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승대와 수승대 문화재들을
둘러 보고 나서도 예식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돌아가는길의 문화재를 검색했다
( 다 아시겠지만 차량의 네비게이션을
이용하면 현 위치로부터 가까운
문화재를 쉽게 찾을수가 있다..난 종종
이용하는편이다 )
수승대 가까운곳에 동계 종택이 있었고 바로 근처에 반구헌이라는곳이 있어 찾아 나섰다
조선 중기의 문신 정온(1569∼1641)이 태어난 집으로, 후손들이 순조 20년(1820)에 다시 짓고 정온의 신위를 사당에 모셔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솟을대문의 대문간채를 들어서면 'ㄱ'자형의 사랑채가 있고, 사랑채 안쪽으로 '一'자형의 안채가 자리하였다. 안채의 오른쪽에는 뜰아래채가, 왼쪽에는 곳간채가 있다. 안채의 뒷쪽에 따로 담장을 두르고 3문을 설치한 후 사당을 세웠다.
사랑채는 꺾인 부분을 누마루로 꾸미고 눈썹지붕을 설치한 점이 특이하다. 안채와 사랑채는 북부지방 가옥의 특징인 겹집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기단은 낮고 툇마루를 높게 설치한 남부지방 고유의 특징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집의 학술적 가치를 찾을 수 있으며, 조선 후기 양반주택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동걔 종택에서 후손들이 보관해 오던 유물들은 나중 거창박물관에서 확인할수가 있었다
동계 정온 선생은 신동아에 연재된 조용헌 교수의 글을 옮겨 적는다
이 집안의 초계 정씨들은 일찍부터 과거급제를 한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 과거 합격자 101명의 명단이 실려 있는 ‘정사방목(丁巳榜目)’이 고택에서 소장하던 고문서에서 발견된 것이다. 고려말 우왕 3년(1377)에 치른 국자감시에서 장원급제한 정전(鄭悛)에게 당시 예부(禮部)에서 수여한 이 원본은 합격 동기생 101명의 이름을 전원 수록하고 있어 국보급 자료로 평가받는다. |
동계 종택을 찾아가는데 이름 없는 오래된 누각이 있었다
문이 잠겨 있고 사람의 손길이 한동안 닿지 않은것 같았다
동계 종택
지금도 후손이 살고 계신다
열려 있는곳으로 들어가니 살고 계시는분이 말씀하시기를 안채는생활하는 공간이니 들어 가지 말고
사진도 자제해 달라신다
대신 바깥 사랑채는 얼마든지 보고 사진도 찍고 가라 하신다
민박도 하긴 하는데 민박 요금이 좀 비싸다고 말씀을 하신다
기단이 낮고 툇마루가 높다
툇마루가 높아 신발 신을땐 줄이 필수적이지 싶디
바로 옆에는 반구헌이라고 있다
반구헌이란 이름은 스스로 자신을 뒤돌아보고 반성한다는 의미인 "反求於諸心"에서 유래한다.
반구헌은 현재 대문채와 사랑채만 남아 있는데 사랑채에 〔崇禎丁丑後二百三十四年〕이라는 상량문이 남아 있어 현재의 건물은 1870년대에 건립 또는 중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반구헌이라 불리우는 사랑채는 팔작기와지붕에 정면5칸, 측면5칸 규모로 이루어진 비교적 큰 규모의 건물이다. 이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은 대청이 중앙에 있지 않고 규모가 1칸인 반면에 방이 3칸이라는 점이다. 또한 측면 1칸에 난간을 두룬 누마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건물 후면 중앙에 아궁이를 설치하여 방 2개를 한곳에서 난방하도록 평면을 구성하였다. 구조는 민도리집으로 단순 소박하지만 전체적으로 사대부가의 품격을 풍기는 중요한 건축물이다.
얼마전인조 시대의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이 개봉되었는데 정온 선생은 그 시대를
살아가면서 치욕을 못 견뎌 할복 자살을 기도한 충신이기도 하였다
새삼 선생의 정신이 고귀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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