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 청도 운문사 사리암을
다녀 오고 나서 청도쪽 여기 저기를
둘러볼 마음이 생겼다
연휴가 끝난 일요일
고르지 못한 날씨이긴 했지만
일기 예보를 믿고 청도쪽으로 향했다
청도 지자체 사이트를 한번 훑어 보고
예전에 받은 지도를 들고 가야할 행선지를
정했다
청도 지역은 예상외로 지역이 넓고 산들이 많아 하룻만에 다 돌아 보기는 무리인것 같아 보고
와야 할곳을 나누었다
제일 먼저 향한곳은 운문호 아래쪽 임당리의 김씨 고택이다
( 청도 임당리 김씨고택)
조선 후기의 궁중 내시였던 김일준이 낙향하여 19세기 후반에 건립한 주택으로 임진왜란 전부터 400여 년 동안 16대에 이르는 내시 가계(內侍 家系)가 이어져온 곳이다. 1988년에 경상북도 민속 자료로 지정되었다가, 2005년 1월 31일에 중요 민속 문화재 제245호로 승격되었다.전면에 세운 5칸 규모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사랑채, 안채, 고방채로 이루어진 정침이 튼 ‘ㅁ’자형의 배치를 이루며 자리 잡고 있다. 사랑 마당의 좌우측에는 큰사랑채와 사당을 각각 배치하였다.
안채는 정면 6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 기와집으로 우로부터 건넌방, 대청, 안방, 부엌 순으로 연접되어 있다. 큰 고방채와 작은 고방채는 수장 전용 공간이다. 작은 고방 한쪽 끝에 디딜방아를 설치했으며, 큰 고방 북쪽 끝에 내측이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간 반통으로 앞퇴가 열린 맞배지붕의 통상적 구조이다. 원래 큰사랑 뒤쪽의 광과 사당 동쪽에 행랑채가 있었다 하나 지금은 없어졌다. ( 디지털 청도 문화대전에서 인용)
김일준은 고종을 모셨던 내시다
내시의 최고 품계는 종2품인데 그 바로 아래 품계인 정3품 통정대부 칙첩을 받았다
통정대부는 요즘 말하면 민정비서관쯤 되는 자리이리라
이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이정표가 멀찌 감치 있어 마을로 들어서 작은 다리를 건너야만
벽에 커다랗게 씌여진 안내를 볼수가 있다
고택은 활짝 열려 있었고 깨끗한 모습이었다
지금껏 보아 왔던 양반집 고택과는 구조와 배치가 다르다는걸 한눈에 알수 있었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 가면 이런 안내표시를 볼수 있다
김씨 고택 전경
국가 중요 민속 문화재다
김씨 고택 배치도 ( 청도 임당동 내관가에 대한 연구에서 가져옴)
건물은 5칸의 대문채가 마을 전체의 지세에 어울리게 서남향으로 자리 잡았고 대문간과 사랑 마당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안채는 북서향으로 서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준이 머물렀을 사랑채는 대문을 들어서면 왼편에 있는데 규모가 큰 것은 물론이고 건물 자체가 대단히 안정적이다. 이 건물은 정면 4칸 중 좌측 2칸은 사랑대청이고 우측 2칸은 앞줄 2칸이 마루고 뒷줄은 온돌방으로 쓰고 있다.
대청에는 통풍을 위한 창문이 북서쪽에 있는데 창의 무늬가 아름답다.
대문 오른편에는 자그마한 연당이 있고 연당 남쪽에는 널찍한 빈터가 있다. 원래 이 빈터에는 큰 건물이 있었는데 이 건물에는 종들이 기거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건물은 종들이 이 집을 떠나가면서 쓸모가 없어졌고 자연 건물도 훼손되어 지금은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빈터 동쪽으로는 재실이 있다.
안채는 ㅁ 자형 마당을 중간에 두고 사방으로 건물이 있다. 남쪽은 안채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이 문을 들어서면 왼편으로는 건물이 줄지어 있고 끝에는 화장실이 있다. 오른편으로는 마루가 있고 마루 뒤로 방이 있다. 이 건물 맨 끝에는 있는 부엌이 커 한창 시절 이 집에 기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채의 특징은 토담으로 철저히 폐쇄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내시 가계 부인들은 친정 부모의 사망 때만 바깥출입이 허용될 정도로 폐쇄적인 생활을 했다고 한다.
빈 공간은 사랑채 주위에도 많이 있어 옛날에는 현존 하는 건물 외에도 다른 건물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이 집은 해방 후에도 지금 보다는 훨씬 집터가 넓고 건물도 많았다고 하는데 그동안 후손들이 땅을 많이 팔아 지금의 형상이 되었다고 한다.
큰 사랑채
대문채
작은 사랑채
안채
작은 사랑채
곳간
곳간안의 모습
사당
디딜 방앗간
도시 사람인 나는 보지 못한걸 시골 출신인 아내가 알려 주었다
안채가 깊숙이 들어가 있고 작은 담장이 둘러져 있다
사랑채에서는 안채로 드나 드는 사람들을 잘 볼수 있게끔 만든 구조가 그 이유를 추정해 보니
약간은 씁쓸해진다
후손들의 마음은 어떠 할까?
지금까지 봐왔던 고택 구조와는 달라 흥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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