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나와 아내가 30년전, 그이상의 추억이 공존하는 유일한 동네
북구 산격동 "연암 서당골"이다
3월 말경 신천을 산책하고 돌아 오는길에 여길 가보자고 의기 투합( ? ) 해서 지나 오게 되었다,
어차피 모로 가도 집으로 돌아 오는길은 있다.
이곳은 나에게는 어릴적 추억이 깃든곳이다.
큰집이 이 동네에 있었고 지금은 이장을 했지만 할아버지및 할아버지 형제들의 산소가 있어 어릴때 성묘를
다니기도 한곳이다.
아내는 결혼을 하기전 이동네에서 몇달 살기도 했던곳이다
연암 서당골은 경북 도청터 뒤 달성 서씨의 집성촌으로 마을의 어린아이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던곳이 많다
하여 서당골이라 불리웠다
이곳은 2015년부터 총 사업비 60여억원을 들여 "연암 서당골 여.행"사업을 4년간 추진해 왔다
연암 서당골은 영남지역 선비문화의 역사 문화자원을 가지고 있는 마을이다
- 대구 북구 도시재생지원센터 트위터에서 옮겨옴
용담재
용담재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이재(怡齋) 서사진(徐思進)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문중에서 효종 1년(1605)경에 세운 것이다. 현재의 건물 대지는 그 당시 서사진이 강학소를 만들어 교육에 전념하던 곳이라 한다.
상량문에 보이는 ‘숭정기원후오무자(崇禎紀元後五戊子)’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고종 25년(1888)에 중수한 연대를 가리킨다. 현재의 건물은 원래의 터를 매각하고 1976년 1km쯤 떨어진 북쪽 종중산에 그대로 옯긴 것이다. 웃면을 모르타르로 마감한 기단 위에 덤벙 주초를 놓고 그 위에 건물 전면에는 원주를, 나머지는 모두 네모 기둥을 세웠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1칸반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집이다. 맨좌측에 2칸의 우물마루 대청을 두고 그 우측에 2칸통의 온돌방을 두었다. 이 온돌방의 앞쪽에는 반칸 규모의 퇴칸을 설치하였다. 상부가구는 대들보 위에 놓인 제형판대공이 마루 도리를 받는 3량가로, 장혀와 상인방 사이에는 소로로 수장하였다. 용담재는 전체적으로 부재가 견실할 뿐만 아니라 보존 상태도 대체로 양호한 조선후기 재실이다.
서당골을 지나 연암 공원으로 넘어 오니 여기도 벚꽃이 보기 좋게 피어 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장소는 지금은 없지만 마음속에 그 장소는 아직도 선명하다.
☞ 3월 28일 아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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