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전 가는 길에는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이 있다
가는 길에 헌강왕릉을 보았고 서출지를 보고 나오는 길에 정강왕릉을 보았다
두 왕릉 다 도로에서 조금만 들어 가면 되는데 두 곳 다 보수 중이어서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왕릉의 위치만 알아 놓은 것만으로 만족을 해야겠다
▶ 사적 경주 헌강왕릉
신라 49대 헌강왕(재위 875~886년)의 무덤이다.
헌강왕은 신라 48대 경문왕의 아들이며 뒤를 이은 정강왕과 진성여왕이 동생이다.
불교와 학문을 장려했으며 재위기간 태평성대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봉분 높이 4 m, 지름 15.8 m로 흙을 쌓은 원형 봉토분이며, 봉분 하부에 4단의 둘레돌을 돌렸다.
내부 구조는 연도가 석실의 동쪽 벽에 치우쳐 있으며, 석실의 크기는 남북 2.9 m, 동서 2.7m이다.
벽면은 비교적 큰 깬돌을 이용하여 상부로 갈수록 안쪽으로 기울게 모서리를 죽이는 방식으로 쌓았다.
석실 입구에 돌문, 문지방, 폐쇄석, 묘도를 갖추고 있으며, 연도의 크기는 길이 142 cm, 너비 128~9 6cm이다.
석실 내에는 서벽에 접해서 2매의 판석으로 된 시상석이 있다.
헌강왕은 경문왕(景文王)의 태자로서 문치(文治)를 잘 하였으며,
이 시기에 처용무(處容舞)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왕위에 있는 동안 태평성대를 이루었는데, 거리마다 노래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일본왕이 사신을 보내 황금을 바칠 정도였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보리사(菩提寺) 동남쪽에 장사 지냈다” 고 기록되어 있다.
1993년 왕릉 내부가 조사되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정강왕릉과 함께 경주 남산 북동쪽 구릉 끝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 쇠퇴기에 조성한 소박한 왕릉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사적 경주 정강왕릉 (慶州 定康王陵)
경문왕의 둘째 아들인 신라 제50대 정강왕(재위 886∼887)의 무덤이다.
정강왕은 형인 헌강왕에 이어 886년 7월에 왕위에 올랐으나 887년 7월에 병으로 죽어
왕위에 있던 기간이 만 1년밖에 되지 않았다.
무덤의 외형은 흙으로 덮은 둥근 형태로,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밑둘레에 3단으로 돌을 쌓았다.
그중 제일 밑단만이 밖으로 약간 나왔으며, 무덤 앞에는 돌단이 있는데,
그 위에 돌로 만든 작은 제사상이 있다.
무덤의 구조는 헌강왕릉과 같다.
그러나 1993년 헌강왕릉의 내부조사 결과, 그 구조와 나온 유물들이 8세기 이전의 형식이어서
이 왕들이 왕위에 있던 9세기와는 큰 차이가 있다.
☞ 8월 3일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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