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空空)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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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세종대왕 영릉(英陵)

空空(공공) 2023. 12. 13.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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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릉 탐방은 나의 '버킷리스트'이기도 하다

조선 왕릉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어 여기서 접근성은 떨어져 

여태까지는 가 보지 못하였고 기회가 되면 찾아가 보려고 생각 중인 곳이다

조선 왕릉은 18개 지역에 흩어져 있고 총 40기에 달한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이번에 서울 결혼식에 가면서 1박을 여주에서 하게 되었고 여주 '영릉"을 찾게 되었다

여주 영릉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의 영릉 ( 英陵 )과 효종과 인선왕후의 무덤

영릉 ( 寧陵 ) 이 가까운 곳에 있어 2곳을 다녀왔다




▶ 영릉(英陵)

 영릉(英陵)은 조선 4대 세종(재위 1418∼1450)과 부인 소헌왕후 심 씨(1395∼1446)의 무덤이다.

 세종 28년(1446)에 소헌왕후가 죽자 헌릉 서쪽 산줄기에 쌍실 무덤인 영릉을 만들었다. 

 동쪽 방은 왕후의 무덤으로 삼고, 서쪽 방은 왕이 살아 있을 때 미리 마련한 무덤으로 

 문종 즉위년(1450)에 왕이 죽자 합장하였다. 

 조선왕릉 중 최초로 한 봉우리에 서로 다른 방을 갖추고 있는 합장무덤을 하고 있다.

무덤배치는 『국조오례의』에 따라 만든 것으로, 조선 전기 무덤배치의 기본이 되었다. 

 세조 이후 영릉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무덤을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옮기지 못하다가 예종 1년(1469)에 여주로 옮겼다.

 무덤의 주변에는 12칸의 난간석을 둘렀다. 

 무덤을 옮길 때 전에 있던 석물인 상석, 명등석, 망주석, 신도비들은 그 자리에 묻었으며, 

 훈민문·세종대왕동상·세종전 등은 1977년 영릉정화사업 때 세운 것이다.



 ☞ https://sejong.cha.go.kr/agapp/main/index.do?siteCd=SEJONG


 

세종대왕유적관리소

 

sejong.cha.go.kr

 

수복방

수복은 조선시대, 묘(廟) · 사(社) · 능(陵) · 원(園) · 전(殿) · 향교(鄕校) · 서원(書院) 등에서 제사와 관련된 일을

비롯하여 청소, 잡일 등을 맡아보던 구실아치이다

정자각

수라간

잡상이라고도 하는 어처구니

궁궐 기와지붕의 추녀마루 위에 세워진 작은 토우(土偶)로, 액운을 막고 악귀나 요괴가

감히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비각

구 재실

 

위토답

제사 또는 이와 관련된 사항들을 집행하는 데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토지.

 

다른 곳도 찾은 적은 있지만 아주 오래전 찾아 "조선 왕릉"을 찾아보겠다는

생각을 한 후 처음 찾은 곳이 세종의 영릉이라는 게 의미가 있다

☞ 11월 19일 아내.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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