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성구 수성랜드 뒤쪽에 있는 지석묘군은 2016년 방문한적 있다
2016/06/23 - [인상 깊은곳] - 대구 상동 지석묘군.수성랜드
상동 지석묘 근처에 봉선화를 식재했다는 소식을 듣고 시간 냐면 한번 가 보리라 생각을 했었다
지난번 찾을때는 수성랜드 안쪽에 주차를 하고 갔었는데 이번엔 수성랜드를 피해 갈수 있도록 이정표가
만들어져 있었다
이곳은 사실 관심을 두지 않으면 찾기가 좀 애매하다..
차로 들어 갈수 없고 골목길을 조금 걸어 가야 되니 말이다
그래도 예전 한번 찾은 기억이 있어 쉽게 찾아 들어갔다.
4년전과는 조금은 변해 있는듯 했다
▶상동지석묘군 (上洞支石墓群)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2호
수성구 상동 501번지 일대에 분포했던 지석묘군으로 현재는 상석 4개가 이동되어 임의로 배치되어 있다.
1998년 국립대구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한 바에 의하면 지상의 상석은 이동되어 원위치는 파악하기 어렵게
되어 있기는 하나 지하묘구는 15m×15m 구역내에서 30여기의 석관·석곽이 원상으로 분포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묘구는 평면 장방형이였고, 대개 길이는 2m, 폭은 40㎝, 벽고는 30㎝ 정도의 규모였다.
묘구의 유형은 석관형과 석곽형의 두 종류가 있고, 석관은 네 벽을 판석으로 세워 구축했고,
석곽형은 천석 또는 천석과 판상석을 혼용해서 구축했다.
닥은 자갈 또는 잔 할석을 전면에 깐 것과 반듯하게 자른 판상석을 몇장 깐 것 또 시상 받침돌을
더문더문 놓아 둔 형식이 있다.
이 곳 좁은 구역에 밀집 분포하는 묘구는 배치와 사용 석재의 종류를 통해서 묘구간의 관계를
추측 가능케 하고 있어 주목된다.
또 매장방법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 준다고 한다.
묘구에서는 일단병식 석검과 유경식 석검, 석족이 출토되었으나 토기의 부장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들 석기는 대봉동, 이천동 지석묘의 출토품과 유형을 같이 하고 있다.
묘구형태에서 주목되는 현상은 종전까지 지석묘는 모두 수혈식 묘구로 보고되어 왔으나
여기서 수혈계 횡구식의 매장법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유구가 확인되었다.
수성랜드 외곽을 돌아가게 되어 있다
설악초도 여름에 꽃을 피운다
요즘 보기 힘든 나팔꽃
미니 축구장이 생겼다
지석묘는 축구장을 돌아가면 있다
표지판은 그대로인것 같다
봉선화를 식재한지 얼마 되지 않은것 같다
봉선화(鳳仙花) 또는 봉숭아는 인도·말레이시아·중국 원산으로 봉선화과의 한해살이풀이다.
줄기는 높이가 30~50 센티미터 정도이며, 굵고 곧게 선다.
4~5월에 씨를 심으면 6월에 꽃이 핀다
잎은 폭이 좁은 타원형으로 가장자리는 톱니처럼 되어 있다.
꽃은 적색·흰색·황색·분홍색 등으로,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긴 꽃자루 끝에 3개씩이 아래로 드리워져 달린다
1241년 완성된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7월 25일경 오색으로 꽃이 피고 비바람이 불지 않아도
열매가 자라 씨가 터져 나간다는 봉상화(鳳翔花)"가 언급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고려시대 이전부터
봉선화를 널리 심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꽃의 생김새가 마치 봉(鳳)을 닮아 봉선화라고 부른다
꽃말은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이다
봉선화는 홍난파의 가곡으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졌다
1920년에 발표되었으며, 일명 「봉숭아」라고도 한다.
나라를 잃은 슬픔을 노래한 시를 작곡가의 바이올린독주곡 「애수(哀愁)」의 선율에 맞춘 곡이다
1940년대 초에 반일사상의 노래라 하여 일제에 의하여 가창 금지가 되었으나 지금은 널리 애창되고 있다
봉선화가 이곳은 활짝 피어 처량한 모습이 안 되었으면 한다
☞ 9월 19일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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