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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산_사찰

팔공산 송림사. 그리고 송림사 계곡

空空(공공) 2020. 7. 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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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내가 거의 잔디로 덮여 있어 언제 가도 아늑하게 느껴지는곳이다,

산 중턱에 위치해 있지도 않아 차로도 편히 갈수 있는곳 팔공산의 송림사다..

몇번 다녀 온곳이지만 송림사를 자세히 둘러 볼 기회가 있었고 다시 기록으로 남길까 한다.


그리고 송림사앞은 계곡이어 여름에 더위를 식힐수 있기도 한곳이다.

☞ 2015/08/28 - [인상 깊은곳] - ( 경북 칠곡 )오층전탑만으로도 가치있는 송림사

* 팔공산 송림사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진흥왕 5년(544년) 중국 (晉)에서 귀국한 승려 명관(明觀)이 진에서 가져온 불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처음 절을 지었고, 경내의 전탑도 그때 세웠다고 알려져 있다. 최치원의 《신라수창군호국성팔각등루기》에 등장하는 「마정계사(摩頂溪寺)」는 바로 송림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비정된다.

고려 선종(宣宗) 9년(1022년) 대각국사(大覺國師)에 의해 중창되나, 고종 22년(1235년)에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고, 고종 38년(1251년)부터 충숙왕 9년(1322년)까지 감국사(寶鑑國師)가 주석하였다. 1970년 황수영 박사가 송림사에서 나온 개인 소장(현재는 소재지 미상)의 청동 향로 (높이 24.1cm)의 명문을 조사한 결과 『지정 2년(1342년)명 송림사향(至正二年銘 松林寺香)』이라고 되어 있어 고려 시대에 봉안된 것임을 추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조선 중기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송림사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데, 이는 조선 중기 절의 힘이 미약했음을 추정하게 한다. 송림사는 정유재란(1597년)때 소실되었다가 숙종 12년(1686년) 승려 기성(箕城)이 중건하였으며, 철종 9년(1858년) 영구 대사에 의한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제 시대의 《한국사찰전서》에는 절의 위치 외에 다른 자료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1950년 이전의 사찰 근처에 살았던 현지 노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송림사에는 대웅전과 명부전 그리고 전탑이 전부였으며, 대웅전 앞에는 가 매여 있었다고 하는 증언이 있다.

2013년 대웅전의 전면 해체 보수, 선열당 보수, 설법전 단청공사 등의 작업이 완료되었다.


일주문

종각

오층전탑 보물제 189호

 9세기 신라의 건축물로 전고 16.13m, 기단 폭 7.3m의 전 및 화강석으로 조영된 탑이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상륜부까지 온전히 보전되어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다.
본래 전탑의 규모는 현존하는 규모보다 더 작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경내에 있는 《팔공산 송림사 유적비》에는 1959년 송림사 전탑의 해체 복원 당시 현재보다 훨씬 좁은 폭 4.5m 정도의 기단 석축이 발견되어 여러 차례의 해체복원 과정에서 외형이 많이 변모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었다. 진신사리 4과가 청유리병에 봉안되어 있었고, 연꽃무늬를 새기고 순금을 상감한 진신사리감(龕)과 청자로 만든 진신사리감, 옥지금엽보리수, 침향 9개, 은귀걸이 17개, 나무 구슬 1개, 청옥, 백옥, 수정, 유리(琉璃), 등 옥구슬 26개가 나왔으며, 발원문도 있었지만 햇빛을 보는 순간 탄산(炭散)되어 알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유물은 현재 보물 제325호로 지정되었으며 국립대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합실 안에는 조선 시대 작품인 본불과 파손 석불, 동불이 각각 2구 있었다고 하며 2층의 옥개에는 금동방형 사리기를 비롯하여 유리배, 수목형 금구, 옥류 등 찬란한 유물이 발견되었고 상륜부 전탑 내에는 화려한 고려청자 합자가 발견되는 등 시대를 달리하는 유물이 각 층에서 발견되어, 적어도 고려 시대에 상륜부가 해체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출토 유물 가운데 목불과 진신사리 4과는 탑에 다시 봉안되었다.

대웅전

송림사의 건물에 관한 기록은 효종 8년(1657년) 중수 당시에 작성된 《팔공산송림사대웅전불상조성이필봉안기》(八空山松林寺大雄殿佛像造成已畢奉安記)와 영조 51년(1775년)의 《대웅전중수기》, 철종 1년(1850년)에 제작된 《칠곡송림사대웅전중수상량문》(漆谷松林寺大雄殿重修上梁文) 등이 있는데, 이 기록들에 의하면 선조 30년(1597년)에 소실된 것을 1657년 중창하였고 그 후 1755년 1850년에 중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17세기 중후반의 한국 불교건축에서 맞배지붕에 다포식 주불전 건물이 일반화되었는데, 송림사 대웅전은 이에 속하는 대표적인 건물 가운데 하나이다. 면적 139.44m2. 대웅전 안에 봉안된 목조석가삼존불좌상(木造釋迦三尊佛坐像)은 효종 8년에 조성된 것으로 2009년 3월 5일 보물 제1605호로 승격되었다.
대웅전의 현판은 숙종의 어필로 알려져 있다.

명부전

산신각

웅진전(나한전)

선열당 (요사채)

삼성각

극락보전

삼천불전에 봉안된 불상 가운데 석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2009년에 보물 제1606호로 지정되었으며, 복장 발원문을 통해 효종 6년(1655년) 조각승 도우가 조성한 불상임이 확인되었다.

선불장

송림사 바로앞은 계곡이다

한 여름에 시원하게 발 담그고 쉴수 있을만한곳이다


☞ 2019년 8월 3일아내,친지

 ( 이 글은 진즉 작성해 놓고 발행을 하지 못했었다 )

▶7월 3일 행복 척도 2점 ★★

금요일 휴무가 이어진다..언제 정상화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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