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산_사찰

동화사 비로전,동화지, 부도군

空空(공공) 2020. 4. 30.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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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사 경내를 벗어나면 주차장 아래에 비로전(율원)이 있고 동화문을 나오면 왼편으로 동화지와

부도가 있다,

못보고 지나치기 십상인데 혼자 왔겠다..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다 둘러 보았다.


▶ 비로전 ( 율원 )

동화문 주차장 아래에 위치해 있다. 예전에는 비로암으로 불리웠던 동화사의 산내암자였는데, 현재는 

율원이 들어서 있다.


비로전 대적광전에는 신라 흥덕왕 때 심지 대사가 조성한 보물 제244호 석조비로자나불이 봉안되어 있다.

대적광전 앞에는 역시 신라 흥덕왕 때 조성한 보물 제247호 삼층석탑이 있다.


비로전은 동화사 들어가기전 오른편 주자장 아래쪽으로 가는길 조금만 내려 가면 된다

보광명전 참선수행하는곳이다.

여기 오면 항상 조심조심

비로암

대적광전

이 안에 보물 제244호 석조비로자나불이 있다

비로암 삼층석탑

- 시대 : 통일신라(863년)
- 높이 : 378cm
- 보물 제247호


비로암 삼층석탑은 동화사 서쪽 언덕에 자리잡은 비로암의 대적광전 앞뜰에 세워져 있는 3층 석탑으로, 1층 탑신에서 나온 사리호(舍利壺, 사리를 담는 그릇)에 새겨진 명문(銘文)에 ‘통일신라 경문왕 3년(863)에 민애왕의 명복을 빌고자 이 탑을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이 탑이 민애왕(閔哀王,817~839)의 원탑(願塔)임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 탑이 세워질 때 심지(心地) 대사는 동화사에 머물며 전지대덕(專知大德)으로 원탑 건립에 참여하였다. 헌덕왕(809~825)의 아들인 심지는 민애왕 김명(金明)과는 사촌 형제지간이다. 또한 이 탑을 발원한 경문왕(861~874)은 민애왕에게 죽임을 당한 희강왕의 손자로, 분열된 진골 귀족을 화합시키고자 민애왕의 원탑을 이곳에 세웠던 것이다.

탑은 다듬은 긴 돌로 널찍하게 탑 구획을 두르고, 상ㆍ하 2단의 기단 위에 삼층의 탑을 쌓았다. 하층 기단 윗면에 돌출된 굽 모양 괴임대는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불 중대석받침과 수법에서 유사하다.

기단의 각 층에는 네 면마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겼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기 한 돌로 이루어져 있고,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본뜬 조각을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수가 층마다 4단이며, 처마는 곱게 뻗어 나가다가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露盤, 머리장식받침)과 복발(覆鉢, 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보주(寶珠, 연꽃봉오리 모양의 장식)가 차례로 올려져 있다.

각 기단 위에 괴임을 여러 개 둔다거나, 지붕돌 네 귀퉁이의 들린 정도가 크지 않은 점 등에서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는 단정하고 아름다운 작품이다.

다음번은 비로자나불을 보아야겠다


동화지,부도군

동화문에서 대웅전 방향 주차장 맞은편의 작은 연못이다

최근 못 둘레를 한바퀴 걸을수 있는 데크를 만들었다

뒷편에는 여러개의 부도가 있다.

동화사 부도군 대구유형문화재 제12호

산 중턱에서 기슭에 이르기까지 부도밭이 펼쳐져 있는데, 모두 10기에 이르는 부도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어 자리잡고 있다. 모두 이 절에서 수행한 역대 승려들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제1호 성암당 해정대사탑-조선 헌종 5년(1839)에 세운 것으로, 네모난 바닥돌과 기단(基壇) 위로 종모양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제2호 제월당 대사탑-네모난 바닥돌 위로, 둥근 기단을 마련하고, 타원형의 탑몸돌 위로 4각 지붕돌을 얹은 모습이다.

제3호 기성당 대사탑-영조 40년(1764)에 세운 것으로, 연꽃을 조각한 기단 위에 타원형의 탑몸돌과 4각의 지붕돌을 올린 모습이다.

제4호 성임당축존대사탑-숙종 26년(1700)에 세운 탑이다. 바위를 바닥돌로 삼고, 둥근 기단을 올린 후 종모양의 탑신을 쌓았다.

제5호 고운당 부도-숙종 2년(1676)에 만든 것으로, 4각의 바닥돌과 둥근 기단 위에 위가 뭉툭하게 잘린 종모양의 탑몸돌이 놓여 있다.

제6호 함우당 부도-숙종 46년(1720)에 세운 탑이다. 바닥돌과 기단에는 큼직한 연꽃무늬를 두르고, 8각의 지붕돌에는 밑면에 5단의 받침을 두었다.

제7호 이름이 밝혀지지 않음-세운 시기는 알 수 없다. 4각의 바닥돌 위에 꽃무늬를 새긴 둥근 기단을 두고, 타원형의 탑몸돌 위로 4각의 지붕돌을 얹은 모습이다.

제8호 상봉 정원대사탑-숙종 35년(1709)에 세운 것으로, 큼직한 연꽃을 새긴 기단 위로 둥근 탑몸돌과 4각의 지붕돌을 올려 놓았다.

제9호 계영당 극린대사탑-숙종 18년(1692)에 세웠다. 기단의 가운데돌에 특이한 무늬가 있으며, 8각의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가 위로 들려 있다. 머리장식은 파손되었다.

제10호 고한당 부도-세운 연대는 알 수 없다. 4각의 바닥돌 위로 8각의 기단을 두고, 타원형의 탑몸돌에 8각의 지붕돌을 올린 모습이다.

대부분의 부도들이 둥글거나 네모난 돌기단 위로, 아래위가 잘린 계란모양의 탑몸돌을 올리고 지붕돌을 얹은 모습이다. 기단에 연꽃을 새겨두었을 뿐 거의 장식을 하지 않았으며, 탑몸돌에 승려의 이름을 새겨두긴 하였으나 그의 행적을 기록한 것은 드물다. 주로 17∼19세기초 사이에 세운 것들로, 조선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부도양식을 잘 보여준다.

최근 조성된듯한 동화사 옛순례길은 다음에 걸어 보도록 해야겠다..

☞ 11월 16일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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