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답사를 몇 년 동안 벼르다가 10월 19일~20일 1박 2일 일정으로
아내와 친지를 모시고 다녀왔다
지도를 보고 사전 답사 노선을 미리 정해 두고 첫날 일정으로는 장안문에서 출발,
화서문을 거쳐 서장대로 해서 팔달문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화성을 한바퀴 돌면 약 6Km 거리이고 3시간 소요된다고 설명이 되었는데
난 그 2배의 시간을 잡았다
그래서 여유있게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화성 행궁을 야간 관람하는 것으로..
☞ 화성 지도
▶ 수원 화성
수원 화성은 1963년에 사적으로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정조가 사도세자의 묘소 (융건릉)을 조성하면서 1794년 2월 정약용의 "성화주략"을
참고하여 1796년에 축성하였다
화성은 일제,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파손되었으나 남아있는 "화성성역의궤"덕에
원형에 가깝게 복원되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는데 설계도와 작업진행기록이
있어 유지 보수가 가능하다
성의 둘레는 5,744m, 면적은 130ha로 동쪽지형은 평지를 이루고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는 평산성의 형태로 성의 시설물은 문루 4, 수문 2, 공심돈 3, 장대 2, 노대 2,
포(鋪)루 5, 포(咆)로 5, 각루 4, 암문 5, 봉돈 1, 적대 4, 치성 9, 은구 2등 총 48개의
시설물로 일곽을 이루고 있으나 이 중 수해와 전란으로 7개 시설물
(수문 1, 공심돈 1, 암문 1, 적대 2, 은구 2)이 소멸되고 4개 시설물이 현존하고 있다.
사적 제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 팔달문(보물 제402호),
화서문(보물 제403호), 장안문, 공심돈 등이 있다
수원역에서 택시를 타고 장안문 앞에 온 게 15시 50분
팔달문으로 내려온 게 17시 28분이니 1시간 38분 소요되었다
▶ 장안문
1794년(정조 18) 창건, 한국전쟁 때 문루 파괴, 1975년 문루 복원
장안문은 수원 화성의 북문이다
문 밖에 항아리 모양의 옹성을 만들고 방어를 위해 좌우에 적대를 세웠다.
▶북서적대
1795년(정조 19) 창건
1968년 수리
북서적대는 장안문 서쪽에서 성문에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방어 시설이다.
화성에서는 장안문과 팔달문 좌우에 적대를 설치했는데 현재 장안문에만 남아 있다.
▶ 북서포루
1794년(정조 18) 창건
1975년 복원
북서포루는 장안문 서쪽에 설치한 화포를 갖춘 시설이다.
화성에는 동포루, 서포루, 남포루, 북동포로, 북서포루 5곳의 포로가 있는데
주변 지형 조건에 따라 크기를 달리했다. 평탄한 곳에 지은 북서포루가 가장 높다.
▶ 북포루
1795년(정조 19) 창건
1975년 누각 복원
북포루는 북서포루와 서북공심돈 사이에 있는 치성 위에 군사들이 머물 수 있도록 누각을 지은 시설이다.
치성은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이다.
화성에는 모두 15곳의 치성이 있는데 그중 중요한 5곳의 치성 위에 동 1포로, 동 2포로, 서포루, 북포루,
동북포루를 만들고 적의 동향을 감시했다.
▶ 서북공심돈
보물 제1710호
1796년(정조 20) 창건
1934년 수리
서북공심돈은 화성 서북쪽에 세운 망루로 주변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시설이다.
공심돈은 속이 빈 돈대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성곽 중 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보통 돈대는 성곽과 떨어진 높은 곳에 세워 적을 감시하는 시설이나,
서북공심돈은 서북쪽 성벽이 꺾이는 위치에 설치했다.
치성 위에 벽돌로 3층의 망루를 세우고 꼭대기에는 단층의 누각을 올려 군사들이
감시할 수 있도록 하고, 외벽에는 화포를 쏠 수 있는 구멍을 뚫어 공격 기능까지 갖추었다.
▶ 화서문
보물 제403호
1796년(정조 20) 창건
1848년(헌종 14) 수리
1975년 수리
화서문은 수원 화성의 서문이다. ‘
화성의 서쪽’이란 뜻이지만 서쪽에는 팔달산이 있어 서북쪽에 문을 두었다.
문밖으로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어 주변을 감시하기 위해 높다란 서북공심돈을 함께 세웠다.
조선 시대 건축에는 일정한 위계질서가 있다.
같은 성문이지만 장안문과 팔달문은 높은 격식을 갖춘 반면 창룡문과 화서문은 한 단계 격을 낮춘 형태이다
▶ 서북각루
1796년(정조 20) 창건
1975년 복원
서북각루는 화성 서북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이다. 화성에는 모두 4곳의 각루가 있다.
▶ 서1치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5년 수리
서북각루와 서포루(砲樓) 사이에 성벽을 돌출시켜 쌓은 치성이다.
성벽 가까이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용도로 쓰였다.
성벽에 8곳, 용도에 2곳의 치성이 설치되어 있는데 지형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3개 중 하나는 바로 밑을 보도록 되어 있다
아래 사진은 멀리 보도록 만든 곳
▶ 서포루
1796년(정조 20) 창건
1975년 누각 복원
서포루는 서암문과 서 3치 사이에 있는 치성 위에 군사들이 머물 수 있도록 누각을 지은 시설이다.
치성은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이다
▶ 서 2치
▶ 서노대
1795년(정조 19) 창건
1971년 복원
서노대는 기계식 활인 노弩를 쏘기 위해 높게 지은 시설로 군사지휘소인 서장대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
노대는 적의 동향을 살피고 깃발을 이용해 적의 위치를 알리는 용도로도 쓰였다.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노대가 있다.
서노대는 화성의 서쪽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팔달산 꼭대기에 있어 적을 감시하기에 적합하다
▶ 화성장대
1794년(정조 18) 창건
1971년 복원
2006년 화재 후 수리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자리 잡은 군사 지휘소이다.
화성에는 두 곳의 장대가 있는데 동장대는 평상시 군사들이 훈련하는 장소로 쓰고,
서장대는 군사 훈련 지휘소로 썼다.
서장대는 시야가 트여 있어 멀리 용인 석성산 봉화와 융릉 입구까지 한눈에 살필 수 있었다고 한다
. 서장대는
아래층은 장수가 머물면서 군사 훈련을 지휘하고, 위층은 군사가 주변을 감시하는 용도로 썼다.
정조의 글씨
화성장대 현판도 정조의 글씨다
▶ 서암문
1796년(정조 20) 창건
1975년 수리
서암문은 화성 서쪽 팔달산 꼭대기 성벽에 설치한 비상 출입문이다.
암문이란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설치하여 적이 모르게 출입하고 군수품을 조달하던 문을 의미한다.
화성에는 5곳의 암문이 있는데 모두 벽돌로 만들었다.
▶서포루
1796년(정조 20) 창건
1975년 누각 복원
서포루는 서암문과 서 3치 사이에 있는 치성 위에 군사들이 머물 수 있도록 누각을 지은 시설이다.
치성은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이다
▶ 서3치
3.1 운동기념탑
대한독립기념비
1948년에 세워졌다
▶ 서남암문과 서남포사
1796년(정조 20) 창건
1975년 서남포사 복원
서남암문은 화성 서남쪽에 낸 비상 출입문이다.
화성의 5곳 암문 가운데 유일하게 문 위에 군사들이 머무는 포사舖舍를 세웠다.
이곳은 지형상 적에게 빼앗기면 성안이 노출될 우려가 있어서 특별히 포사를 만들어 침입을 대비했다.
암문에는 화공에 대비하여 오성지도 설치하였다.
픔은 암문이지만 성 안팎을 드나드는 통로가 아니라 용도를 거쳐 서남각루(화양루)로 나가는 문이다.
▶ 서남각루 (화양루)
1796년(정조 20) 창건
1975년 복원
서남각루는 화성 서남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로 ‘화양루’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화성에는 모두 4곳의 각루가 있다.
▶ 남치
팔달문 안내소
많은 분들이 찾고 있었는데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 수원 시민들도 많이
찾으시는 것 같았다
새삼 정조, 그리고 정약용 두 분의 위업에 고개가 숙여진다
☞ 10월 19일 아내,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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