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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

대구 도동 향산마을,백원 서원

空空(공공) 2020. 7. 9.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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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산성을 일찍 올라 내려 와 오리 백숙을 먹고 천연 기념물 측백나무를 둘러 보고도 오후 시간이 남았다.

팥빙수를 먹으러 가기전 측백나무 앞의 마을과 서원을 잠시 보고 가기로 했다


마을로 들어서니 깔끔하게 정비 되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도심 재생 사업 대상 마을이다


대구 도동 향산마을 -도심 재생 사업

2015년부터 대구시 도시재생사업으로향산마을 일대를 역사문화공간으로 조성했다. 

2018년까지 천연기념물관 겸 커뮤니티센터를 짓고 조형물을 세운다. 차도를 확장하고 인도는 새로 만든다. 

도로와 다리에는 역사 이야기를 담은 트릭아트(착시그림)를 설치하고 곳곳에는 공원과 쉼터를 조성한다. 

주민들은 마을협동조합을 설립해 관광 브랜드와 힐링(치유) 투어 프로그램, 마을축제를 개발한다.

                                                              ( 언론 보도 종합 인용 )


이 카페 옆 골목으로 진입을 한다

이곳에 당시는 팥빙수를 시작하지 않았었다

담장에 벽화( 타일)가 그려져 있다

마을 안쪽에 백원 서원이 있다

▶ 백원 서원

본래 이 터에 건물이 세워진 것은 1600년경이라 한다. 孝子(효자) 徐時立(서시립, 1578∼1665)의

호는 全歸(전귀), 자는 立之(입지)이다 고려 版圖判書(판도판서) 達城君(달성군) 晋(진)의 后(후)로

壬亂時(임란시) 조부모와 부모를 모시고 八公山(팔공산) 三省庵(삼성암)으로 피난하였는데 그의 극

진한 孝行(효행)이 온 고을에 자자하였다. 때마침 정승 五峰(오봉) 李好閔(이호민)이 王子(왕자) 胎

室使(태실사)로 南行(남행)하였다가 이 사실을 듣고 達城(달성) 孝子(효자) 徐時立(서시립) 其孝人

稱類厥慈今日偶看三省錄(기효인칭류궐자금일우간삼성록) 有慈如比有兒宜(유자여유아의)라 詩(시)

를 읊고 堂號(당호)를 全歸(전귀)라 지어주니 부모에게서 실로 온전히 나서 온전히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가 죽자 조정에서 旌閭(정여)가 내려오고 1692년(肅宗, 숙종 18) 전귀당 곁에 百源書院(백원서

원)을 세워 그를 享祀(향사)했으니 百源(백원)은 孝(효)가 百行之源(백행지원)이라 함이다.

   그러나 1864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서원은 제철되었고 남아오던 전귀당도 1945년 음력 섣

달 그믐의 화재로 회진되었다. 다행히 유림의 호응으로 현재의 전귀당을 그 이듬해에 重建(중건)하

게 되었다.

    50cm 축대위에 방 3칸 대청 2칸 우물마루에 툇마루가 곁들린 팔작지붕이다 그러다가 1991년 단

오절에 제철되었던 百源書院(백원서원)을 전귀당과 합치고 景德祠(경덕사)를 지어 先生(선생)을 奉

安(봉안)하였으며 廟庭碑(묘정비)와 先生(선생)의 母夫人(모부인) 康氏(강씨)의 孝行碑(효행비)도

由仁門(유인문) 안뜰 550평 대지위에 함께 建立(건립)하였다.

                                                        ( 대구스토리에서 인용 )



효행비

와송

효자 서시립 선생을 이렇게 또 알아 간다

항상 여기 올때마다 측백나무만 보고 갔었는데 여유있게 오다 보니 마을도 둘러 보게 된다


☞ 6월 6일 아내.친지


▶ 7월 8일 행복척도  2.5 점 ★★☆

소소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