                   ( 후략)

 

만일 내년에 다시 장사를 찾게된다면 완공된 모습을 정말 보고 싶다

Posted by 삶.. 공수래공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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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저녁노을* 2016.09.15 06: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갑니다.

    행복한 추석 보내세요^^

  2. BlogIcon 애리놀다~♡ 2016.09.15 09: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사상륙작전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큰 작전이였군요.
    그런데 자라면서 한번도 이 작전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어요.
    그만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겠구요. ㅡ.ㅡ;;
    오늘이 바로 장사상륙작전 날이라니 추석을 지내면서도 이분들께 감사하는 맘을
    전하는 것도 좋을 듯 해요.
    저도 전승기념공원이 곧 완공되어 참전용사 모든 분의 뜻을 기리게 되길 바랍니다.

  3. 2016.09.15 1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BlogIcon 청결원 2016.09.15 12: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처음 알았네요..

  5. BlogIcon pennpenn 2016.09.15 20: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사동 상륙작전은 처음 들어봅니다.
    최근 흥행에 성공한 <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해
    역사에 묻혀 있던 기록들이 햇빛을 보기를 바랍니다.

    경주 지진으로 인해 뒤숭숭하지만
    그래도 풍성한 한가위를 보내세요.

  6. BlogIcon T. Juli 2016.09.15 21: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의 기억이 새롭게 전개되네요.
    좋은 포스팅입니다.

  7. BlogIcon SoulSky 2016.09.16 04: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천상륙작전만 알았지 장사상륙작전은 처음 들었네요. 잘 알고 갑니다^^ 즐거운 추석이요~!

  8. BlogIcon 새 날 2016.09.16 13: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도 이곳을 슬쩍 언급하셨던 것 같은데, 아직도 공사 중인가 보군요. 많은 분들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9. BlogIcon 겔러 2016.09.17 04: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사상륙작전을 기리는 곳도 있었군요.
    저는 인천상륙작전만 알았지 이거는 몰랐었습니다
    죽어가는 분들은 무슨생각을 하셨을지 ㅠㅠ

  10. BlogIcon 도플파란 2016.09.17 21: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덕에서 포항가는 7번국도였네요 한번씩 지나가면서도 저기 왜 배가 있지... 생각했는데 기념관이었군요 얼른 공사를 마쳤으면 합니다

  11. BlogIcon 개인이 2016.09.18 21: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몰랐던 내용이었는데, 인천상륙작전 영화를 보고 나서 알게 된 내용이었습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