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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영화

기억해야할 군인 故 김오랑 중령-영화 서울의 봄 정해인 역

空空(공공) 2023. 11. 30.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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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짜인 각본과 연출로 오랜만에 흥행이 되고 있는 "서울의 봄" 영화는

1979년 하나회 사조직으로 연결된  전두환 보안 사령관과 일부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1979년의 12월 12일 그날 9시간을 영화한 것이다


반란군에 맟선 진압군이 있었지만 여러 이유로 진압이 무산되고 이후 한국은

기나긴 군사 독재 체제에 접어 든다


많은 병력이 출동하고 대치한 일촉 즉발의 상황이 발생한  참모총장 연행, 

수경사, 특전사 사령관을 체포하는 과정이 있었다

그 상황에 인명 피해는 생각보다 적은  사망 3명 부상 20명등 경미한 피해라고 할 수 있다

사망자 3명 중 장교는 1명인데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정해인이 특전사 오진호 소령역으로

연기한 고 김오랑 소령이다 ( 사후 중령 추서 )

 



고 김오랑 소령은 영화에서 처럼 사령관 정병주 소장이 피하라고 지시했음에도

끝까지 사령관 곁을 사수하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육사 선배 박종규 중령의 총을 맞고

전사했다 ( 2022년,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김오랑 중령의 사망을 순직에서

전사로 판정하였다 )


김오랑 소령이 내실 안쪽 문 앞에서 사살됐고. 실탄 7발이 발사된 김소령의 권총과 

두발이 발사된 정병주 사령관의 권총은 박종규 중령이 회수했다. 

김소령은 배·허벅지 등에 M16 탄환 여섯 발을 맞고 현장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김오랑을 사살한 박종규 중령은 소장 계급까지 진급하였으나 김영삼의 하나회 숙청 당시 

강제 예편되었고 군인연금도 끊기고 비참하게 살다가 2010년 12월 7일 67세의 나이로

식도암으로 사망했다. 

그가 죽기 1년 전인 2009년 12월 9일, 김오랑기념사업회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 지금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하늘의 벌이라면서 12.12에 참여했던 자신과 자신의 

부하들을 용서해달라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김 소령은 직계 자손이 없고. 조카인 김영진 씨가 해마다 삼촌의 기일을 지킨다고 한다

김오랑 소령의 양친은 막내아들의 비참한 죽음에 충격을 받고 화병으로 사망했다


김오랑은 1944년 경남 김해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김해농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1965년 육사에 합격했다. 김해농고 출신 첫 합격자였다

부산대 간호학과에 재학 중이던 백영옥과 러브레터로 사랑을 키우다 월남전 참전

귀국 후 1972년 결혼했다.

미망인 백영옥은 남편 잃은 충격에 시력을 완전히 잃고 연금에 의지하며 살았다고 한다.

1991년 6월28일 밤, 백 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부산 자비원 마당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이 또한 석연치 않은 일이었다

좌측이  김오랑 중령의 형님



 2014년 1월 14일, 국무회의에서 김 중령에게 보국훈장 삼일장을 추서하는 안을 통과시켰고

 그 해 4월 1일 특전사에서 그의 형에게 훈장을 전수했다


  참조한 글  1. "희망 세상 2009년 12월 김준철 "12∙12 군사반란과 어리석은 군인 김오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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