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산서원에서 독락당까지는 도보로 약 10분 정도 걸리는 800여M 떨어진 가까운곳에 있다.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이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에 돌아와 지은 사랑채이다.
조선 중종 11년 ( 1516년 )에 세워졌으며 일명 옥산정사라고도 한다.
현재 보물 413호로 지정되어 있고 명품고택으로 지정 되어 있으며 후손이 아직까지 기거 하고 계신다.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제사를 받드는 옥산서원 뒤편에 있는 사랑채이다. 이언적(1491∼1553) 선생이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에 돌아온 뒤에 거처한 유서 깊은 건물이라고 한다.
조선 중종 11년(1516)에 지은 이 건물은 낮은 기단 위에 세운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집을 향해 오른쪽 3칸은 넓은 마루인데 앞을 모두 터 놓았으며, 왼쪽 1칸만 칸을 막아 온돌방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원래는 맨 오른쪽 칸도 막아서 방으로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어, 대청은 가운데 2칸뿐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기둥은 둥근기둥을 세우고 대청 천장은 뼈대가 모두 노출된 연등천장이다.
옥산정사는 퇴계 이황선생의 친필 현판이다
문이 잠겨 있는 유물관에는 보물 제 526호인 해동명적
그리고 보물 제 586호인 이언적 수필고본일괄이 보관 되어 있다
아마 옥산서원 유물 전시관이 개관되면 그곳으로 옮겨 볼수 있을지도 모른다
경청재
1601년 이언적 선생의 손자 휘,준과 순 두 형제가 옥산별업을 봉수하기 위해 화의문을 작성하면서 세운집이다
이언적 선생은 1538년 청백리에 가자되었다
경주 귀후재 경북 문화재자료 제 618호
귀후재는 옥산에 대대로 살던 여강 이씨의 대표적인 강학당으로 조선 현종 3년 ( 1662년 )에 이상규가 창건하였다
이곳에서는 문중 자제들을 주로 교육하였으며 건립 연대는 인근 양동마을의 대표적인 서당인 강학당과 안락정보다
앞선다
정면4칸, 측면1칸으로 구성된일자형 건물이며 본채 이외에 정면1칸,측면 1칸 규모의 대문채가 남아 있다
한국전쟁 이후까지도 강학 기능이 유지되었다고 한다
청백리의 얼이 서려 있는 독락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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